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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중일기 046 (20240205~20240211) 본문

일상, 삶/매일 비장하게 나라 구하는, 난중일기

난중일기 046 (20240205~20240211)

여해® 2024. 2. 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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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2.05. 월요일
부다페스트, 맑고 강풍
 
갑자기 봄이 되었다. 코트를 안 입어도 되는 날씨다. 바람이 엄청 부는데 바람 온도 자체가 저번 주랑 많이 다르다.
 
이번 주에 본사 보고할 파일이 많고, 휴면에 들어갈 법인의 담당자가 너무 느리고 대응도 안 되어서 일만 많고 정말 짜치는 일이다.
 
어제 FA 합격한 것도 기뻤는데 정말 다 포기하고 있던 WSET Level 2 시험을 통과했다는 기쁜 메일을 받았다. 바로 부사장님한테 자랑했다. 일 열심히 안 하고 (?) 공부만 하냐고 뭐라고 하셨지만 그래도 기특해하신 거라고 생각한다. 
 
신입이 갑자기 오전에 아프다고 하여 점심시간에 집에 데려다주었다. 회사 사람들이 하나둘씩 코로나 확진이 나고 있어서 아무리 봐도 코로나인 것 같아 재택 하라고 하고 집에서 테라플루와 체온계, 코로나 검사 키트를 챙겨서 갖다 주었다. 나도 괜히 머리가 아픈 것 같다. 하지만 어제 시험 보고 나서부터 아픈 것이니 아마 머리를 너무 써서 그런 듯하다. 제발 이번 해는 무사히 넘어가주라.
 


저녁에는 공립 의원.. 이라고 해야하나 보건소라고 해야하나. 아무튼 공립 의사를 만나러 갔다. 병가 증빙은 사병원에 발급할 권한이 없어..... 보통 전화나 메일로 요청을 해서 서류를 받는데, 그래도 의사를 한 번은 만나고 신분증도 보여주고 해야 한다고 해서. 혹시 모르니 가서 만나보았다.


복도에 대기중인 사람이 많았고 따로 리셉션같은 것도 없고 그냥.. 이것만 봐도 사병원 존재 자체에 감사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의사는 친절하고 합리적이고 영어를 잘했다.
 
회사에 돌아와 마감 전표 몇 개를 치다가 도수 치료를 다녀왔다. 자기 전에 WSET 레벨 3 후기를 읽어봤는데 시험 난이도가 뭐 장난이 아니다. 갑자기 또 마음이 급해서 brainscape를 켜서 카드 몇 장을 넘기다 잤다. 삽목 얘기도 나오고, 하이브리드, 이종교배 이런 얘기도 나오고 확실히 난이도가 많이 높다. 벌써부터 걱정이지만 이제 떨어졌다는 둥 설레발은 치지 않겠다.
 
 
 
 
2024.02.06. 화요일
부다페스트, 맑음
 
덥다고 이불을 걷어차고 자서 그런가 아니면 시험 스트레스인가 새벽 네 시부터 배가 아파서 계속 화장실을 갔다. 너무 힘들었다. 주식도 매수 문자가 와르르 와있으니 더 배가 아픈 것 같았다. 엄마 계좌에 손대자마자 이게 무슨 일이란 말인가. 언제쯤 정말 기계처럼 내 원칙을 믿고 그냥 갈 수 있을까.
 
오전에 괜찮은지 연락해 보았는데 우리 신입은 코로나가 맞다고 한다. 나도 괜히 목이 아픈 것 같다. 사실 저번 주부터 목이 이유 없이 쉬었는데... 오늘 원래 부사장님, 신입과 뉴욕 카페에 가서 저녁 먹기로 했는데 그것도 취소하였다. 속상하지만 또 한편으론 맘 편히(?) 야근할 수 있음에 감사하기도 했다.
 
WSET 레벨 3 수업을 들으려고 알아보았는데 지난번 그냥 취소한 대가로 10% 할인을 해주겠다고 하여 그냥 알았다고 했다. 솔직히 연말에 그거 하나 때문에 시간 다 비워두었다가 엄청 실망한 걸 생각하면 너무 짜다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뭐 내가 무슨 힘이 있나. 1주일에 3일씩 2주 동안 진행하는 초집중 코스인데 잘 소화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11월에 브라티슬라바에서 하는 한스짐머 콘서트가 전액 환불 가능한 보험을 걸고 구매할 수 있길래 예매했다. 내가 꼭 가고 싶어 하는 공연 뭐 그래봤자 세 개다. 조성진, 루도비코 에이나우디, 한스짐머. 일 년에 이 정도는 쓸 수 있다고 생각한다. 또 합리화 중. 루도비코 에이나우디는 아직 2024년 일정이 다 풀리진 않은 것 같아서 고민이다. 7월 로마 티켓이 남아있지만 7월의 로마는 정말 엄두가 안 난다.. 선생님들 왜 올해는 부다페스트 안 오세요....
 
본사 패키지 파일을 작성하다가 자정이 다 되어 집에 갔다. 주차장 문도 닫혀있고 운전할 기운도 안 남아 그냥 택시를 탔다. 오늘 예정대로 저녁 먹었으면 어쩔 뻔했을까. 윗집이 웬일로 조용해서 푹 잤다.
 
 
 
 
 
2024.02.07. 수요일
부다페스트, 맑음
 
할머니 될 때까지 입을 버버리 트렌치를 개시했다. 그래도 더운 날씨다. 갑자기 하루아침에 이게 뭔지 모르겠다. 한국으로 치면 3~4월 정도 되는 날씨일까? 아침에는 몸이 안 좋은 듯했지만 곧 괜찮아졌다.
 
오늘은 다른 법인 마감을 해야 하므로....... 잠은 푹 잤어도 꿈에서 계속 일을 했다. 뭐 이제 이게 큰 스트레스인지도 모르겠다.
 


오늘은 의사 선생님을 만나는 날이기도 해서 더 바빴다. 한 달 동안 내가 뭘 했는지 말해 주니 대단하다고 했다. 이 얘길 하고 싶어서 저번 주부터 기다렸다. 추천해 준 책은 10% 정도 읽어보았다고 하니 도대체 그럴 시간이 어디서 나는 거냐고 했다. 그 모든 시험을 다 좋아서 친 거냐고 물어볼 때 자신있게 응, 했다. 나는 산만해서 좋아하는 것도 산만하게 많으니까.
 
12월에 처음 만났을 때보다 지금 훨씬 좋아진 비결이 뭐인 것 같냐고 물어보길래... 그냥 그럴만한 시간이 흘렀다고 했다. 그것뿐만이 아닐 거라고 해서 잘 생각해 보니,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시간이 약인 것 같지만, 여러 가지 힘 나는 에피소드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첫 진료였다고 말해주었다. 헝가리에서 날 실망시키지 않은 사람을 손꼽아보면 이 선생님은 다섯 손가락 안에 든다. 그리고 선생님은 손이 엄청 크고 다리가 엄청 길고 얼굴은 소년처럼 잘생겼다. 이제 진짜 살만한지 그런 것만 보인다. 다음 진료는 한국에 다녀온 후에 가려고 했지만, 그러면 거의 두 달 뒤에 봐야 한다니 아쉬운 감정마저 든다. 헝가리에 있는 몇 안 되는 친구랄까. 돈 내고 만나는 유료 친구.
 
집주인이 층간소음 관련해서 긴 답장을 보내주었다. 윗집 사람들은 세입자가 맞고, 집주인끼리 대화를 했다고 하는데 생각보다 많이 적극적으로 도와주는 것 같아서 그것만으로도 위로가 되었다. 그리고 확실히 어젯밤에도 조용했던 것을 보면, 집주인이 뭐라고 한 게 큰 효과를 보인 듯하다. 이래저래 요즘 너무 바빠서 윗집 소리에 신경 쓸 겨를이 없으니.. 잘 되었다.
 
저녁에 회사에서 다시 일을 시작했다. 어떤 일은 진짜 손도 대기 싫은데 이게 그거다. 그래도 해야지 어쩌겠어. 오늘 신경 못 쓴 사이에 주식이 많이 올라 있었다. 벌써 수요일이고 BT 시험공부는 손도 못 댔다. 대충 쓱 읽어보면 될 거 같은 내용들인데 어떨지 모르겠다.
 
야근 마치고 집에 가니 12시 30분이 넘었다. 이따금 윗집에서 딱! 딱! 소리가 들려왔지만 이전보단 훨씬 나아졌다.
 
 
 
 
2024.02.08. 목요일
부다페스트, 맑음
 
연일 봄날씨가 지속되고 있다. 이러다가 또 확 추워지는 게 유럽의 날씨라는데, 아무리 겨울을 여름보다 선호하는 나라고 해도 따뜻한 바람은 반갑다. 내 온실 같은 사무실에 키우고 있는 오렌지도 더 잘 자라는 것 같고.
 
설 연휴 앞두고 국내 주식이 수익이 좋다. 강원랜드는 나랑 엄마계좌에서 모두 팔려서 다른 국내 주식을 물색하느라 점심시간을 보냈다. 지난번 미스터리 마트에서 사 온 쌀국수를 먹었다. 어제도 종일 과자만 먹고 끼니를 걸러서 오늘 유독 엄청 맛있었다.
 
본사 패키지 마치니 이젠 1월 마감 기일이 목전이다. 하도 정신이 없어서 소득세, 사회보험료 납부일 다가오는 것도 잊고 있었다.
 
설 용돈 얼마 할지 고민하다가 동생들에게 이제 한 달에 적금 붓듯이 돈 모아서 같이 하자고 제안했다. 매월 가계부에 accrual 잡는 것도 귀찮을 거 같고, 어차피 생일, 명절은 매년 돌아오는데 일정 금액씩 지출하는 게 맞다. 통장 관리는 내가 안 하고 싶어 동생 맡길 것이다. 
 
쉬지 않고 일하다가 7시에 마사지를 받으러 갔다. 몸이 너무 굳어 있는 게 느껴진다. 오랜만에(?) Spar에서 와인을 샀다. 집에 와서 스팸을 잘게 부수어 볶아 좀 더 풍부한 맛의 간계밥을 만들어 보았는데 개뿔.. 맛없었다. 밥은 반을 남겼는데, 옥수수를 네 개나 먹었다.
 
 
 
 
2024.02.09. 금요일
부다페스트, 흐림
 
아침에 엄마한테 용돈을 보냈다. 할머니 할아버지댁에 전해줄 용돈도 함께 보냈다. 이번 달에 아껴 쓴다고 했는데........... 결국 이렇게 나갈 돈들은 꾸준히 생긴다.
 
동생들이 돈 모으는 것에 동의해 주었고 카뱅을 다들 안 쓴다고 해서 결국 내 통장으로 모임통장을 만들었다. 간단한 관리이지만 관리할 통장이 또 하나 늘었구나. 
 
설날 전날인데 그래도 식사는 해야지 싶어 부사장님께 부탁해서 점심을 먹으러 갔다. 강식당이 가깝고 주차도 편해서 좋고, 이젠 가도 안 좋은 기억보다는 BTS 지민 자리 보면서 깔깔거리던 게 더 먼저 생각나서 다행이다. 나는 갈비탕을 먹었고 부사장님이 시키신  제육볶음도 조금 얻어먹었다. 그래도 이걸로 제사상 올라오는 소고기뭇국 먹었다 치고.
 
와인이랑 ACCA 얘기를 했는데, 공부하느라 입술 다 터진 거구나 하셨다. 남들 눈에도 입술 튼 게 보이다니 주의해야겠다. 피곤해서가 아니라 그냥 공부하거나 하기 싫은 일 할 때 습관처럼 쥐어뜯는 거라고 하니 애기들이나 그러는 거 아니냐고 하셨다. 애기이고 싶지만요....
 
월화수목 모두 다른 일정으로 바빴기 때문에 회사 일 마치자마자 BT 공부를 시작했다. 이번 주에 시험 볼 수 있을지 아직 확신이 없다.
 
 
 
 
2024.02.10. 토요일
부다페스트, 흐리고 비 옴
 
윗집에서 이젠 나를 안 깨워줘서(?) 늦게까지 푹 잤다. 비몽사몽 상태로 계속 누워 있다가 정신 차리니 12시 30분. 오늘은 기필코 청소도 하고 공부도 하고 저녁 약속도 가리라 마음먹었는데, 청소하려고 일어나기까지 두 시간이나 걸렸다. 부엌, 거실을 어느 정도 정리하고 나니 한 시간이 지났다. 내 뇌는 정리에 취약하다. 마치 지금 이것저것 관심 있고 필요한 건 모조리 다 공부하는 것처럼. 
 
결국 공부는 한 시간밖에 못 하고 나와야 했다. 저저번주에 우리 신입의 온라인 소개팅(?)으로 만났던 분과, 또 다른 또래 한 분 이렇게 셋이 만나기로 하였다. 대중교통을 타고 가려다가 늦을 것 같기도 하고 집에 돌아올 때 한 번 갈아타야 하는 게 너무 싫을 것 같아 차를 타고 나갔다.


가는 길에 사거리에서 큰 사고가 난 것이 보였다. 식당 근처에 다행히 주차 자리는 많았다. 그리고 요즘은 일자 주차도 조금씩 자신이 붙.... 하.. 아니다.
 


왕푸는 지난 번 휴무일 체크 안 하고 왔다가 실패한 곳인데 맛은 그냥 평이한 수준이었다. 신년이라며 만두를 서비스로 주었는데 그 안에서 1센트짜리 유로화 동전이 나왔다. 일부러인지 실수인지 몰라도 어차피 (중국사람에겐 미안하지만..) 중국 음식 먹으면서 일정 수준 이상의 위생은 기대할 수 없다. 
 
사실 BT 정도야 그냥 상식이라 시험은 당연히 붙을 것 같았고, 조금 더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서 Gyugyi's bistro까지 내 차를 타고 이동해 각각 맥주, 와인, 칵테일을 마셨다. 나오니 비가 조금씩 내리고 있었는데 걸어갈만한 비였다.
 
밤에 TV로 슈카 채널을 보면서 하나 남은 냉동 찰옥수수를 먹었다. 이번엔 뭘 잘못한 건지 정말 딱딱하고 먹기 힘들어 겨우 먹었다. 슈카는 얼마 전에 박곰희 채널에서 스쳐 지나가듯 언급한 채널인데 훨씬 유명한 사람인 걸 몰랐다. 하기는 그전엔 경제고 주식이고 다 무지했으니. 지금도 무지한 수준이지만.
 
밤에는 트레이딩 관련 책을 읽다가 잠들었다. 공부는... 안 했다. 이후 중/고급 레벨에서 또 만날 과목은 아닌 거 같아 더욱 동기부여가 안 되는 것도 사실이다. 는 개뿔이.. 그냥 공부하기 싫은 나의 핑계다.......
 
 
 
 
2024.02.11. 일요일
부다페스트, 흐리고 비 옴
 
아침 10시에 눈을 떴다. 공부를 좀 하다가 남동생과 엄마아빠가 여행 가서 올리는 사진들을 구경하다가, 친구한테 카톡으로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뭐 그러다 보니 또 슬렁슬렁 점심시간이 되었다. 어제 식당 앞에 세워둔 차 가지러 가려면 넉넉히 시간을 둬야겠기에 비빔면에 구운 계란 하나 까서 먹고 천천히 걸어갔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인가. 벚꽃인지 복숭아꽃인지 사과꽃인지 모를 아무튼 봄에나 볼 꽃이 저렇게 피어있는 것이었다. 좀 있으면 거의 만개 수준이 되겠다. 하긴 나도 이젠 트렌치도 더워서 대충 가디건 걸치고 다니는걸. 2월 날씨가 이래도 되는 건가. 다음 주부터는 추워진다고 했는데 불쌍하단 생각이 들었다.
 
사무실 나와서까지 공부가 너무 하기 싫었다. 그래서 차라리 일을 좀 했다. 이 정도면 병이다. 공부를 못하는 병에 걸린 것이다. practice exam 몇 문제 풀어보다가 좀 머리가 돌아간다 싶으니 시험 시간이 다 되었다. 결과는 예상대로 합격이었지만, Exit버튼 누르고 조금 쫄리긴 했다.
 
시험은 40분 만에 마칠 수 있었다. 이렇게 원격으로 보는 시험의 최대 장점은, 시험지 쳐다보고 있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에서 멍하니 시험 시간이 끝날 때까지 기다리는 짓을 안 해도 된다는 것이다. 나는 왜인지 어릴 때부터 늘 시험시간이 보통 절반 정도 남는데, 그렇다고 책 읽을 때 속독을 해서 완주 속도가 빠른 편인가 하면, 그건 또 아니다. 뭐가 어떻게 된 머리인지 잘 모르겠다.
 
날씨가 풀려서 그런지, 아니면 그럴 만한 시기가 또 됐는지, 좋았다면 추억이 됐겠지만 이젠 생각해 내기 싫은 기억이 된 장면들이 눈에 자주 밟힌다. 도박장 출입하듯이 주식장을 들락날락하면서 평일에는 신이 나는데(?) 주말이 조금 어려웠다. 이제 MA까지 합격하고 나면 발등에 불 떨어진 공부법은 통하지 않고, 장거리 달리기 같은 공부를 시작해야 하는데 과연 할 수 있을까. 뭐 그렇지만 당장 내일 일도 모르는걸. 일단 MA 붙고 생각하기로 했다.
 
집에 계란이 다 떨어져 테스코에 들러서 좀 사고, 무알콜 맥주도 샀다. 완전히 무알콜은 아니라지만 그래도 공부하다 보면 확연히 삐걱대는 머리, 그 원인이 노화와 알코올 같아서 요즘 와인, 알코올에 애정이 좀 덜해졌다. WSET 3 공부할 생각에 숨이 턱턱 막히기도 하고.



양배추, 양파도 사다가 막창볶음이랑 먹었다.

윗집에서 다시 쿵 쿵 뭘 떨어트리는 소리가 심하게 나서 늦게까지 잠을 못 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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