옆집

난중일기 052 (20240325~20240331) 본문

일상, 삶/매일 비장하게 나라 구하는, 난중일기

난중일기 052 (20240325~20240331)

여해® 2024. 4. 1. 0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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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3.25. 월요일
부다페스트, 맑음
 
아침에 회사 일을 하다가 갑자기 삘이 와서 (?) 루도비코 에이나우디 콘서트를 검색하니 과연 12월 일정이 풀려 있었다. 밀라노에서 하는 콘서트를 예매했다. 여러 번 갔던 곳이라 그런지 그냥 갔던 데가 편하다. 숙소 가격이 너무 비싸서 깜짝 놀랐다.
 
부활절 때 아무 데도 안 가려니 아쉬워 계속 비행기며 기차며 찾아보다가 바리를 가보기로 했다. 작년에 나만 거주증 없어서 친구들 가는데 못 따라갔던 곳이다. 한국인 후기만 보고 해변 앞 숙소를 잡았다.
 
블루카드 신청서를 다 내고 결과를 기다리는 중이다. 이번에는 에이전트 없이 꼭 성공해서 더 불안할 일 없게 하리라. 솔직히 에이전트에 대해 할 말이 너무 많지만, 작년 이맘때쯤 덕분에 심적안정 찾은 것 때문에라도 업체 이름은 여기 밝히지 않겠다. 그러나 정말 정말 엉망진창이다. 괜히 회사에 소개해 내 위신만 깎였다. 자만심이 아니라 진심으로 이젠 거주증에 대해 내가 아는 게 더 많을 것 같다.
 
저녁에 회사에 남아 일을 조금 하다가 테스코에 가서 장을 봤다. 분명히 할인인 걸로 보고 냉동 피자를 두 개나 샀는데 할인도 안 됐고... 집에 돌아와 보니 냉동고가 꽉 차서 하나는 도저히 들어가지 않아서 그냥 구워 먹었다. (핑계가 아주 좋다.)
 
며칠 전부터 시작한 운동 때문에 온몸이 아프다. 특히 팔은 위로 들어 올리기가 힘들 정도로 아프다. 운동하고 나서 이런 근육통이 생기면 기분이 왜 이렇게 좋은지 모르겠다.
 
깻잎을 본격적으로 키워보려고 계란 상자에 흙을 담고 모종 키우기를 시도하였다. 중간에 작은 벌레가 나와서 정말 소름이 쫙 돋았지만 농사꾼(?)에게 벌레는 피할 수 없는 운명 같은 것. 이번에는 꼭꼭 잘 키우고 전조재배해서 겨울까지 먹어야지.
 
일찍 누웠지만 윗집 때문에 새벽 한 시 넘도록 잠을 못 잤다.
 
 
 
 
2024.03.26. 화요일
부다페스트, 맑음, 강풍
 
아침에 세종사이버대에 전화해 학자금이랑 생활비 대출 실행을 하였다. 1.7%의 저이율이라 일단 받는 게 이득이라 여겨서였다.
 
후배가 바리는 저녁에 예약 없이는 밥 먹을 수 있는 식당이 없었다고 하여 토요일 저녁 식사도 숙소  근처로 예약했다. 과연 매우 작은 식당인데도 토요일 저녁은 7시 30분밖에 남은 자리가 없었다. 금요일 저녁은 스시 올유캔잇을 예약해 두었다. 그나저나 건강검진 결과 때문에 술맛이 다 떨어져서... 이탈리아 풀리아 지방에 가는데 와인은 생각도 못하겠다. 내 몇 안 되는 취미 중 하나인데.. 속상하다...
 
학점은행제로 따는 심리학사는 이제 진짜 막바지에 이르렀다. 매일같이 출석하고 중간고사 보고 과제하느라 공항 라운지에서까지 매달리고..... 그래도 이렇게 언젠가 끝이 오긴 오는구나. 성적이 나쁜 과목들은 학점 포기 후에 재수강을 할지 고민해 봐야겠다.
 
심리학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노량진에서 만난 동생과 한 대화가 기억에 남는다. 언니 뭘 하고 싶은 건데? 나도 몰라. 그냥 이것저것 다 하고 싶어. 언니 한국 안 오려고? 몰라. 이렇게 줄글로 적어놓고 보니 한심하기 짝이 없다. 헝가리 살면서 넴뚜동이 말버릇으로 옮은 걸까. 그런데 정말 모르겠는걸. 일단 WSET 3은 만만치 않고, 그 이후에는 ACCA가 있고, 심리학 대학원 가기엔 무엇보다도 돈이 없다. 몇 천은 현금으로 모아야 겨우 할 수 있는걸. 늘 스스로 하는 말이지만, 당장 내일도 알 수 없는 게 사람 일이니까... 걱정하지 말자. 오늘 하고 싶은 걸 하자.
 
회사에 더 앉아있고 싶은데 컨디션이 이래저래 별로여서 그냥 집에 가기로 했다. 집에 가봤자 윗집 때문에 스트레스만 받는 거 일찍 가고 싶지도 않아서.. 근데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하는 거지. 같은 가격엔 갈 만한 집도 없고. 그래서 오늘부터는 귀찮아도 본격적으로 천장을 치기로 마음먹었다. 그러나 집에 가니까 다 귀찮아지는 게 아닌가. 얼마나 만사가 다 귀찮으면 심지어 바리 여행 예약한 것까지 조금 후회하였다. WSET 교재를 읽어보기 시작했다. 또 설레발이긴 한데.. 너무 어렵고.. 양이 많고.. 떨어질 것 같다......
 
귀마개가 혹시 효과가 있을까 싶어 예전에 LOT 타고 받았던 귀마개를 해봤다. 귓구멍을 꽉 막으니까 확실히 소리가 안 들리긴 했다. 일찍부터 푹 잤다.
 
 
 
 
 
2024.03.27. 수요일
부다페스트, 맑음, 강풍
 
총에 맞는 꿈을 꿨다. 길몽이라곤 하지만 나는 그런 미신적인 해몽보다 현실적으로, 내가 마음이 많이 불안했다고 생각한다. 꿈에 의사 선생님도 나왔다. 갑자기 유명해져서 진료 보려면 한참을 기다려야 하는 그런 사람으로.. 이래저래 한 달 만에 진료를 보러 가는 날이라 긴장한 것 같다. 아무리 생각해도 한국에서 뭐라도 선물로 사 올걸 싶다가도, 싼 건 허접하고 비싼 건 부담스러우니 다시 시간을 돌린다 해도 마땅한 게 없긴 하다.
 
엄마가 호구 잡힌 연금보험을 해지하고 계좌에 돈을 넣어 주었다. 이제 엄마 것도 내 투자금이랑 얼추 비슷하게 굴릴 수 있을 것 같다. 이렇게 돈 굴리는 재미를 진작 알았으면 지금쯤 나는 은퇴도 하고 즐겁게 살았으려나. 동생이 준 스탠리 텀블러를 오늘 드디어 회사에 가져왔다. 그런데 캐리어에서 어딘가에 찍혔는지 흠집이 크게 나있어 속상했다.

한 달 만에 만난 선생님은 여전히 앞 환자를 정성껏 돌보고 있었다. 이번엔 좀 심각하게 오래 걸려 거의 한 시간을 기다렸다. 헝가리어라서 잘 들리지 않지만 엄청 공격적이고 높은 톤의 목소리가 다다다다다 들려오는데, 내가 선생님을 좋아해서 팔이 안으로 굽는 건지 모르겠지만 늦는 것에 대한 불만보다는 보나 마나 저 환자가 진상일 거라고 생각했다. 생긴 건 진짜 말끔하니 멀쩡했는데 선생님 얼굴이며 목소리가 말이 아니었다. 심지어 내가 진료받는 도중에도...... 두 번이나 다시 얘기 좀 하고 싶다며 병원을 찾아왔다고 리셉션에서 연락이 왔다. 개진상..... 꿈 얘길 하니까 그제야 크게 웃었다. 우상화하면 안 된다고 하는데, 나도 알고 있지만 어떡해. 잘생기고 똑똑해서 너무 좋은데.
 
저녁에 사무실에 가서 일을 마쳤다. 집에 돌아가는 길에 Spar에서 페로니 무알콜 맥주를 샀다. 알콜 들어간 건 양심상 못 먹겠어서 대안으로 먹는 것이다. 나름 맥주맛이랑 거의 비슷하다. 방울토마토도 사서 냉동피자를 데워 먹을 때 몇 개 올렸다. 밤에 배가 많이 아파서 깼다. 윗집은 부활절 연휴라고 놀러 간 것인지 절간처럼 조용했다.
 
 
 
 
 
2024.03.28. 목요일
부다페스트, 맑음, 강풍
 


점심으로 팀회식을 대체했다. 기억하고 싶지 않은 일이 있어 스쳐지나가며 쳐다도 안 봤던 곳인데 이젠 그냥 힘들지 않다. 다 극복한 모양이다. 맛은 여전히 그저그렇다.
 
회계 감사를 받으며 또 몰랐던 내용들을 알게 된다. 그런데 정말 헝가리 회계원칙은 이해를 할 수가 없다. 인보이스도 지들 멋대로고... 웬만하면 법칙 원칙 읽으면서 마음으로 이해하는 편인데 정말 정말 납득하기 힘들고 기준도 못 세우겠다. 다들 무슨 머리로... 하고 있는 걸까. 그래도 그다지 화가 난다거나 바보들이라거나 그런 생각은 또 안 든다. 이제는 정말로 여기 정착하고 있는 중인 것 같다. 슬슬 헝가리어도 배워볼까 생각하고 있다. 듀오링고 실수로 1년 결제한 김에..
 
공항 주차장을 예약하려고 보니 모두 예약 불가 상태로 떠서 살짝 막막하다. 특히... 돌아오는 비행기는 엄청 늦은 시간이라 피곤할 텐데.. 원래는 하루 전이면 충분한데 부활절 연휴라고 이런 모양이다. 공항버스 타려다가 사설 주차장이랑 비용 차이가 3천 포린트밖에 안 나서 그냥 주차장을 이용해 보기로 하였다. 
 
점심시간에 차를 집에 두고 왔는데 퇴근할 때쯤부터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옆팀 분들이랑 놀다가(?) 7시쯤 퇴근했다. Spar에 들러 모짜렐라 치즈를 사서 엽떡을 끓여 먹었다.



2024.03.29. 금요일
바리, 맑음

평소처럼 일어났다. 비행기에서 자세가 잘못되었는지 하루종일 허리가 아팠다.

바리는 부다페스트보다 남쪽이라 따뜻해서 조금 걸었더니 땀이 날 정도였다. 에어비앤비는 오랜만이라 옆방을 다른 사람이 쓴다는 걸 깜빡하고 있었다. 남자여서 불편했다. 저녁으로는 초밥을 먹었다. 와인을 한 병 사 와서 한 잔 마셨다.


2024.03.30. 토요일
바리, 맑음

조식이 마음에 들었으나 옆방 남자가 역시 불편했다. 큰 소리로 기침을 계속하는데 감기라기보단 그냥 습관성인 듯했다. 쉴 수가 없는 소음 가득한 세상아.

숙소 앞 해변에 멍하니 앉아있었다. 날씨가 따뜻해 벌써 물에 들어가 노는 사람들이 많았다. 버스를 타고 중심지로 나가 올드타운까지 구경했다.



2024.03.31. 일요일
부다페스트, 흐림

바리는 매우 작은 도시다. 더 볼 곳이 없고 설상가상 부활절이라고 모든 곳이 닫았다. 점심 먹고 나서는 스타벅스에서 세 시간이나 있었다. 바닷바람이 머리를 다 헤집어 놓는 통에 이젠 조금 지겨워서 집 생각이 간절했다. 공항에서도 시간이 많이 남았고 죽치고 앉아 소설만 읽었다.

피곤해 죽겠다. 내일이 쉬는 날이라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집에 오니 깻잎에 싹이 나있었다. 그런데 너무 축축하고 그늘지게 놔둬 그런지 곰팡이가 펴있는 것도 좀 있다. 얼른 바깥에 놔두었다. 제발 살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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