옆집
난중일기 056 (20240422~20240428) 본문
2024.04.22. 월요일
부다페스트, 흐림
해는 길어졌는데 날씨가 쌀쌀하다. 두꺼운 가디건 정도는 입어야 하는 날씨다. 다음 주까지는 춥다고 한다.
오후에 저번 주에 있던 일 관련 회의를 했고 실망스러웠다. 이에 대해서는 더 별로 할 말이 없을 듯하다. 오후에 해야 할 일을 하나도 하지 못했다. 그나마 위안이 되는 건 주식. 저번 주 금요일 고꾸라쳤던 미국 주가가 많이 회복되어 있었다.
저녁에 비빔밥으로 삼겹살을 먹으러 신입과 함께 갔다. 내가 핍박(?) 받는 게 안쓰러운지 화장실 간다 해놓고 계산을 해버렸다. R&D TEA에서 버블티를 사 먹었다. 얼마 이상 계산을 하면 인형 뽑기를 시켜주는데 당연히 안 됐다. 구글 리뷰를 쓰고 아보카도 펜을 받았다.
일찍 자려고 누워 brainscape로 wset 플래시카드 보며 공부하고 있는데 또 삐이이이 하는 사이렌 소리가 울렸다. 작년처럼 화재 감지 센서가 잘못 동작한 거란 생각이 강하게 들었지만 그래도 혹시 모르니 밖으로 나갔다. 밖으로 나온 사람은 몇 없었다. 옹기종기 모여 서서 30분 정도 덜덜 떨다가 사이렌 소리가 그친 후 집에 들어갔다. 잠이 다 깨버려서 공부를 두 시간 가까이했다.
2024.04.23. 화요일
부다페스트, 흐림
꿈에 큰 학, 독수리를 보았다. 그리고 에어팟 한쪽을 잃어버렸다가 찾는 내용도 나왔다. 그런데 실제로, 아침에 에어팟 케이스를 열었더니 한쪽이 없었다. 혹시나 하고 주차장에 내려가 보니 바닥에 떨어진 채로 있었다. 누가 주워가지 않은 것도, 꿈 내용과 일치하는 것도 신기했다. 어제는 아주 오랜만에 대학 동기가 꿈에 나왔고, 그 동기한테 오랜만에 연락이 와 모바일 청첩장을 실제로 받았다. 나한테 정말 신기라도 있는 건가.
오후에 회사 차량 타이어 교체를 해야 하는데 누굴 대신 보낼 수가 없어서 내가 가게 됐다. 사실 제일 못 미더운 건 나지만... 언제까지 부장님한테 징징거리며 부탁할 수도 없고 극복해 보기로 했다. 그래도 저 차가 어서 내 손을 떠나기만 바라고 있다. 타이어는 무사히 갈았는데 거기서 시간을 너무 많이 보냈다. 안 그래도 할 게 많고 이번 주 금요일도 하루 회사에 없는데 초조해졌다.
저녁에 팀 회식이 있었고 나는 조금 늦게 갔다. 나눔에서 오랜만에 비빔밥을 먹고 전날 먹었던 R&D TEA에 또 갔다.
2024.04.24. 수요일
부다페스트, 비 오고 흐림
아침에 옆 팀 어른께 말씀을 드리다가 고래고래 소리 지르는 것을 견뎠다. 십 년 넘게 회사 다니면서 내가 기억하기론.. 처음이라 당황스러웠어도 생각보다 크게 동요하지는 않았다. 몇몇 사람들이 걱정해 주었지만.. 기대가 없으면 화도 나지 않는 법이다. 내가 잘못한 것도 있을 것이고. 그것보다는 다른 여러 생각들이 떠올랐다. 나 혼자 여기 덩그러니 남겨졌다는 생각,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은 나만큼 애정이 깊지 않다는 생각... 여러 가지 일이 스쳐 지나갔다. 내가 알아서 하겠다고 의연한 척 말해놓고 테라스에 기대서서 한참을 울었다. 내 방이 따로 있어서 다행이라고, 화장실에 쭈그려 울던 시절은 이제 갔다고, 다 컸으니 울지 말자고 열심히 달랬다. 소리 좀 질렀거니 우는 인간으로 보일 생각을 하니 곧 멎었다.
거주증 때문에 모든 회사들이 난리도 아니다. 오늘은 상담 진료가 있는 날이라 가서 거주증 얘기 때문에 다들 골머리를 앓고 있다 하니 본인 환자들 중에 몇몇 그런 소리가 나왔다고 한다. 아, 그리고.. 이젠 안 와도 된단다. 내가 봐도 이제 우울증은 아닌 듯 하지만, 선생님이랑 한 시간 대화하고 오는 것 자체가 나에겐 큰 도움이 되니 계속 다닐 생각이다.
지난번 알파태아단백 수치가 높게 나와 간 전문의를 보고 왔는데 지방간이 심각하단다. 하도 술을 마셔댄 탓일까. 발라톤 와인을 두 병이나 사놨는데... 차에 놔두고 집에 가져가지도 않았다. 밤 10시쯤 사무실에서 나와 테스코에서 장을 보고 치즈케익을 만들었다. 너무너무 피곤했다.
2024.04.25. 목요일
부다페스트, 흐림
치즈케익이 다 동이 났다. 부사장님 갖다 드릴 거 따로 챙겨놔서 다행이다. 저녁에 케이포인트에서 뵈었다. 일찍 만났는데 10시 30분이 넘어있어 놀랐다. 좋은 인연은 왜 늘 함께 할 수 없는지.
2024.04.26. 금요일
부다페스트, 흐림
뉴거티 역에 내려서 올라가는 길에 크로와상과 커피를 사 먹었다. 빈 속에 와인을 맛보면 먹고 뱉어도 어질어질하다. 이번 주만 버티면 주말 없는 바쁨도 끝난다.
점심에 또 마라 곱창 국수를 먹었다. 이거 먹고 혀가 어떻게 됐는지 점심 이후 테이스팅은 많이 틀렸다.
2024.04.27. 토요일
부다페스트, 흐림
아침에 많이 지각했다. 오늘 선생님은 저번 주의 영국인 선생님. 따뜻하고 인자한 스타일이라 친해지고 싶었는데 수업 마칠 때쯤 인스타 아이디를 적어주었다.
수업 듣고 있는데 신입이 레헬 시장에서 드디어 요구르티니를 샀다고 연락을 주었다. 정말 고맙다. 사탕 좋아하는 편이 아닌데도 요구르티니는 정말 역대급이다.
집에 와서 청소와 설거지를 한 시간 반 정도 했다.
2024.04.28. 일요일
부다페스트, 맑음
오늘부터 다시 햇빛이 시작인 듯하다. 드디어 와인수업이 끝났다. 마치고 나서 수업 듣는 동안 먹은 와인 리스트를 보니... 수업료가 아깝지 않게 느껴졌다. 꼭 한 번에 붙으리라.
점심에 또 비앙 비스트로에 갔는데 오늘 무슨 대청소를 하는지 주방 기기가 다 밖에 나와있고 청소가 한창이었다. 근처 아무 가게나 가서 쌀국수를 먹었고... 고수 맛이 강하게 났다.
저녁에 새로 사귀게 된 친구분들과 저녁을 먹었다. 세 명 다 취향과 성격이 많이 비슷해서 편안한 기분이었다. 오랜만에 야경을 보러 부다까지 건너갔다. 작년에 떠난 친구 생각이 났다.
숨도 못 쉬고 바쁘게 한 주를 보내고 나면, 일요일 밤에는 미뤄뒀던 생각이 몰려온다. 오늘도 그랬다. 더는 슬프지 않고 여러 생각에 가라앉는 이 기분이 오히려 반갑다. 이게 내게 맞는 옷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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