옆집

난중일기 072 (20240812~20240818) 본문

일상, 삶/매일 비장하게 나라 구하는, 난중일기

난중일기 072 (20240812~20240818)

여해® 2024. 8. 20. 16:54
728x90
반응형



2024.08.12. 월요일
부다페스트, 맑음

아침에 뭐라 형용할 수 없이 몸이 안 좋고 이상했다. 아프다기보단 이게 무슨 일인가 무서웠다. 점심시간에 집에 가서 누워있다가 나왔다.

야근하다 보니 눈물이 나왔다. 난데없는 감정이었으나 마침 사무실에 아무도 없고 그래서 그냥 맘 놓고 울었다. 딱히 일이 힘들어서는 아니고, 그냥.

이렇게 다시 아프게 될 줄은 몰랐다. 노력했는데. 거의 1년 동안 이겨내 보려고 그렇게 애를 썼는데. 작년 겨울에 메모장에 끄적였던 것들을 꺼내 보았다. 그때보단 훨씬 상태가 나은 것 같아 다행이다.
 
 
 


2024.08.13. 화요일
부다페스트, 맑음

하루종일 일만 했다. 회사고 인간이고 너무 꼴 보기 싫어 다섯 시 되자마자 집으로 왔다. 운동도 공부도 아무것도 안 한 게 며칠인지 모르겠다. 지금은 그냥 쉬고 싶다. 쉬면서도 불안하다.
 
 
 
 
 
2024.08.14. 수요일
부다페스트, 맑음
 
하루 종일 일했다. 점심시간에 화분, 흙을 사 왔다. 그저께 도착한 일본산 참나물이라는 미츠바와 와사비 맛이 나는 채소를 심고, 깻잎을 옮겨심기 위해서다. 무슨 생각으로 저 씨앗들을 5만 원이나 주고 샀는지 모르겠다.
 
이번 주는 수영도 없다. 집에 일찍부터 들어가 있었지만 청소고 뭐고 아무것도 하기 싫어서 그냥 두었다. 저녁에 산책을 했다. 드디어 섬 음악 페스티벌이 끝났는지 조용했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가 않다. 하지만 이렇게 아무것도 하기 싫은 나를 다독이든 멱살을 잡고 끌고 가든.. 앞으로 살아갈 날이 막막하다.
 
Gyugyi's bistro 앞에 요트가 잔뜩 정박해 있었다. 낮에 보는 게 다인 줄 알았는데 이렇게 보니 다들 낮에 어딜 다녀오나 보다. 얼마 전 읽은 문장이 생각났다. 배는 항구에 있을 때 가장 안전하다. 그러나 그것이 배의 존재 이유는 아니다. 그러면 나는 지금 항구에 있는 셈인가. 마음은 저만치 떠가는데. 그래서 매일 열심히 살면서도 괴로운 걸까.
 


흙을 뜯어 나무처럼 자라고 있는 깻잎들을 큰 화분으로 옮겨 심고, 페트병 화분에 미츠바를 심었다.
 
 
 
 
 
2024.08.15. 목요일
부다페스트, 맑음
 
광복절이다. 작년에는 태극기를 프린트라도 해서 붙여놨었지만 오늘은 일이 너무 바빠서 하루종일 점심 먹고 뭐 어쩌고 할 새도 없었다. 엑셀 양식에 구현하고 싶은 게 있어서 챗지피티에게 물어보니 VBA에 넣을 코드를 알려 주었다. 매크로는 처음으로 써 보는데 꽤 재미있다. 내가 엑셀로 애먹으면 묵묵히 매크로 짜주고 도와주던 예전 회사 상사가 그립다. 광둥어 억양으로 구사하는 영어가 유난히 착하고 친근했던. 그냥 어디든 의지하고 싶은 마음인데 지금 내 자리는 너무 망망대해 위라서 그런가 보다. 그때랑은 내 나이부터 너무 다르기도 하고. 그래서 당연한 일인 걸 알지만...
 
폴란드 사는 친구에게 놀러 오라고 졸랐는데 비행기 값도 비싸고 정신없을 거 알아서 조르면서도 미안했다. 한 명만이라도 좋으니 마음 맞는 친구랑 가까이 살고 싶다. 그렇게라도 있으면 사는 게 훨씬 숨통이 트일 텐데. 
 
집에 아주 천천히 걸어가는데 공기가 훨씬 선선해진 건지, 서두르지 않아서인지 제법 시원했다. 집에 들어가자마자 자리에 누웠다. 쉬니까 몸은 편한데 마음은 불편하다. 이틀 뒤 새벽 비행이 벌써 걱정이다. 내 하찮은 체력이 염려되어 열 시간짜리 투어는 신청을 안 했다. 세 시간도 갈까 말까다.
 
엄마가 11월에 오면 같이 가려고 벨기에, 로마 비행기를 예약해 두었다. 그러면 정신없이 가을이 지나고 또 올해가 지나겠지.
 
살아갈 의지가 꺾임과 동시에 고꾸라졌던 미국 주식은 다시 고공행진을 시작했다. 돈이니까 당연히 기분이 좋으면서도 나만 제자리라는 생각에 쓸쓸하다. 내 마음도 내 의지도 숫자를 매기고 그래프로 그려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2024.08.16. 금요일
부다페스트, 맑음
 
날씨가 선선해지니까 조금씩 기운이 다시 나는 것도 같다. 이러다가 또 가라앉고 그러기 일쑤다.
 
점심시간에 학점은행제 중간고사를 쳤고 이제 홀가분하게 여행 갈 일만 남았다. 검색해 봐도 바다밖에는 딱히 볼 것이 없는 동네인데 그 바다마저도 그냥 그런 모양이다. 내 체력.. 만큼이나 안 좋은 내 핸드폰 배터리가 요즘은 보조배터리로도 역부족이라 벌써부터 걱정이다.





2024.08.17~20. 몬테네그로 여행기로 대체



728x9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