옆집

난중일기 053 (20240401~20240407) 본문

일상, 삶/매일 비장하게 나라 구하는, 난중일기

난중일기 053 (20240401~20240407)

여해® 2024. 4. 8. 1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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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4.01. 월요일
부다페스트, 맑음
 
나는 정말 아침잠 때문에 큰일이다. 평소에는 새벽에 잘만 깨더니.... 일어나니까 10시였다. 한국 시간 17시. 12월부터 고생고생하며 해온 학점은행제 전 과목 기말고사 미응시가 되어버렸다. 너무 황당해서 욕도 안 나왔다.

국회의원 선거 국외부재자 투표 기간이 오늘까지라 그거라도 하려고 주헝 대사관에 갔다. 부활절 연휴라 그런지 아직 시내에 차가 많지 않았다. 대사관 대문에 너무 징그럽고 크고 색깔이 있고 무섭게 생긴 개미가.... 줄지어 기어 다녀서 손대기가 정말 싫었다. 투표장소에는 사람이 나밖에 없고 직원만 7~8명 되었다. 대학생들을 아르바이트로 채용한 것인지 얼굴이 다들 어렸다. 비례대표 투표용지가 엄청나게 길어서 새삼 놀랐다. 
 


오늘은 팀원이 부활절 식사를 대접하겠다고 나와 신입을 초대해 점심은 거기서 먹었다. 겉으로 보기엔 건물이 많이 낡았어도 실내는 잘 꾸며놓고 살아서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윗집은 전날까지 여행을 다녀온 건지 어김없이 10시부터 쿵쿵거리고 돌아다니기 시작했지만.. 그냥 이젠 진짜로 내가 왜 저 소리 때문에 스트레스받아야 하는지도 모르겠고, 귀마개 하면 된다고 생각하니 훨씬 마음이 평온해서 그저 그랬다.
 
바이올린 수업은 한국 휴가겸 어쩌고 해서 안 간 지 한 달이 넘어가는데 선생님한테 이번 주 수업을 또 못하게 되었다고 연락이 왔다. 사실... 그냥 마사지나 받으러 가고 싶었는데 잘 됐다 싶다. 가면 재밌는데 가기는 귀찮은.. 운동 같은 수업.
 
벌써 여름이 다 되었다. 반팔 입은 사람들이 많이 보인다. 비어있는 페트병으로 자동급수 화분인지 뭔지를 만들어 싹이 난 깻잎을 조심조심 옮겨 심었다. 페트병 세 개를 쓰고 나니 흙이 다 떨어졌다. 부추는 씨앗이 많아 수경 재배를 시험삼아 해보려고 설거지용 스펀지 새것을 뜯고 구멍을 뚫어 심어 보았다. 내일 테스코에 가서 흙을 더 사 와야겠다.
 
 
 
 
2024.04.02. 화요일
부다페스트, 비 오고 맑음
 
아침 6시에 눈을 떠서 그대로 잠이 더 오지 않았다. 오늘 말고 어제 이렇게 일어나지 정말.. 원망스럽다. 학은제 미련을 못 버리겠다. 내가 4개월 동안 얼마나 열심히 했는데... 물론 다 내 잘못이다. 고객센터에 전화해서 다 죽어가는 목소리로 애원하니까 시험창을 열어주었다. 다만 성적은 B+가 최대란다. B+라니요... 아무래도 재수강해야겠지.. 안녕, 내 4개월.....
 
회사에 걸어가려고 대충 입고 나왔는데 비가 많이 오고 있었다. 다시 집으로 들어가 외투를 입고 차를 끌고 나왔다. 
 
점심에 테스코 가서 흙도 보고 식물 영양제도 보고 했지만 도무지 모르겠고 머리 아파서 일단 내려두고 왔다. 도대체 나에게 머리 안 아픈 일이 뭘까? 이번 달에 급여 인상, 상여 지급 등등 뭐가 많기도 너무 많아서 회의를 내일로 미뤘다. 이 또한 머리가 아프다.

오랜만에 칼퇴해서 집 정리를 좀 하고 7시에 마사지를 갔다. 받을 때는 이게 무슨 새로운 방식이지 싶었는데 끝에는 진짜 진짜 자리에서 못 일어날 정도로 노곤해졌다.

남은 양배추와 말라비틀어진 파를 넣고 드디어! 순대볶음을 해 먹었다. 너무 많아서 좀 남겼다.



2024.04.03. 수요일
부다페스트, 맑음


아침에 괜히 귀여워서 찍어본 깻잎과 오렌지, 레몬들. 우리 집은 완전히 서향이라서 햇빛이 많이 안 든다. 온실 같은 회사에 가져가야 하나 고민된다.

오늘은 이민국에 지문 등록하러 가는 날인데 예약한 게 의미가 없을 정도로 그냥 무작정 오래 기다렸다. 게다가 번호표 뽑는 창구 직원이, 지문 등록하러 왔다는 내 말을 못 알아듣고 전자 제출한 내 케이스가 이미 진행 중이라며, 너 어제 오지 않았었냐며 (제가요..?) 안 들여보내주려 해서... 거의 50분을 번호표 뽑는 데에 허비했다. 길거리 주차는 한 구역에서 보통 3시간까지만 가능한데 기다리다가 3시간이 넘어 다른 구역에 주차하느라 정말 너무 힘들었다.... 이민국 업무는 너무 힘들어. 진짜 이제 이것으로 4년간 빠이.

날씨가 얼마나 맑고 청량한지 모른다. 기분이 좋지만 동시에 또 엄청날 여름 햇빛이 두려워진다. 작년에는 내가.. 아무래도 햇빛 때문에 제정신 잡기가 힘들었던 게 아닐까 싶다.

밤에 도수치료를 갔다. 몸이 많이 좋아졌다고 했다. 잘 모르겠지만.. 운동은 정말 해야겠다.
 
 
 
2024.04.04. 목요일
부다페스트, 맑음
 
이상하게 몸이 계속 개운하지 못하고 몹시 피곤하다. 급여를 처리했다. 한국에서 쓴 돈이 너무 많아 정말 통장을 그냥 스쳐 지나갔다.
 
저녁에 부사장님, 부장님과 강식당에서 밥을 먹었다. 부사장님이 축의금 관련하여 계속 고맙다고 감동이라고 하셔서 정말 민망했다. 부장님 오기 전까지 신입 칭찬을 많이 했다. 내가 뽑았다고 어필도 잊지 않았다. 오랜만에 술을 마시니 정말 적은 양에도 취했다. 집까지는 걸어갔다.
 
 
 
 
2024.04.05. 금요일
부다페스트, 맑음
 
아침에 몸이 너무 안 좋아 일어나지 못했다. 깨기는 새벽 두 시에 한 번, 아침 여섯 시에 또 한 번 깼는데 속이 계속 안 좋고 힘들었다.
 
오후에 현지인 팀원과 면담을 잠깐 했다. 얼마 전 미팅에서의 일을 이야기한 것인데, 이해는 다 되는 말들이지만.. 그냥 내가 별로인 팀장 같다는 생각만 계속 든다. 뭐 근데 언제는 잘한 적이 있었나, 내가. 중학교 1학년 때인가 강제로 임시 반장 딱 한 번 해본 게 다다. 회사는 이래저래 나한테 참... 잘 맞는 듯 안 맞는 듯.. 오묘한 존재다.
 
깻잎은 잘 자라고 있다. 요즘 아침저녁으로 이거 확인하는 즐거움으로 산다. 부추도 씨앗 한 개는 벌써 뿌리를 내렸는데 스펀지에서 잘 자라 줄지 진짜 모르겠다. 너무 연약한 것이 이상한 방향으로 뿌리를 냈던데 걱정스럽다.
 
저녁에 마사지를 가려했으나 너무 늦게 예약 시도해서 실패. 그냥 테스코에 가서 흙이랑 영양제, 키친타월, 식용유를 사기로 했다. 내일은 옆팀 대리님네 부부랑 센텐드레에 소풍을 가기로 해서 함께 마실 와인, 그리고 운전하실 대리님을 위해 무알콜 맥주도 샀다.


이것저것  보이는 대로 담다 보니 많이 사서 카트를 끌고 차까지 가는데 속이 안 좋고 또 어지러웠다. 집에 와서 누우니 좀 나았다.
 
햇빛이 점점 드세지고 있다. 오늘은 점심시간~오후 세 시까지 그야말로 숨이 턱턱 막혔다. 무슨 생각으로 남동향에 통창을 낸 것일까. 하긴, 무슨 생각이 있었겠어. 의미 없다.
 
 
 
 
2024.04.06. 토요일
부다페스트, 맑음

 

아침에 겨우 일어나 씻고 대리님네 부부를 만났다. 센텐드레 정도 거리라고 생각했는데 예상보다 멀리 에스테르곰까지 갔다. 사진에 다 담지 못했는데 양 옆으로 강이 흐르는 캠핑/피크닉 명당이었다.

 
 와인은 화이트, 로제 각 한 병씩 가져갔고 모자랐다. 근데 딱 이 정도가 좋았다. 운전해야 하는 대리님은 무알콜 맥주.

 

 

 

도착하자마자 허겁지겁 먹은 컵라면. 진짜 맛있었다. 나는 캠핑은 도무지 밖에서 자는 걸 못하겠어서 싫고 딱 여기까지만 좋다. 

 

 

 

낚시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사람이 아주 없지도, 많지도 않아서 적당히 한적하고 안전한 분위기를 즐길 수 있었다. 생각보다 너무너무 좋아서 몇 번이나 감사인사를 했다. 대리님의 부인은 어리고 예쁘고 조용하다. 나랑 같은 인프피라는데 나보다 더 많이 내향적인 사람 같아서 마음이 놓였다 (?).

 

돌아오는 길에 조금 멀미했고 쓰러져 잤다. 윗집에서 뭘 또 쿵 내려놓는 소리에 밤 10시쯤 깼다.

 

 

 

 

 

2024.04.07. 일요일

부다페스트, 맑음

 

점심 저녁 모두 약속이 있었다. 점심은 이른 시간에 브런치를 먹고 저녁에는 왕푸에 가서 훠궈를 먹었다. 왕푸 먹고 나서는 옆에 있는 공원을 걸었다. 처음으로 유료 화장실도 써봤다. 돈 낼 가치가 있었다.

 

걷다보니 영웅광장까지 가서, 같이 밥 먹은 분과는 거기서 헤어지고 다시 왕푸까지 천천히 걸어갔다. 풍경이 참 예쁜데 사진에 어차피 안 담길 걸 알아서 그냥 걷기만 했다. 생각없이 틀어둔 노래 중에 와닿는 가사가 있었다. What hurts is the one thing that you wanna do is the one thing that you shouldn't do. 열병에 시달렸던 작년 여름 가을이 또 생각났다. 이제 아무렇지 않아져 허무할 정도로, 또 하나의 먼 옛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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