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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중일기 074 (20240826~20240901) 본문

일상, 삶/매일 비장하게 나라 구하는, 난중일기

난중일기 074 (20240826~20240901)

여해® 2024. 8. 31. 1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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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26. 월요일
부다페스트, 맑음
 
세면대 관련해서 집주인이 연락을 주었다. 자기는 수리는 모르겠고 배관공 불러서 고친 후에 월세에서 까라는 것이다. 1년 반 넘게 사는 동안 한 번 와보지도 않은 쿨한 집주인.. 여기저기 연락해 봤는데 견적이 완전 천차만별이다. 2만 포린트가 가장 저렴한 견적이라 모레 점심시간으로 예약을 했다.
 
며칠 전 미나리 대신 심은 미츠바는 소식도 없고.. 미나리 병이 또 도져서 여기저기 알아보고 요나뽀뜨 카페에 딱 하나 있는 미나리 글에 댓글을 달아보았다. 그런데 박서방네 마트에서 마침 오늘 딱 주문 공지를 올렸다는 게 아닌가. 미나리는 밑동을 잘라 수경재배 할 수 있어서 한 번만 구하면 된다. 이번 주는 시작부터 운이 좋다. 웃긴 건 이렇게 먹고 싶은 미나리를.. 한국에 살 땐 특별히 찾아서 먹은 적이 한 번도 없다. 내 돈 주고 사 보는 게 이번이 처음인 듯하다.
 
여행이 취소된 이번 주말, 뭐 할까 고민하다가 예전부터 계속 생각한 코르푸에 가기로 했다. 해변이 조용하고 모래사장이며 해초만 없으면 된다. 가격과 위치가 적당한 숙소가 있어서 예약했다.
 
오늘은 회사에서 거의 하루종일 TAJ 카드 갱신과 거주증 업무 등으로 시간을 보냈다. 행정 업무에 대한 지식이 쌓일수록 처음에 와서 허둥지둥했던 시간이 생각난다.

퇴근길에 부장님과 메트로까지 걸어갔는데, 잠깐 차를 못 쓰셔서 출퇴근길 환승을 네 번이나 해야 한다는 말을 듣고 내 차를 빌려드려야겠다고 다짐했다. 어차피 평일엔 쓸 일이 거의 없으니. 
 
저녁에 그릭요거트메이커 나눔을 받으러 비엔나게이트 근처까지 다녀왔다. 채반에 매번 힘들게 엉망진창 만드느라 꼭 갖고 싶었던 것인데 이런 행운이. 오늘은 요나뽀뜨 카페에서 받은 도움이 정말 많다.
 
 
 
 
2024.08.27. 화요일
부다페스트, 맑음
 
미나리가 얼마나 키우고 싶었으면 꿈에 나왔다. 마트에서 받아봤는데 밑동이 다 잘린 채로 잎만 온 그런..... 개꿈.
 
 
 
2024.08.28. 수요일
부다페스트, 맑음
 
점심시간에 배관공과 약속이 있어 집에 다녀왔다. 금방 뚝딱뚝딱 고쳐줬고 원인도 다행히 내가 예상한 대로 고무패킹이 오래되어 그런 것이라 마음이 놓였다. 집에 간 김에 라면까지 끓여 먹고 나왔다.
 
엄마는 모레면 은퇴를 한다. 어느 정도 여유가 있는지, 무슨 대비를 해놨는지 내가 잘 알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엄마가 부럽기도 하고 당장 일 없으니 우울할 거 같다는 말에 안타깝기도 하다.

볼까 말까 고민하다가 아무도 없는 숲속에서를 보았다. 잔인한 장면이 생각보다 많이 없어 다행히 잘 볼 수 있었다. 
 
 
2024.08.29. 목요일
부다페스트, 맑음
 
퇴근 시간 다 되어서부터 저녁까지 배가 너무 아팠다. 계속 아파서 누웠다 일어났다 했다.

요거트메이커로 유청을 짜낸 이번 그릭 요거트는 뭔가 꾸덕하지가 않고 수분이 많으면서도 바스러지는 느낌이다. 맛도 좀 이상하고. 실온에 너무 오래 놔뒀나. 열심히 만들었는데 속상하다.
 
 
 
2024.08.30. 금요일
부다페스트, 맑음
 
아침에 부동산에서 연락이 왔다. 임차인 분이 만기일 맞춰서 혹은 더 일찍이라도 가능하다면 이사를 나가고 싶다고 하셨다는 것이다. 친구가 내 오래 사귄 전남친 얘길 해서 추억에 잠길 뻔하다가 화들짝 현실로 돌아왔다.
 
안 그래도 10월쯤 연락을 해볼까 했는데 미리 연락받아 고맙기도 하고, 한편으론 또 임차인을 어떻게 구하나 골치가 아파졌다. 혼자 사는 분이고, 월세 한 번 밀린 적 없고, 사는 동안 불편하니 어쩌니 연락 한 번 안 주셨던 고마운 분인데 마무리도 이렇게 깔끔히 해주셔서 정말 감사하다. 이다음 계약도 좋은 분이랑 할 수 있으면 좋겠다.

저녁에 바로 공항으로 가야 하는데 집에 두고 온 게 있어 점심시간에 걸어 다녀왔다. 김복남 살인사건 어쩌고 그 영화가 생각날 정도로... 햇빛이 진짜 너무너무 무자비하다. 여름 때문에 헝가리에서 오래 살 수 있을까 싶을 정도다.

저녁 비행기인데 웬일로 지연 1분도 안 되고 제시간에 출발했다.



숙소는 무서울만큼 조용하고 동떨어진 곳이었다. 부장님이 마침 동해 일출을 보러 가셨다며 사진을 보내 30분 통화했다. 어떤 어른 앞에서는 영원히 어릴 수 있어 좋다.

바다 건너편 어느 섬 위에는 벼락이 치고 있었으나 머리 위로는 맑은 하늘에 은하수가 쏟아졌다. 이렇게 많은 별을 평생토록 본 적이 없다. 한 시간을 누워 있으니 별똥별이 하나 지나갔다. 빌만한 소원이 없었다.

이 좋은 세상에서 건강하게 오래 살고 싶어요. 너무 외롭지는 않게.




2024.08.31~2024.09.01 코르푸 여행기로 대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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