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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삶/특별한 하루

비엔나 한식 샤브샤브, 데멜, 레오폴트 박물관, Heunisch & Erben

여해® 2023. 12. 18. 0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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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이번 주는 와인 클래스를 들을 예정이라 금요일 연차까지 냈었지만, 대책없이 취소당한 바람에 빈 스케줄에 토요일 비엔나 당일치기를 끼워넣었다. 한 달 전 다녀온 뒤로 계속 생각나던 자허토르테와 한국식 샤브샤브 소원 성취할겸, 저번에 못 갔던 레오폴트 뮤제엄도 갈 겸.

 

 

부다페스트에서 비엔나 가는 기차는 켈레티 역에서 출발한다. 의외로 기차역에 있는 주차장이 널널하고 주말에는 무료여서 이번에는 고민하다 차를 끌고 갔다. 

 

 

 

 

지난 번 죄르 갈 때 나를 몹시 당황하게 한 5번 승강장. 표지판의 승강장 안내가 갑자기 5번에서 뚝 끊기는데 입구에서 저~기 안쪽에 있다. 잘 모르면 물어보기라도 해야 하는데 직원도 별로 없다. 

 

 

 

 

조용히 가고 싶기도 하고 금액 차이도 크게 안 나 나는 기차 탈 땐 웬만하면 일등석을 끊는데 이번에 비엔나 가면서는 좀 생각이 바뀌었다. 일단 이렇게 3-3 좌석 마주보고 있는 형태의 열차는 콰이어트존도, 일등석 존도 따로 없는 듯 하다. 게다가 자유석인 사람도 아무나 앉는 걸 보면 좀 억울한 기분도 든다. RJX (레일젯) 모델은 그나마 일등석 구분이 있는데, 이것도 썩..

 

이번에는 미국인 커플이 앉았고 다행히 조용했다. 장기간 여행인지 캐리어가 큰 것으로 두 개씩이나 되었는데 피곤해서 그런지 처음에는 서로 기싸움 하다가 사이좋게 머리를 기대고 잠들길래 그뒤로는 나도 조금 마음을 내려놓고 잤다.

 

 

 

 

 

 

밀라노에서 운 좋게 산 미니앙쥬. 드디어 개시했는데 너무 너무 너무 x 10 맘에 든다. 실용적이고 막 굴려도 되고. 게다가 귀엽고. 트램 기다리다가 한 번 찍어봤다.

 

 

 

 

 

 

기차역에서 내리자마자 샤브샤브 집으로 출발. 비엔나는 부다페스트랑 비슷한 건물 양식이지만 훨씬 조용하고 이렇게 사람 없는 거리도 깨끗한 느낌이 든다. 오늘은 날씨도 좋았다.

 

 

 

 

 

 

내 소울푸드 샤브샤브. 게다가 한국식이라니... 다녀온 뒤로 매일 생각났다.

 

 

 

 

 

 

하프보틀로 파는 레드와인도 꽤 먹을만 하다. 저번이랑 같은 구성으로 시키면 그제야 사장님이 날 알아볼까 싶었는데 그냥 얼굴 보자마자 날 기억하시니 조금 민망했다.

 

 

 

 

 

 

육수만 색깔만 보면 크게 차이 없지만 간장맛, 매운맛 육수. 

 

 

 

 

 

야채를 한 움큼 이미 육수에 넣었는데도 많은 양. 샤브샤브는 2인분부터가 디폴트라 혼자서도 2인분 먹어야 한다. 그러나 나는 샤브샤브 처돌이라서 2인분이야 거뜬하다.

 

 

 

 

 

 

진짜 너어어어어어무 맛있다. 개인적으론 사리에 쌀국수도 좋지만 칼국수나 수제비가 있다면 영혼을 바칠 거 같다. (이미 바쳤지만) 중국식 핫팟은 그 어쩔 수 없는 향신료 냄새 때문에 샤브샤브 먹었다! 라는 만족보다는 비슷한 걸 먹었다는 절반짜리 만족만 온다. 그래도 그게 어딘가 싶고. 와인까지 해서 52유로.

 

 

 

 

 

 

사람 많이 몰리는 상가 거리도 이정도여서 너무 좋은 비엔나.

 

 

 

 

 

저 이파리 표시는 누가 봐도 대마초. 저번에 스페인에서도 봤다. 오스트리아 대마 합법 이렇게 검색해 보니까 아주 소량의 대마초는 합법이란다. 아마 대마 초콜렛 같은 것 정도 팔겠지. 그러나 우리나라 사람인 이상 죄는 속인주의이고, 나는 술만으로 충분하기에 평생 해볼 일 없을 것 같다.

 

 

 

 

내게 자꾸 자허토르테를 생각나게 한 데멜은 이렇게 사람이 많은 명품 거리에 위치해 있다.

 

 

 

 

 

입장하기까지 30분 정도 걸렸고 저번이랑 비슷한 웨이팅 시간 같다. 창문에서 이렇게 정체 모를 팬케익같은걸 만드는데 솔직히 만드는 과정을 보면 딱히 맛있어 보이진 않는다. 대용량의 반죽을 퍽퍽 부어서 속시원하게 마구 만드는 게 재밌어 보일뿐.

 

 

 

 

 

요즘 나름 독일어 공부 좀 했다고 주문 한 번쯤은 독일어로 하리라 마음 먹고 독일어 잘하는 친구한테 문장검수까지 받았는데, 몇 명이냔 질문에 한 명이라는 말을 독일어로 했더니 와다다다 쏟아지는 독일어에 얼굴이 시뻘게졌다. 주문 받는 직원에게 나도 와다다다 "나 독일어로 주문하고 싶은데 독일어 못하거든.. 외워온 것만 독일어로 하게 해줘" 하고 자허토르테와 드립 커피 한 잔을 주문했다. 무뚝뚝하기로 유명한 오스트리아인이지만 그래도 자기 나라 말 해보겠다고 노력하는 나를 가상하게 여기는 듯 했다. 머리 끝까지 얼굴이 빨개지는 게 느껴졌다.

 

자허토르테는 내가 기억하는 바로 그 맛이었다. 또 그렇게 그리울지는 모를 맛이기도 하다.

 

 

 

 

저녁 예약해둔 시간까지 두시간 정도 여유가 있어 레오폴트 박물관까지 걸어갔다. 가는 길에 국립박물관인가 그 앞 광장에 크리스마스마켓이 있어 걸어가느라 한참 걸렸다. 저마다 글뤼바인이나 따뜻한 펀치를 들고 있어 나도 조금 마시고 싶었지만 상점마다 문전성시라 기다릴 엄두가 나지 않았다.

 

 

 

 

10분이면 갔을 곳인데 20분간 인파에 치여 겨우 도착.

 

 

 

레오폴트에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그림. 처음 봤을 때 저 강렬한 빨간 커튼을 이기고도 남는 선명한 색채 표현에 완전 반하고 말았지.

 

 

 

어떻게 이런 흐릿한 색채로 사람 형상은 물론 분위기를 다 표현할 수 있을까. 클림트는 진짜 그림 모르는 내가 봐도 다시 없을 천재다.

 

 

 

 

내가 꿈꾸던 전형적인 유럽 시골.

 

 

 

 

 

유우우우우우명한 작품. 클림트의 삶과 죽음. 관광객들이 이 그림 앞을 좀처럼 떠나지 않아 사진 찍느라 오래 기다렸다.

 

 

 

 

상세한 묘사도 좋지만 이런 단순한 표현이 더 대단하다고 느낀다.

 

 

그래, 너 천재다. 볼때마다 투머치 당당해서 웃음만 나오는 에곤쉴레 자화상.

 

 

 

가까이서 보면 저 몸을 그린 선들이 얼마나 과감하고 간결한지. 어떻게 저런 간단한 선으로 사람 몸이 섬세하게 표현 되는지.

 

 

 

 

 

좀 덜 무거웠더라면 사왔을 거 같은 그림책. 3~4층에 전시된 그림 전작 다 여기 들어가 있는데 다음에 큰맘먹고 사와야 할 것 같다. 가격은 50유로 정도인데 집에 갖고 있는 반고흐 그림책에 비하면 심지어 저렴한 가격 같기도 하다.

 

 

 

 

 

저번에는 한 번 자리 없다고 까였던 Heunisch und Erben. 와인비스트로.

 

 

 

 

 

 

미슐랭 원스타인가 그렇다는데 음식보다는 다양한 와인 셀렉션이 더 유명한 곳 같다. 명성답게 한 면을 가득 채우고 있는 와인. 저거 다 내 거 하고 싶다.

 

 

 

 

 

예약 없으면 못 들어간다더니 바 자리까지 그렇진 않은듯 하다. 앞 손님들 대화 들어보니 워크인이었다.

 

 

 

 

 

 

한시간 사십분 허락받은 내 황송한 예약자리.

 

 

 

 

 

바깥 풍경은 그냥 이런 평범한 길거리다.

 

 

 

 

 

꽉 붙들어맨 거 맞는지 무서웠던 천장 인테리어. 이 가게가 뭘 내세우는지 명확히 알 수 있는 직관적인 표현이라 좋았다.

 

 

 

 

과실향 풍부한 오스트리아산 내추럴와인을 추천해 달라고 했다. 찰떡같이 내 취향이라 좋았던 와인 RH. 

 

 

 

 

첫 맛이 톡 쏘는 복숭아 향인데도 밸런스가 전체적으로 훌륭한 게 신기했다. 한 잔 마시다 보니 혀가 까끌해질 정도로 산미가 강한 편임에도 질리지 않았다. 

 

 

 

 

수비드한 고기에 바삭한 감자 요리. 꽤 괜찮았는데 난 은근히 고기에 약한 편이라 중간 중간 엄청 멈추었다. 다 먹은 줄 알고 몇 번이나 치우러 왔을 정도. 여기에 레드 와인 하나도 곁들였는데 딱히 인상깊은 맛은 아니라 기록하지 않는다.

 

한 시간 정도 있다가 나왔다. 나오기 전에 화장실을 썼는데 여성용품이 필요하면 직원한테 말해달라는 문구 정도는 몇 군데서 봤어도, 아예 유리잔에 탐폰을 담아놓은 채로 구비해둔 화장실은 처음 봤다. 그걸 또 양심없이 여러 개 털어가는 이상한 손님은 없을 거라는 믿음 덕분이겠지.

 

사실 음식이 그렇게 인상적이지도, 인테리어가 기억에 남을만한 그것도 아니고, 적어도 일주일 전부터 예약해야하는 성가심을 이기고 갈만한 어떤 특장점도 모르겠지만 저 작은 배려에 이곳은 내게 좋은 기억으로 남을 것 같다.

 

 

 

 

 

 

어느 곳을 가도 크리스마스, 크리스마스, 크리스마스 외쳐대는 통에 특별할 것도 없지만 기차역까지 소화시킬 겸 천천히 걸어가던 거리가 이렇게 조용히 연말 분위기를 나게 해 주었다.

 

돌아오는 기차는 RJX로 아침 기차보단 신식이었다. 뒤에 앉은 헝가리인 커플이 정말 내내 시끄러웠고, 좌석은 역방향이라 아주 고생했다. 오는 내내 다음부터 일등석은 커녕, 제일 싼 자유석으로 예약하리라 이를 갈았던 것 빼곤 너무 좋았던 비엔나 당일치기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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