옆집

난중일기 054 (20240408~20240414) 본문

일상, 삶/매일 비장하게 나라 구하는, 난중일기

난중일기 054 (20240408~20240414)

여해® 2024. 4. 15. 0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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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4.08. 월요일
부다페스트, 맑음
 
새벽에 계속 배가 아파서 깼다. 아무래도 전날 훠궈 먹은 것 때문인 듯했다. 그리고 기분이 몹시 더러운 꿈을 꿨다.
 
출근해서 사무실에 들어오니 큰 벌이 방 안을 날아다니고 있었다. 공포 그 자체. 소리 지르고 싶었지만 침착하게 창문을 열어두니 다행히 곧 나갔다. 
 
아우디 서비스센터에 가서 회사 차를 맡겼다. 사람도 일 년에 한 번 건강검진받아야 하니 비슷한 거라고 생각한다. 이럴 땐 참 사람 몸이 기계랑 다를 바 없다고 느낀다. 오후에는 내가 직접 운전해 와야 해서 착잡했는데 다행히 부장님이 같이 가 주셨다. 너무 크고 너무 비싸서.. 내가 건드리기 싫다. 엔진오일 값도 엄청 많이 나왔다.
 
햇빛 때문에 등과 뒤통수가 타버릴 것 같다. 괴롭다.... 암막 커튼을 달아도 해결이 안 될 것 같은 햇빛이다. 벌써 이런데 7~8월 되면 어찌 살아갈까. 작년 여름에 어떻게 버텼는지 기억이 안 난다. 5시가 넘어도 열기는 쉽게 가시지 않았다. 내일부터는 그냥 팀원들이랑 같은 방에서 일하기로 했다. 혼미한 정신으로 야근을 했다. 6시 30분쯤 되어서야 공기도 식고 내 머리도 식었다. 오래간만에 야근으로 늦게 집에 갔다.
 
 
 
 
 
 
 
2024.04.09. 화요일
부다페스트, 맑음
 
속이 계속 불편해서 세 시간밖에 못 잤다. 문득 한국에서 한의원 소화제 받아온 것이 생각나 한 포 먹고 겨우 잠들었다. 신용대출 만기가 다가오고 있는데 내가 국내에 소득 없는 게 갑자기 걱정이 되기 시작해서 더더욱.
 
방에 도무지 못 있겠어서 팀원들 있는 사무실로 옮겼다. 등 뒤로 통창이 없으니 훨씬 살 것 같다. 에어컨이 얼른 나왔으면 좋겠다. 간만에 다른 사람들이랑 같은 공간에서 일하려니 모든 행동이 조심스럽다. 그런데 사실 이게 맞는 건지도. 혼자 있는 게 익숙해 버릇 이상하게 잘못 들기 전에.
 
저녁에 이사님, 신입과 비빔밥에 가서 삼겹살, 비빔냉면을 먹었다. 오랜만에 먹으니 정말 맛있었다. 조만간 또 혼자 가서 털어야지. 요즘 왜 이렇게 손발이 많이 붓는지 모르겠다. 
 
집에 와서 듀오링고로 헝가리어 연습을 조금 하고, 귀마개를 끼고 잤다. 윗집은 여전하고 옆집에선 요즘 노래를 늦게까지 틀고 둘이 파티를 하는데 그렇게 신경 쓰이는 정도는 아니다.
 
 
 
 
 
 
2024.04.10. 수요일
부다페스트, 맑음
 
그저께 세 시간밖에 못 자서 그런가 10시간을 잤는데도 일어나기가 힘들었다. 중간중간 잠에서 여러 번 깼다. 
 


통화하다가 스탠리 텀블러에 있던 커피를 와장창 쏟았다. 팀원들이 달려와서 도와주고 닦고 정신없는 와중에 나 이거 철없이 사진 찍어도 돼? 하고 찍었다.... 지금 다시 보니 진짜 더 철없다.
 
점심에 간만에 KFC를 먹을까 하다가 4,000 포린트가 넘는 것을 보고 그만 두었다. 사흘 연속 중국 음식점에서 오렌지치킨과 볶음밥만 먹고 있다. 손발 붓는 게 이 염도 때문인지..
 
마사지라도 가고 싶은 찌뿌둥한 컨디션인데 예약할 때를 놓치고 말았다. 요즘 진짜 왜 이렇게 피곤한지 영문을 모르겠다. 한국 다녀오고 나서부터 계속 그런 것 같다. 10월에는 이코노미 타야 할 텐데 어쩌면 좋은지..
 
오늘은 한국의 국회의원 선거일이었다. 내 표도 잘 갔겠지? 그래서 국장은 휴장일이었고 미장은.... 퇴근 시간 즈음 켜 보니 cpi 발표 이후로 나락을 가고 있었다. 내일 국장이 걱정스럽다.
 
이민국에서 집 계약서와 급여 명세서 등 추가 서류를 요구하는 문서를 보냈다. 만약 15일 이내에 제출하지 않으면 케이스를 취소시키겠다는 통보였다. 이제야 이전에 내 케이스가 왜 취소되고 무슨 서류가 누락이 됐고 어쩌고 했던 건지 알 것 같다. 그냥... 이런 통보를 제때 확인하지 않은 것. 역시 그냥 스스로 신청해서 확인하는 게 최고 같다. 
 
 

2024.04.11. 목요일
부다페스트, 맑음

갑자기 이사님이 비용 보고서를 요청받으셔서 나도 머리 쥐어뜯으며 풀집중했다. 끝내고 나니 6시였다.

옆팀 대리님네 부부를 급 초대하게 되었다. 저번에 피크닉에서 말이 나왔던 삼겹살이다. 리들에 가서 장을 봐왔다. 집 청소를 하는데 어쩌면 이렇게 더럽게 사는지 한숨만 나왔다.



2024.04.12. 금요일
부다페스트, 맑음

회사는 여느 때와 같았고 점심에 스위스클리닉 심장내과를 다녀왔다.

그리고 여기서 엄청 반가운 사탕을 만났다. 무려 작년 초에 처음 먹고 아무 데서도 못 구했던 요구르티니! 어디서 살 수 있냐고 직원에게 물어보니 레헬 마켓에서 대용량으로 판다고. 꼭 사러 가야겠다.



근처에 Pho king인가 King pho인가 쌀국수집 평점이 무려 4.9점이길래 들어가봤다. 쌀국수 맛이 훌륭하고 직원의 프로답고 친절한 미소에 무한 신뢰가 생겨 버블티도 도전해 봤는데.... 다 버렸다. 버블티는 버블티 가게 가서 먹는 걸로. 옆 테이블에 한국인 학생이 “그저께 oo오빠 테이블 계산 어떤 어른이 내줬대 존멋” 하면서 수다 떨고 있는 걸 들었다. 나도 존멋이 되고 싶어서.. 는 농담이고 그냥 학생 때 나도 누가 말없이사준 적이 있기에 몰래 그 테이블까지 계산하고 나왔다. 유학생이니 나보다 부자일 가능성이 높지만.

저녁 6시 30분에 시작한 삼겹살 파티는 새벽 한 시까지 계속됐다. 대리님한텐 죄송한데 대리님보다 대리님 아내가 훨씬 더 좋다. 번호를 주고 받았다. 다음엔 둘이 노는 것도 가능할 것 같다.



2024.04.13. 토요일
부다페스트, 맑음

얼마 전 한인 카페에 올린 친구글에 연락 주신 한 분을 만났다. 나랑 동갑이시고 여러 사정이 비슷해 말이 잘 통했다. 내일 훠궈를 먹으러 가기로 했다.

오후 3시에는 바이올린 수업을 갔다. 오랜만에 해보니까 팔이 너무 아팠다. 선생님은 여전히 특이하시고.

집에 돌아왔는데 biang bistro 마라탕면이 너무 먹고 싶었다. 너무 피곤해서 30분만 자야지 했지만 언제나 그런 계획은 망하고 말지. 눈 뜨니 9시였다. 애매한 시간. 속이 더부룩해서 깬 거라 더 기분이 안 좋았다.

심심풀이로 시작한 듀오링고를 하다 보니 두 시간이 지나 있었다. 헝가리어가 알면 알수록 나름 체계 있는 언어임에 놀라고 있다.


2024.04.14. 일요일
부다페스트, 맑음

밀린 설거지를 하고 샤워를 하고.. 운동 삼아 트램정거장까지 걸어갔다. 햇빛 때문에 돌아버리는 줄 알았다. 양산을 다시 꺼낼 때가 됐다. 4월에 28도라니... 여름이 시작됐다.

훠궈를 실컷 먹고 공원 산책도 했다. 오랜만에 YOUCHA도 갔다. 친구 찾기 글을 보고 한 분이 더 연락을 주셔서 보니까 우리 회사랑 지척에 있는 건물에 계신 분이었다. 너무너무 반가운 것이 왜 학연 지연이 있는지 알겠는 정도였다.

아무리 걸어 다니고 소화제를 먹고 지압에 스트레칭에 요가 자세에 뭘 해도 배에 가스만 차고 소화가 안 된다. 결국 열 시 넘어 다시 나갔다. 한 시간을 땀나게 걷고 뛰고 해도 배가 꺼질 줄을 몰랐다. 신나게 운동 돌린다고 꺼지는 건 내 핸드폰과 애플워치뿐. 하....

익숙한 동네 풍경에 헤어진 사람 생각이 또 났고 이젠 그게 불편하지도 않은 내 마음을 신기하게 바라보았다. 레몬을 보면 침이 고이는 것처럼 그냥 기억의 습관이다. 내가 운동하는 게 습관으로 굳어질 때쯤 이 습관은 완전히 사라지겠지. 매일 다른 장면으로 익숙한 추억을 덮는다. 나만큼은, 이번만큼은, 안 될 줄 알았는데 나라고 별다를 것 없어서. 그냥 하나의 조각일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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