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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중일기 005 (20221223~20221229) 본문

일상, 삶/매일 비장하게 나라 구하는, 난중일기

난중일기 005 (20221223~20221229)

여해® 2022. 12. 30. 0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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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2.23. 금요일
부다페스트, 흐림

아침에 눈을 떴는데 정말 머릿속을 누가 갉아먹은 듯이 멍했다. 이사님에게 그만두겠다고 전화를 해야하나 어쩌나 생각하다가 올해는 넘겨보자 하고 생각을 접었다.

전날 반차를 반납했으므로 오전 반차라 치고, 집에서 조금 일을 보았다. 프린터가 없어서 서류 정리보다는 밀린 메일을 봤는데, 이것만 해도 조금 마음이 진정되는 기분이 들었다.

회사는 조용해서 차분하게 서류 정리를 할 수 있었다. 간만에 친한 언니와 오랫동안 통화했다.



2022.12.24. 토요일
부다페스트, 맑음

폴란드에서 친구가 오후 늦은 비행기로 들어오므로 아침에는 여유가 있었다. 부랴부랴 예전에 사뒀던 청소기를 조립해서 드디어 빗자루와 쓰레받이가 아닌 진공청소기로 바닥을 쓸었다. 무선이라 편하고 좋은데, 가격이 좀 많이 센 거 같다. 필립스가 그렇게 고급 브랜드도 아닌데.

저번에 소개받은 친구네 집앞에 차를 끌고 가 픽업해서 케이마트에 갔다. 친구가 그렇게 노래를 부르던 신라면을 한 번들로 사고, 샘표 비빔국수도 사려고 했는데 품절이었다. 맛있다고 소문 다 났나? 사장님이 직접 양념 만들어 먹으라고 하셨는데 내가 만들면 백퍼 그 맛이 안 날 것이기 때문에 웃으면서 거절했다. 막걸리도 두 병 샀다.

친구가 헤이리 (해이리?) 마을 같은 곳이라며 센텐드레에 가보자고 했다. 풍경은 예쁠 것 같았는데, 가는 길에 해가 다 져버렸다. 드라이브 했다 치고 천천히 돌아와 공항에 픽업하러 갔다.

이브라서 버스도 택시도 다닐지 확신이 안 서, 큰 용기를 내서 또 진반점에 차를 끌고 갔다. 마치 명절의 서울처럼 (요즘은 그렇지도 않지만) 텅텅 비었는데, 길거리에 정처없이 떠도는 한국 사람들만 많이 보였다. 그 나라 명절을 맞이한 외국인 처지란 다 비슷한 걸까?

차 때문에 술은 못 마셨지만 즐겁게 떠들어서 꼭 취한 것 같았다. 진반점 사장님이 대단하신 게, 가오픈 했을 때 아쉬운 점을 물으셔서 면이 너무 푹 익은 것 같다고 동료가 이야기 했는데 그새 면을 바꾸셨다. 훨씬 맛있었다. 친구는 진반점 때문에 또 오고 싶다고 했다.



강가를 슬슬 걸어서 국회의사당 트리를 구경하고 사진을 찍었다. 언젠가부터 내 사진을 찍는 법이 거의 없지만 이렇게 사진 즐겨 찍는 친구 덕에 추억이 더 잘 남는다.

그나저나 후드 티 하나 입고도 춥지 않아서 보니 기온이 11도~12도 정도였다. 미국에서는 얼어죽는 사람이 있다고 매일 뉴스에 나오는데. 이 동네는 어떻게 된 걸까?




2022.12.25. 일요일
부다페스트, 맑음

저녁에 강남 예약해둔 것 외에는 일정이 없어 낮에는 친구들과 집에서 팝콘, 감자칩, 맥주를 놓고 로맨틱 홀리데이를 오랜만에 보았다. 한스 짐머 음악 중에 손에 꼽게 좋아하는 트랙이다.


내년 6월에 부다페스트 오는 것도 알고 있지만 티켓 취소가 안 되는 것 같아서 선뜻 손이 안 간다. 가뜩이나 며칠 전엔 그만둘 결심까지 하지 않았나. 저번에 그렇게 조성진 공연도 놓쳤으니... 이번엔 그냥 예매를 할까보다.


강남은 부다페스트 온 첫날 갔던 식당이다. 여전히 맛은 있는데 가격대가 좀 있었다. 아무렴 어때. 그렇게 먹고 싶어했던 순대와 간도 드디어 먹었다. 인생 별거 있나, 이렇게 먹고 살면 되지. (그럴 거면 한국이 더 싼데?)





2022.12.26. 월요일
부다페스트, 안개

친구가 아침 비행기로 떠나서 나도 덩달아 아침 여섯시 반에 일어났다. 공항에 내려주고 집에 오니 8시. 암막 블라인드 내려진 그대로 엎어져서 잠들었다.

오후 세시 반에 겨우 일어났다. 더 잘 수 있었는데. 더럽지만 머리 냄새가 너무 나서 깼다. 어제 너무 많이 먹은 탓이다. 비척비척 일어나서 샤워를 하고 컵라면을 먹었다.

저녁까지 유튜브와 넷플릭스를 실컷 보다가 맛없어서 남긴 와인을 모아 뱅쇼를 또 끓였다. 이번에는 레몬을 넣기도 했고, 화이트 와인이기도 해서 엄청나게 셨다. 비타민 음료다 생각하고 꾸역꾸역 먹다가, 안 되겠어서 설탕과 꿀을 왕창 넣어봤다. 그래도 안 돼서 병에 담아 보관해두었다. 나중에 뱅쇼 만들 때 과일을 줄이고 이걸 넣어서 끓여야지.






2022.12.27. 화요일
부다페스트, 맑음, 거센 바람

전날 그렇게 많이 잤는데도 새벽 한시쯤 자서 겨우 일어났다.

아침부터 정신이 하나도 없었지만 확실히 많이 자고 푹 쉬고 와서 그런지 할 만 하였다. 휴가 간 사람이 많아서 회사가 조용한 덕일 수도.

점심에 욕심을 부려 피자를 두 조각 샀는데 크기도 엄청 크고 맛은 더럽게 없어서 후회되었다. 라이프사이클로 통계를 내보니 요즘 점심 먹는 시간이 10분~15분 정도다. 이것만 보면 한국에서보다 더 여유 없는 삶이다. 어쩌면 좋을까.

퇴근하고는 두나플라자에서 러셀홉스 믹서기를 샀다. 수프를 좋아하기도 하고, 피나콜라다 만들 때 필요하고, 또 생강청이 너무 해먹고 싶어서. 마침 전날 뱅쇼 만든다고 배달시켰다가 한 봉지 왕창 온 생강이 있었다.



콘스프까지는 좋았으나, 생강껍질 벗기는 것부터 너무 힘들었다. 나중에 힘이 빠지고 집중력이 흐려졌는지 믹서기를 잘못 열어서 난리가 났다. 다신 안 해.

만들면서 야금야금 주워먹었더니 당이 급 높아졌나, 머리가 아팠다. 전날 많이 잔 탓에 새벽 한시 넘도록 잠을 못잤다.




2022.12.28. 수요일
부다페스트, 맑음

전날 만든 생강청을 들고 출근했다. 만들 때 힘들긴 했지만 사람들이 맛있다고 잘 먹어주는 것을 보니 뿌듯했다. 언젠가 나만의 찻집이나 카페를 반드시 차리리라. 생강차는 한 잔에 8~9천원씩 받을 테다.

오늘은 끝나고 회식을 했다. 술을 많이 마셨다.





2022.12.29. 목요일
부다페스트, 맑음

크리스마스에는 그렇게 따뜻하더니 이젠 또 겨울이다. 차 창문이 얼었다.

하루 종일 정신없이 일을 하다가 7시쯤 사무실을 나섰다.


친구와 웨스트엔드에서 만나 TGIF에 갔다. 서버가 굉장히 친절했고 음식도 맛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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