옆집
난중일기 071 (20240805~20240811) 본문
2024.08.05. 월요일
부다페스트, 맑음
자연 속에 있던 건 너무 좋은데 회사가 너무 싫어지는 부작용이 있다. 아니면 요즘 부쩍 회사에서 스트레스받는 일이 많아진 거거나.
예전에 단골집 사장님이 조금 나눠주신 날치알을 가지고 크림파스타를 해 먹었다. 뭘 잘못했는지 너무 느끼해서 반 이상 남겼다.
2024.08.06. 화요일
부다페스트, 맑음
오늘 어쩐지 불길하더라니... WSET 결과가 나왔다. Tasting은 Pass with distinction, Theory는 Fail. 예상한 결과이지만 수영이 너무 가기 싫을 정도로 기운이 빠졌다. 그래도 수영은 갔다. 우울감은 정말 수용성인가, 10분만 하고 나와도 된다고 스스로 다독이면서(혹은 또 누칼협 하면서) 갔는데 신기하게도 속도가 쭉쭉 나갔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하면서 수영하다 보니 그 순간은 다른 생각이 안 났다.
9월에 바로 시험이 있으니 열심히 해봐야겠다..는 무슨. 집에 와서 일찍 누웠는데도 자꾸 Fail Fail Fail 하면서 잠에서 깼다. 공부 그렇게 안 해놓고 이러는 내가 정말 양심도 없는 거지.
영어, 회계, 와인.. 올해 시험만 여섯 개를 봤는데 유일한 실패작이다. 그것도 내가 제일 좋아하는 와인을. 아무것도 안 한 것보단 낫다고 위로해 봐도, 왜 도대체 회피하면서 공부를 안 해놓고 이렇게 기분 잡치는 건지 이해가 되질 않아서 힘들다. 오늘만 힘들어하고, 내일부터는 다시 힘내야지. MA 시험 친 후로 모든 기운이 소진된 것처럼..... 자꾸 짜증만 난다.
2024.08.07. 수요일
부다페스트, 맑음
저녁에 아리랑에서 저녁을 먹었다. 배가 정말 부른데도 냉면은 들어갔다.
회사에 실망스럽고 화나는 일이 많아 아무 의욕이 생기질 않는다.
2024.08.08. 목요일
부다페스트, 비
새벽에 차마 어디 적지도 못할 끔찍한 꿈을 꾸고 눈을 떴다. 어디서 계속 쿵쿵쿵쿵 소리가 나서 이 시간에 공사를 하나 싶었다. 창문을 열고 나가 보니 섬 쪽에서 들리는 음악 소리였다. 페스티벌 한다고 거의 한 달 전부터 현수막을 본 것 같다. 그러려니 하고 다시 잠들었다가 또 세 시에 깼다. 음악 소리가 여전했다. 귀마개를 할까 싶었지만 요즘 자꾸 가렵고 아픈 것이 염증 걱정이 되기도 하고 내가 도대체 왜 주변의 무개념 이웃과 새벽 세 시까지 저렇게 소음을 내는 페스티벌 때문에 매번 귀마개를 해야 하는지 화가 났다.
아침에 출근하면서 스트레스가 찰 대로 찼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는 내가 오래 못 버틸 것 같다는 생각.. 또 직급이 올라갈수록, 세월이 길어질수록 회사원이 적성에 전혀 안 맞는다는 생각도. 특별히 우리 회사 문제라고 보이지는 않는다. 그러나 나는 왜 자꾸 내 탓을 먼저 할까. 뭘 하고 살 수 있단 말인가.
내가 너무 스스로를 몰아붙였나. 아니면 안 몰아붙이고 잠시 쉬어서 이렇게 다시 또 잡생각이 드는 것일까. 날씨 때문이면 좋겠고, 이까짓 회사 스트레스 때문이면 좋겠다. 일회성에 그칠 테니. 명확한 이유가 없어서 더 막막하다. 거울을 안 봐도 눈이 텅 빈 게 느껴진다.
수영이 너무 가기 싫었지만 친구의 독려로 꾸역꾸역 나갔다. 스무살은 됐을까. 앳된 선생님이었는데 영어는 서툴어도 많은 걸 가르쳐주고 싶어했다.
2024.08.09. 금요일
부다페스트, 맑음
마음이 다잡아지질 않는다. 위아래로 지친다 정말. 얼마나 더 다닐 수 있을지 이젠 진짜 모르겠다.
저녁에 승마장에 갔다. 기운이 하나도 나질 않았지만 저번 주에 탔던 너무 착한 말을 또 만나서 기분이 조금 나아졌다. 그러나 말이 좋아질수록 승마는 하고 싶지 않다. 생각이 많아진다.
2024.08.10. 토요일
부다페스트, 맑음
아침 9시 수업인 줄 알았던 수영이 8시였다. 부랴부랴 갔는데 아무도 없는 수영장에서 혼자 수영하니 너무 좋았다. 이제 자유형 말고 다른 걸 배워봐도 될 것 같다.
수영하고 돌아와 집 청소를 하던 와중에 발가락 하나에 타는 듯한 통증이 있어 누웠다. 이렇게 아픈 건 처음인데 원인을 모르니 더 무서웠다. 아마도 벌레에 물린 게 아닐까. 메디커버 응급센터에 전화를 걸었다가 그냥 끊었다. 가봤자 뭘 해주겠나 싶어서. 여기가 한국이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또 생각했다.
자고 일어나니 발 아픈 건 좀 나았고, 평소 그렇게까지 좋아하지도 않았던 복숭아가 너무 먹고 싶어 차를 끌고 테스코에 갔다. 복숭아, 오렌지, 닭고기와 채소를 샀다. 습관처럼 회사에 가볼까 싶었지만 내가 왜? 하는 생각이 들어 그냥 집으로 갔다.
저놈의 페스티벌은 이번 주면 끝나려나. 이젠 적응 돼서 귀마개 없이도 잘 잔다.
2024.08.11. 일요일
부다페스트, 맑음
닭갈비를 해서 먹었다. 닭갈비 말고도 이것저것 많이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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