옆집

난중일기 047 (20240212~20240218) 본문

일상, 삶/매일 비장하게 나라 구하는, 난중일기

난중일기 047 (20240212~20240218)

여해® 2024. 2. 19. 0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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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2.12. 월요일
부다페스트, 흐림
 
전날 윗집 때문에 두세 시간밖에 못 자고 출근했다. 마침 집주인이 요즘은 윗집이 어떠냐고 물어보는 메일을 보냈기에 일주일 조용하고 어제 또 시작되었다고 답장을 했다. 하루만 빨리 물어봤어도 너무 만족한다고 썼을 텐데 정말 앞일은 알 수가 없다.
 
집에서 나올 때 샐러드, 맥심 커피를 챙겨 나왔다. 출근하자마자 한국 갔다 온 대리님이 록시땅 핸드크림을 선물로 주셨다. 고맙게 받았다.
 
미국장 중간에 주식계좌 앞자리가 바뀌었다. 돈을 버는 것 그 자체보다도 어딘가에 기록하고 가계부에 투자수익으로 꽂힐 것을 생각하면 그게 기분이 더 좋다. 점심시간에 샐러드를 먹으면서 채권 공부를 했는데 역시나 어렵다.
 
잘하던 회계법인이 자꾸 세금 쪽에 실수를 해서 조금 성가시다. 대충 일을 마무리하고 2시간 정도 MA 공부를 하다가... 너무 졸리고 피곤하고 또 학창 시절 이후에 처음 보는 루트 (이름도 기억이 잘 안 나서 한참 생각..)를 보고 기겁해서 공부 의지를 잃었다.
 
이번 주부터 다시 추워진다더니 정말 그런지 바람이 꽤 쌀쌀했다. 집에 와서 양배추, 지난번 남은 소고기를 넣고 짜파게티를 해 먹었다. 소고기에서 누린내가 너무 나서 면만 골라 먹었다. 샤브샤브용으로 산 건데 매운 국물, 진한 소스에 푹 적셔 먹어야 그나마 나은가 보다. 일찍 누웠지만 윗집이 쿵쿵거려 힘들었다. 그래도 잠이 쏟아져 잘 잤다.
 
 
 
 
 
2024.02.13. 화요일
부다페스트, 맑음
 
이상하고 재미있는 꿈을 꿨다. 그 긴 시간 한 번도 안 깨고 내용이 연속되었다. 자고 일어나니 이상하게 개운해 또 늦잠인가 했지만 다행히 7시였다. 겨우겨우 시간 맞춰 출근했다.
 
어제까진 추워서 안감이 두꺼운 옷을 입고 나왔더니 또 햇빛 찜질 시작이다.

이 온실에서 지난 번 심은 오렌지들은 잘 자라고 있다. 레몬은 아직까지도 싹이 안 나온다. 살짝 들춰보면 뿌리는 내렸고 초록색으로 변해서 죽은 건 아닌 거 같은데... 한국 집에서 키우던 건 얼마만에 나왔더라. 그때도 한 달은 걸린 것 같다.
 
점심 시간에 테스코 가서 저녁에 해먹을 두부계란조림 재료를 샀다. 밥을 담아서 얼려둘 용기가 사고 싶었는데 마침 적당한 것이 2+1해서 낱개로 9개나 샀다. 집에 있던 거는 다 너무 크고 오래 되어서 바꿀 때가 되었다. 
 
회사에 또 큰 변화가 있을 예정이다. 우려하고 회피하던 일이 현실이 되었다. 이젠 좀 안정되게 살고 싶은데.. 여러모로 마음이 안 좋다. 정말이지 바람 잘 날 없는 곳이다. 하지만 이젠 회사 일 같은 걸로 울지 않겠다.
 
어제 MA 내용에서 충격받은 후로 공부에 집중을 잘 못하고 있다. 오랜만에 바이올린 수업도 다녀왔다. 어쩌다 보니 다음 주에 저녁 약속이 세 개나 잡혔고, 공부할 양이 너무 많아 시험을 미룰까 고민하고 있다. 잘 가다가 확 막히고 진도가 못 나가니 공부도 영 재미가 없다. 내일은 꼭 와인 학교에 가서 수업료를 결제하고 와야겠다.

예전부터 만들겠다고 벼르던 두부계란조림을 해 먹었고 정말 맛있어서 깜짝 놀랐다. 자기 전에 MA 공부를 하는데 백색소음을 귀가 먹먹하게 틀어놔도 윗집 쿵쿵거리는 소리는 가려지지 않았다. 어떻게 고작 일주일 조용하고 이럴 수 있지. 천장을 치니 보복하는 듯이 쿵쿵쿵쿵 규칙적으로 내리 찧는 소리가 들렸다. 내가 아무리 쳐도 소용없을 줄 알았는데 오히려 속이 시원했다. 침대에 앉아서 아이패드로 공부를 했다. 계산 문제가 많아서 화면 하나로는 연습문제까지 풀기에 무리가 있었다.
 
12시 넘어서 나는 윗집 소리는 녹음을 했다. 영상에서는 잘 들리지 않았다.
 
 
 
 
 
2024.02.14. 수요일
부다페스트, 맑음
 
무서운 꿈을 꾸고 일어났다. 집에서 자꾸 뭐가 없어지거나 물건 위치가 뒤바뀌거나 그런 내용이었는데, 아마도 윗집이랑 신경전 벌이면서도 내심 혼자 살고 난 불리한 외국인이니까 걱정되고 무서운 마음이 반영된 듯하다.
 
주식 수익 정산을 하는 날이라 쭉 보는데 뭐 생각보다는 괜찮았다. 적어도 손해는 안 봤으면 됐지. 
 
어제 녹음한 영상을 집주인에게 보냈다. 어제 이후로 확실하게 윗집임을 알겠지만 그래도 확실히 하기 위해 한 달은 더 지켜보고 싶고, 또 텍스트보다는 이게 낫겠다 생각해서 영상을 보낸다고 썼다. 집주인까지 덩달아 스트레스받는 것 같아서 좀 미안하다. 하지만 보복소음까지 하는 또라이인데.... 집주인도 알아야 할 것 같다. 나 말고 다른 세입자가 들어오더라도 저들이 문제가 될 테니. 
 
아는 바이올리니스트 분이 수업 6회가 넘어가도록 줄만 튕기는 걸 가르치는 건 진도에 좀 문제가 있다고 했다. 나도 사실... 점점 이게 뭐 하는 건지 생각이 들긴 했는데. 그래도 선생님만의 철학이 뚜렷한 거 같으니 좀 더 지켜보기로 한다.
 
회사 냉장고가 고장 나서 점심시간에 고기는 못 사러 가겠다. 너무 혹사시켰나 아니면 그냥 그럴 만한 때가 된 건가.. 하도 더러워서 이젠 열어보고 싶지도 않지만.
 
오후에 또 일이 있었다. 나는 이제 그냥 회사의 모든 사람이 안쓰럽다. 나한테 어떻게 하든 뭐라고 말하든 다들 여유가 없어서 그러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냥 조용히 지내는 것만이 나의 소원인데... 그게 이렇게도 이루기 어려운 소원인가 보다.
 
저녁에 오랜만에 실비네 가서 쌀을 사고 돼지갈비를 샀다. 그런데 이번에 산 쌀은 잘못 고른 것 같다. 찹쌀을 섞어도 찰기가 없고 퍼석퍼석해서 어쩔 바를 모르겠다. 그냥 원래 먹던 김포쌀 사 올걸. 적어도 6개월은 먹을 텐데 큰일이다.
 
 
 
 
 
 
2024.02.15. 목요일
부다페스트, 흐림
 
도대체 내 정보가 어디 팔린 건지 그저께부터 새벽 네 시쯤에 자꾸 031로 시작하는 전화가 온다. 짜증 나서 받아보면 아무 말 없이 끊어버리고, 찾아보니 부동산 투자 광고 전화란다.
 
아침에 갑자기 Client Gate 로그인이 안 되어서 여기저기 연락하고 난리였다. 따져보니 작년 최초 개설하러 간 날이 13일, 마지막 로그인 날짜가 12일, 딱 1년 되어서 또 만료시켰나 보다. 여권으로 등록했는데, 도대체 왜? 가끔씩 헝가리 정부 기관에 대해.... 치밀어 오른다, 치밀어 올라. 내일 아침에 바로 Kormányablak에 가기로 했다.
 
국민연금 매월 8만 원씩 나가는 게 너무 아까워 공단에 전화를 걸었는데 뜻밖으로 국가지원 이런 게 있다는 걸 알게 됐다. 그렇게 생각하다 보니, 이거 이중 납부 아니야? 싶어서 찾아보았다. 한-헝 사회보장협정 되어 있어서 이중 납부는 면제 신청 할 수 있다고 한다. 민원 게시판에 글을 남겨두었다. 한국은 빠르게 처리되니까 내일 일어나면 답변이 되어있겠지.
 
윗집 때문에 너무 스트레스받으면서 잠을 자니 제대로 못 자는 것 같다. 늘 몸이 찌뿌둥하게 피곤한 느낌. 집주인은 녹음된 영상을 보고 별 답장이 아직 없다. 어쩌면 소리가 너무 작게 녹음되어 내가 예민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고, 이미 이야기를 하고 있을 수도 있고. 대부분 세입자 일에는 나 몰라라 한다던데 우리 집주인 참 사람이 좋다. 초반에 며칠 일찍 살 수 있게 해 준 것도 그렇고. 웬만하면 정말 이사 가고 싶지 않다. 꼭 잘 해결되면 좋겠다.
 
요즘 한 끼 정도는 꼭 샐러드를 먹곤 하는데 질린다. 이게 딱히 건강한 건지도 모르겠고. 너무 먹기 싫어서 불닭볶음우동을 먹었다. 근데 내가 뭘 잘못한 건지 더럽게 맛없었다. 샐러드나 먹을걸.
 
집에 돌아가니 회사로 와있었어야 할 우유, 커피콩이 집 앞에 잔뜩 쌓여있었다. 기어이 주소 실수를 하고 만 것이다. 무거운 우유는 주말 사이 갖다 놔야지.
 
 
 
 
 
 
 
2024.02.16. 금요일
부다페스트, 맑음
 
아침에 Kormányablak에 가서 우리 팀원과 만났다. 괸즈 아르팟 쪽에 있는 이 동사무소는 너무너무 복잡해서 처음 갈 때는 입구도 못 찾아 헤맸었고, 지금까지도 힘든 관문은 주차 자리다. 한참을 빙빙 돌다가 결국 걸어서 10분이나 걸리는 한적한 곳에 차를 대고 걸어갔다. 그리고 허무하게도 내 계정에는 아무 문제가 없고 그냥 일시적인 현상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중간에 공무원이 씩씩거리며 화를 내고 돌아다녔는데....... 얼마 받는지는 몰라도 저렇게 본인 원하는 대로 일할 수 있는 직장이니 나름 신의 직장인 걸까.
 
사무실로 돌아가는 길에 맥도날드에 들러서 맥머핀을 샀다. 아침에 밖에서 볼일이 있으면 약간 스스로 보상한다는 의미로 이렇게 맥모닝 메뉴를 먹는다. 점심으로 먹었고 오랜만에 먹는 외식메뉴는 정말 맛있었다. 커피를 마시며 팀원과 오랫동안 층간소음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오후에 싱숭생숭해서 결국 조금 울었다. 왜 내가 원하지 않는 일은 꼭 이렇게 금방 현실이 되는 걸까. 다음 주가 안 왔으면 좋겠다. 내 일 아니니까 괜찮다고 정신승리 해봐도, 서운하고 속상한 건 어쩔 수가 없는 듯하다. 마음이 너무 여리다는 말을 듣고도 그다지 자존심이 상하지 않았다. 사실이니까.
 


저녁에 저번에 소개팅(?)한 분이랑 KHAN에 가서 쌀국수를 먹었다. 오랜만에 먹으니 정말 맛있었다. Un1que Maci Tea에 가서 버블티도 먹었는데, 얼음은 흔적도 없이 미지근하고 맛도 묘하게 떨어져서 반쯤 남기고 그냥 나왔다. 신입이 오늘 돌아오는 날이기 때문에 집에 갔다가 차를 끌고 공항에 다녀왔다.
 
집에 돌아와서부터 새벽 1시까지 간헐적인 딱딱 소리가 계속 되었다. 너무 화가 나서 마대로 천장을 두어번 쳤다. 조용해지긴 커녕 계속되었다. 소리가 익숙해져 괜찮다가도 치밀어오를 때가 있다.
 
 
 
 
 
 
2024.02.17. 토요일
부다페스트, 비
 
아침에 초인종 소리에 눈을 떴다. 어제 천장 친 것 때문에 찾아온 건가 설마. 윗집은 남녀 둘이고 나는 혼자다. 무서워서 반응하지 않고 그냥 두었다. 뒤이어 12시에 또 한 번 초인종이 울렸다. 이번엔 두 번 연달아. 심장이 쿵쿵쿵쿵 뛰었다. 문 앞에 가서 누군지 렌즈를 통해 볼까 하다가 그마저도 무서워서 침대에 꼼짝을 않고 누워있었다. 두시 반에 또 왔다. 이번엔 두 번 초인종을 누르고는 쾅쾅쾅쾅 격렬하게 문을 두들기다가 또 한 번 초인종을 누르고 떠났다. 만약 윗집이 맞다면, 보통 미친놈들이 아닌 것 같아서 걱정스럽다. 윗집 맞는지 확실히 확인해 볼걸. 그 순간 얼어서 아무것도 못하고 누워있던 게 후회된다.
 
요즘 너무 매일 일하고, 공부하고, 시험 치고 이런 일상들이 지속되어서 지쳤는지, 정말 아무것도 하기 싫고 먹는 것조차 귀찮고 힘들어 거의 4시까지 유튜브만 보면서 누워있었다. 오랜만에 그런 게으름을 피워본 것 같다.
 
Wolt로 마트 배달을 시킬까 하다가 그래도 하루 한 번은 밖에 나가봐야지 싶어 Spar로 장을 보러 나갔다. 아시안마트에도 들러서 옥수수를 샀다. 오늘 같은 날은 와인도 마셔주고 싶어서 봤는데 Wolt에서 20% 할인하는 게 더 저렴해서 물과 함께 따로 시켰다. 이제 진짜 쓸 수 있는 포린트가 바닥났다.
 
와인을 반 병밖에 안 먹었는데 잠이 솔솔 오길래 소파에 누워서 잤다. 중간중간 한 번씩 깨서 화장실 갈 때마다 위에서 또 그 특유의 딱 딱 소리가 들렸지만 잠결이라 그냥 계속 잤다.
 
 
 
 
 
 
2024.02.18. 일요일
부다페스트, 맑음
 
전날 초인종 누르고 어쩌고 한 것이 나름 무서워서, 윗집이 아침 9시 30분부터 오후 2시까지 미친 듯이 찧어대고 쿵쾅거리고 드르륵드르륵 하는데 또 쫓아올까 봐 그냥 천장도 치지 않고 아무 반응도 하지 않았다. 아침이고 낮인데, 청소하고 활동하겠다는데 내가 뭘 어떡하겠어.
 
아침부터 갑자기 라면이 먹고 싶어서 해 먹었다. 너무 덜 익혀서 그런가 면이 오히려 퍼석퍼석해서 별 맛이 없었다. 그래도 한 그릇 다 비우기는 했다. 고려거란전쟁을 보는데 설날 전만 해도 다시 재밌어질 것 같더니 그놈의 김 씨 부인 분량이 너무 많고 연애질(?)하는 거 진짜 좀 꼴 보기 싫고 기가 차다.
 
회사에 가서 일도 할 겸 학은제 시험도 칠 겸 씻고 나왔다.


주차장에 가 보니 이게 무슨 일인지, 누군가 내 차와 내 옆 차의 와이퍼를 세워두었다. 금요일 밤 늦게 주차하고 하루 반 동안 내려가보질 않아서 언제인지도 모른다. 저렇게 해둔 의도는 무엇인지 알 수 없어도, 애초에 왜 남의 차에 손을 대는가. 왜인지 윗집일 것 같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이럴 거면 차라리 어제 초인종 눌러댈 때 나가볼걸 싶었다.
 
찝찝한 기분으로 회사에 왔다. 평소 절대 주말에 볼 일 없던 팀원이 나와 있어 너무 놀랐다. 누군가 내 차 와이퍼 세워놨다는 이야기를 또 하고, 학점은행제 시험을 다 치고 과제도 몇 개 하다보니 어느새 밤이 되었다. 집에 가서 눕고 싶은 마음이 컸지만 이젠 집이 여러모로 무서운 공간이 되어버렸다. 왜 도대체 미친놈들 때문에 내가 이 돈 주고, 이런 불안 속에서 살아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 그러나 이 또한 그냥 다 지나가겠지.
 
내일부터는 또 전쟁 같은 일이 닥칠 것이다.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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