옆집

난중일기 001 (20221128~20221203) 본문

일상, 삶/매일 비장하게 나라 구하는, 난중일기

난중일기 001 (20221128~20221203)

여해® 2022. 12. 4. 0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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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1.29.
에쉬본, 흐리고 비옴

첫 일기다. 사진 위주로 화려하게 이런저런 글 쓰는 거는 별도 카테고리에 넣고, 매일 조금씩이라도 끄적여서 기록하는 용도로 일기를 쓴다. 제목이 왜 난중일기냐면, 첫째, 내가 제일 좋아하는 작품 중 하나이고, 둘째, 요즘은 그야말로 난세로다.

내일 드디어 부다페스트로 떠나게 되므로 하루종일 사무실에서 짐을 싸고 호텔에서도 짐을 챙겼다. 한국에서 떠날 땐 가족들이 도와 줬는데 혼자 하려니 힘이 부쳤다. 부끄럽지만 이 나이에도 정리정돈이나 뭘 차곡차곡 쌓는 것에 자신이 없다.


 

헝가리는 부가세가 27%나 되는 나라다. 독일도 싸진 않지만, 최소 배송비라도 아끼잔 마음에 퇴근길에 애플TV도 구매했다.

역마살도 이정도면 질려서 도망갈 지경이다. 한국은 갑작스런 한파가 찾아온다고 혼란스러워한다. 두달 남짓 살았더니 나름 정이 들었는지 이 호텔에서 마지막 밤이라 생각하니 기분이 이상하다.



2022.11.30.
부다페스트, 흐림

아침에 남은 짐을 마저 챙기다가 회사에 조금 늦었다. 늘 주차하던 자리에 어떤 차가 주차되어있어 아침부터 허둥거렸다. 잠깐 트렁크까지 옮기는데도 짐이 너무 무거워서 캐리어가 잘 버텨주었으면 했다. 점심에 간짜장을 시켜먹는데 정신도 없고 어쩐지 부담스러워 반도 못 먹고 내려놨다. 짐이 보통 많은 게 아니라 갈 길이 걱정됐다. 그래도 도착해서 짐 풀면 뿌듯할 거야 다독이면서 갔다.

루프트한자는 어김없이 오늘도 지연되었고 나는 노트북 세개, 아이패드 하나가 든 가방이 천근만근이라 면세점 구경도 못하고 그저 앉아있었다.

비행 자체는 평화로웠지만 비행기가 꽉 차서 짐 넣을 곳이 없어 힘들었다. 수하물을 찾아서 보니 캐리어 바퀴가 깨져있었다. 오래 쓰기도 했고.. 버리고 새로 사야지.

집주인 부부가 나를 오래 기다려주었다. 초콜렛도 선물해 주고. 영어는 잘 안 통하지만 까다롭지 않고 다정한 사람들같아서 좋다. 들어서자마자 집이 훈훈해서 좋았는데 생각해보니 내 관리비가 될 것이라 우선 다 꺼버렸다.

마사지를 예약해 받으러 갔다가 웨스트엔드에서 물, 맥주, 피자, 세제를 사들고 돌아왔다. 샤워를 하는데 샤워커튼이 없고 건식 욕실이라 바닥에 물이 흥건했다. 이걸 앞으로 어쩐다? 완전히 빈 집이라서 살 게 정말 많다. 사진으로 봤을 땐 이불인 줄 알았던 것이 그냥 침대 패드라서 내일은 퇴근 후 이불부터 사러 가야겠다.


2022.12.01.
부다페스트, 흐림

전날 히터를 다 꺼뒀던 게 후회될 일이었다. 밤에 몹시 추웠다. 원래 추위를 안 타는 편이고, 최저 기온이래봤자 7도 정도라 우습게 봤는데 강가에 있는 집이라 그런지 음습하면서 춥다. 영국에서 유학했던 친구가 수치만 보고 안심 금물이라며 꼭 수면잠옷을 챙겨가라 한 게 내내 생각났다. 탈수할 때 세탁기 소음이 어마어마해서 중간에 끄고 건조기를 돌렸는데 아침에 꺼내보니 전부 축축했다. 원래 입으려던 옷을 포기하고 스웨터에 청바지를 입었는데 은행 미팅에서 조금 창피했다.

모르는 언어로 계속 떠드는 사무실에 앉아있으니 정신이 혼미하다. 재무팀 방이 따로 생긴다고 하니 안심이긴 한데, 내년에 옮길 사무실은 그렇지 않은 듯 하다. 다시 얘기해 봐야지. 오늘은 이동이 많은 날이다. 은행 미팅, 공증 사무소 때문에 아침, 저녁 연속해서 세체니온천까지 나갔다. 저녁에는 차가 너무 많이 막히는데 히터를 너무 때고 컨디션이 좋지 않아서 정말 다 벗어던지고 싶었다. 회사도 히터가 그렇게 심하더니... 지겹다. 잘 땐 춥고 다른 데선 덥고 아주 난리가 났다. 다신 스웨터 입지 말아야지.

공증 사무소에 갔다가 비빔밥에 들러 비빔냉면을 먹었다. 느끼하고 멀미나던 속이 풀렸다. 저녁에 살림 장만하러 옆 두나플라자에 두 번 왔다갔다 했고 드디어 이불이 생겼다.


조금이라도 따뜻함을 느껴보려고 린스, 로션, 바디샤워 모두 코코넛향으로 구매했다. 피곤해서 그런지 잇몸이 부었다.




2022.12.02.
부다페스트, 흐리고 비옴 야근할 각오로 출근을 했다. 어제 오늘 연속 2분 정도 지각했는데, 걸음이 느린 건지 길을 헤맨 건지 잘 모르겠다. 몸 상태가 아직 너무 안 좋다.

점심에는 동료들과 차로 30분 거리의 함바집에 갔는데 맛이 괜찮았다. 한식을 먹을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 오늘은 마감을 하는 날이라 12시 넘어서까지 야근을 했다. 사람들 탓을 하는 건 정말 아니고, 단지 조용한 사무실에 있다가 온갖 소리가 다 오고가는 곳에 있으려니 집중력이 많이 떨어졌다. 사람들 퇴근한 후에는 좀 조용하려나 싶었는데 청소하시는 분이 와서 청소기를 돌렸다. 난 왜 이렇게 소음에 약할까.

집에 인터넷이라도 된다면 집에서 했을 텐데. 얼른 인터넷 수리가 끝났으면 좋겠다.

퇴근하고는 24시간 운영하는 테스코에 들러 식기류와 휴지통을 샀다. 와인도 사서 집에 남은 피자와 함께 한 병을 비웠다.

2022.12.03.
부다페스트, 잠깐 맑다 흐림

아침에 친구와 영상통화하기로 한 시간을 넘기고 늦잠을 잤다. 전날 너무 늦게 잔데다 와인을 많이 마셔서이다. 두시간 가까이 통화했고 주로 내 새로운 생활 얘기였다.


점심에 예약해둔 군델 레스토랑에 갔다.

메인 음식보다는 디저트가 조금 더 맛있었다. 라이브로 연주하는 걸 보는 재미도 있다. 이건 상세히 리뷰하기로 하고.


식사를 마치고 미술관에 갔다가 둘러볼 시간이 세시간밖에 안 남은 걸 알고 그만두었다. 다음에 여유를 가지고 다시 가야겠다.


얼마전부터 눈앞에 아른거리는 막스마라 코트를 입어보러 매장에 갔다. 마담코트는 하나 남았다는데 사이즈가 딱이었다. 살이 하도 많이 쪄서 옷 태가 안 날 줄 알았는데 역시 이탈리아가 옷을 잘 만든다. 오늘 조금만 더 고민해보고 내일 가서 사든지 내년으로 넘기든지 해야겠다.

 


알자에 가서 애플티비에 쓸 hdmi 케이블을 샀다. 쇼룸이 있대서 기대했지만 텅 빈 느낌, 우중충했다. 구매하는 방식이 특이한데 직원과 함께 홈페이지를 보며 물건을 고르고 핀번호를 받아 셀프 계산대에서 계산, 후에 픽업대에서 픽업하는 식이다.



 

두나플라자에서 마사지 시간 기다리며 네스프레소 기계를 충동구매했다. 일리 머신이 있으면 좋을 텐데 왜인지 여기선 찾기가 어렵다. 스타벅스에서 간만에 아아를 사마셨다. 이거 없으면 못살아.



마사지 받고 집에 오자마자 애플 티비를 연결했다. 반가운 제목이 있어 보니 심지어 한산 리덕스. 오예. 당장 구매하고 맥주 한 병을 따서 앉았다.

확실히 주말이라 그런지 사진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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