옆집

난중일기 009 (20230130~20230205) 본문

일상, 삶/매일 비장하게 나라 구하는, 난중일기

난중일기 009 (20230130~20230205)

여해® 2023. 2. 7. 0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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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월요일
부다페스트, 눈

회사를 마치고 드디어 도수치료를 갔다. 가는 길에 눈이 많이 오고 네비가 골목 골목을 안내해서 진땀을 뺐다.

속옷 빼고 다 탈의해서 춥고 민망했는데 지금까지 받아본 치료 중에 최고였다. 나는 치료 받는 느낌이라 괜찮았는데, 치료하는 사람이 오히려 힘들어 보여서 걱정 되었다. 다음 치료는 그 다음주 토요일로 잡았다.

 

 

2023.01.31. 화요일

부다페스트, 흐림

 

어느새 1월의 마지막 날. 옆팀에서 같이 저녁+술 먹자 하여 동석했다. 중간까진 매우 즐겁고 배도 불렀는데, 빠이주가 너무 독해서 나중에는 정신이 흐릿했다. 본부에서 출장 온 주임과 거의 한 시간을 걸어가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했다. 즐겁고 좋은 시간이지만, 언제나 말을 많이 하는 것이 후회된다.

 

경거망동하지 말아야 하는데, 난 이 나이쯤 되면 그게 가능할줄 알았지. 물령망동, 정중여산이.

 

 

 

2023.02.01. 수요일

부다페스트, 흐림

 

아침에 어지럼증이 도져서 일어나지를 못했다. 정말 죄송하다 거듭 사과 드리고 오전 반차를 썼다. 누워서도 딱히 잠은 오지 않았다. 숙취라기보다는 체력이 정말 바닥난 느낌이었다.

 

출근해서 정말 충격적인 소식을 들었다. 오전 한 번 비웠을 뿐인데 어떻게 자리만 비우면 사고가 뻥뻥 터져있는지 모르겠다. 내 거주증이 이틀 안에 나온다고 들었지만, 믿지 않았다. 기대했다가 실망만 할까봐도 있고, 일단 믿을 수가 없다. 내 거주증은 12월부터 나온다고 했었다.

 

 

2023.02.02. 목요일

부다페스트, 눈

 

요즘 날씨가 많이 추워졌다. 저녁에 야근을 하려다가, 옆팀 동갑 과장님과 긴 이야기를 나누었다. 사실 서로 상황을 속속들이 모르니 뭐때문에 바쁜지도, 뭐때문에 힘든지도 몰랐는데 하나하나 들어보면 정말 이해되지 않는 사정이란 없다.

 

나는 요즘 내 마음이 왜 이렇게 유약한지 걱정한다. 왜 이렇게 남에게 하소연을 잘하고, 왜 그렇게 스트레스에 취약한지. 물론 내가 처해있는 상황이, 이 자리가, 정말 녹록치 않은 건 누구나 알겠지만. 그래도 나는 내 스스로에게 기대한 바가 더 큰데. 생각이 많아지는 저녁이다.

 

 

2023.02.03. 금요일

부다페스트, 진눈깨비

 

 

퇴근 후 회사 앞 마사지를 갔다. 1인샵이라 예약 잡기가 정말 하늘의 별따기인데, 이번에 보니 3월까지 예약이 풀이다. 원래 관세청에서 일했다던 관리사 선생님은 이제 데스크잡은 더이상 안 할 거라며 나를 자꾸 북돋운다. 나도..... 언젠가는 회계 일 한 적이 있었어, 그땐 정말 힘들었지. 라고 웃으면서 말할 수 있는 직업을 갖게 될까?

 

 

친구와 모임에서 삼겹살을 먹고 (내가 혼자 구워봤는데, 역대급으로 잘 구워서 사진을 올릴 수밖에 없다) 또 마사지를 받으러 갔다. 발마사지만 한시간 반을 받고 나니 정말 몸이 녹진해졌다. 돌아올 때 택시가 잘 안 잡혀서 정말 추웠다.

 

 

 

2023.02.04. 토요일

부다페스트, 맑음

 

하루 종일 본부 주임과 여기저기 돌아다녔다.

 

 

첫 장소는 내가 좋아하는 레스토랑 군델, 괜히 조말론과 러쉬, 코스같은 가게도 들어가보고. 술도 마시러 가고, 달밤도 드디어 가봤다.

 

집에 와서 생각해 보니 12시간을 함께한 건데, 나는 즐거웠지만 과장이랑 놀아야 했던 주임한테 미안해졌다... 적당히 자제해야지. 

 

내가 마음이 여리고 예민하다는 평가를 듣는 것을 알게 됐다. 틀린 말이 아니라서, 그리고 그게 진짜 나라서, 그리고 그런 모습을 회사에서 다 드러낸 내가 한심해서 울다 잠들었다. 간만에 눈물이 터지니 다음날까지 계속되었다.

 

 

 

 

2023.02.05. 일요일

부다페스트, 날씨 모름

 

열시쯤 일어나니 동생에게 정말 결혼식에 못오냐는 카톡이 와있었다. 무뚝뚝해서 이런 말은 웬만하면 안 하는 앤데, 괜히 속상해졌다. 동생 부부와 거의 옆집처럼 같이 살며 행복했던 시절이 생각났다. 그땐 그게 그렇게 행복한 건지 몰랐는데. 그리고 일만 열심히 하면 됐던, 정치질이나 싸움같은 거 없었던 예전예전예전 회사의 대리 시절도.

 

왜 나는 제자리인데 내 나이와 위치는 자꾸 올라만 갈까. 나는 아무것도 잘하는 게 없는 것처럼 느껴져서 또 한참을 울었다. 집을 둘러보니 딱 전형적인 우울증 증세 같아서 (캔맥주 굴러다니고, 배달음식 시킨 거 굴러다니고) 창문 활짝 열고 청소를 했다. 한시간 정도 서툰 솜씨로나마 해놓고 나니 기분이 나아졌다. 물을 받아서 목욕도 했다.

 

기운을 내보려고 불멸의 이순신, 청년 시절을 틀었다. 무과 급제한 후에 신입(?)으로 부임한 모습을 보는데, 드라마니까 꾸며낸 이야기겠지만 장군님도 저렇게 짤려보기도 하고, 여기저기 미움 받는 시절이 있었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놓였다.

 

쥬라기 공원 게임 계속 눈여겨 보던 게 드디어 할인을 해서 구매해놨다. 손대면 못 잘까봐 닌텐도 스위치에 다운만 받아놓고 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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