옆집
난중일기 044 (20240122~20240128) 본문
2024.01.22. 월요일
부다페스트, 맑음
새벽 두 시까지 간헐적으로 울리는 윗집 쿵쿵 소리, 그리고 애매한 시간에 낮잠을 푹 잔 탓으로 계속 선잠을 잤다. Company Gate에 펜딩 중인 서류가 있다고 해서 보니까... 내 블루카드 신청 관련이었다. 제출 기한을 8일 줬는데 애매하게 이틀 지나 있어서 또 취소될 각오를 해야 한다. 구글 번역기를 열심히 돌려가며 읽고 제출했다. 큰 기대는 없지만.
CMS 소믈리에 코스를 보다가 Introductory course가 5월에 일요일 끼고 런던에서 하는 게 있길래 신청했는데, 돌아온 답변이 너무 의외였다. 이미 식음료 업계에 몸 담고 있는 사람만 가능하고, 취미용으로는 WSET을 추천한다는 내용이었다. WSET은 이미 하고 있고, 나중을 위해 소믈리에 코스를 꼭 듣고 싶다고 하니 또 한 번 거절 메일이 왔다. 반드시 6개월 이상 현업으로 근무한 경험이 있어야 한다고. 오기가 생기지만 아예 없는 경험을 어떻게 만들까.
점심시간에 WSET 기출문제를 풀어보았는데 모르는 게 한가득이었다. 시간이 너무 빨리 가서 놀랐다. 지난 주 심심풀이로 지원한 미국계 회사에서 사전 설문을 보내왔다. MBTI 수준으로 항목이 많은 성격검사와 어마어마하게 난해한 41문항이나 되는 영어 테스트였다. 지난주 토요일에 이미 아이엘츠로 스트레스를 크게 받은 터라 짜증 났지만 어찌어찌 다 풀어서 냈다. 왜 지원했는지도 잘 모르겠다. 그냥 요즘 회사에서 있던 일에 일시적으로 너무 지쳐서인가. 아님 정말 질릴 대로 질린 건가.
층간소음 관련해서 결국 집주인에게 메일을 썼다. 사실 집주인이 뭘 해 줄 수 있을까. 그냥 만약에 나중에 혹시라도 이거 때문에 집 계약을 종료하게 되면, 언짢아하지 말고 나를 이해해주길 바라는 마음에 미리 말해놓는 것이다. 그래도 예전에 최초로 내 집 사고, 처음 겪는 층간 소음에 죽을 것 같이 힘들었던 때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집주인에게 답장은 빠르게 왔다. 몇 호냐고 묻는 간단한 메일이었다.
다섯시부터 공부를 시작했다. 꼬박 네 시간 반을 해도 범위 중 절반밖에 못 봤다는 게 충격이었다. 이제껏 모든 자격증 공부는 그냥 기출문제만 풀어보고 가서 떨어진 적이 없건만, 내가 머리가 나빠진 건지 아니면 그냥 내가 너무 시험을 우습게 본 탓인지 발등에 불 떨어졌다는 말이 딱이었다. 주차장이 10시 되면 문을 닫기도 하고 슬슬 배도 고파져서 집에 갔다.
어마어마하게 쿵쾅대는 윗집에 대고 천장을 쳤더니 듣고 그러는 건지 아님 안 들리는데 그냥 하는 건지 정말 뭐가 무너질 것 같은 쿠우우웅 소리가 한 번 나고는 조금 잦아들었다. 열두 시쯤 잠깐 잠들었다가 한 시에 또 쿵쿵거리는 소리에 깼고, 덕분에 공부는 조금 더 할 수 있었다.
책 보는 건 포기하고 플래시카드만 계속 돌렸다. 지역-품종 매칭이 조금도 되질 않았다.
2024.01.23. 화요일
부다페스트, 맑고 흐림
WSET 시험은... 망했다. 그냥 망했다. 풀면서 확실하게 알겠는 문제의 수를 우물 정자로 표시했는데 절반이 조금 안 되었다. 그렇다고 다른 거는 애매하게 알았느냐? 전혀. 그냥 찍어야 하는 수준으로 풀어서.. 아마 떨어졌을 것이다. 다음 시험 일정을 보니 4월이다. 차라리 잘 되었다.
미스터리 한인마트가 근처기에 처음 가봤다. 냉동 막창, 곱창이 있길래 사고 맛소금도 샀다. 집에 들렀다 갈 시간은 애매해서 그냥 곧장 회사로 향했다. 간만에 맥도날드 커피나 먹을까 싶어 드라이브인으로 주문했는데 블랙커피 롱커피 아메리카노 그런 거 없다고...... 내가 거기서 몇 번을 사 먹었는데 무슨 소리. 따지기도 싫어 그냥 포기했다.
오후 시간은 금방 갔다. 팀 회의도 하는 날이라 더. 조만간 팀 회식도 있다. 요즘은 확실히 마음에 여유가 생겨서 그런지 부담스럽지 않다.
바이올린 수업을 갔다. 선생님이 내 눈빛이 너무 긴장 가득+진지하다고 아예 눈을 감으랜다....... 집중하면 종종 그러는데 보기에 거슬리시나보다.
저녁에 RMC 클리닉에서 연락이 왔다. 2주 전에 검사한 자궁경부암, HPV 바이러스 결과인데 결과는 당연히 음성. 이제는 가다실 있는 약국을 찾아봐야겠다.
2024.01.24. 수요일
부다페스트, 비
아침에 비가 조금 내렸다. 이런저런 정보 검색을 하다가 미래 생각을 하니 조금 우울해졌다. 어느 정도는 날씨 탓도 있는 것 같다.
어제 시험 보고 내가 너무 기초가 없었다는 생각도 들고, 어쨌든 나중에 뭐라도 하려면 배워놓는 게 좋겠어서 세종사이버대에 소믈리에학과에 3학년 학사편입 신청을 해두었다. 집에는 말하지 않으려고 했지만 서류 제출을 등기로 해야 해서 어쩔 수 없이 이야기했다. 점쟁이가 뭐라고 그러든 상업성이 어쩌고든 딸이 먼 훗날에라도 술 장사 하고 싶다고 하는 게 영 싫은 모양이다. 엄마가 요즘 왜 뒤늦게 공부에 빠졌냐고 하는데........ 글쎄, 이게 공부일까 과연.
집주인이 윗집 관련해서 건물 관리 팀에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 건물 내에 관리실은 없어도 건물 관리하는 회사가 따로 있긴 한가보다.
요즘 자꾸 자극적인 음식을 먹었더니 속이 많이 안 좋다. 자제해야지 생각은 하는데 약간 유일한 낙처럼 되어서 어렵다. 처치곤란 찹쌀로 죽이나 해 먹어야겠다. 곰아저씨에 배달 주문할 때 맵쌀인 줄 알고 잘못 산 것이다.
회사 근처에 있는 약국에 전화해 보니 가다실 재고는 없고 주문 가능하다고 해서 내일 픽업하기로 했다. 토요일에 진드기 주사 맞으러 가는 김에 같이 맞겠다고 메일을 보내놨다. 아파서 가는 것은 아니지만 한 달에 병원을 몇 번 들락날락하는지 모르겠다. 지겨워. 이제 당분간 안 가야지.
와인자격증은 당분간 결과도 알 수 없고 떨어진대도 다음 시험은 4월에 본다. WSET은 2~3주면 충분한 시험이니 이제 다시 ACCA를 시작해야겠다. 적어도 기본 과목은 패스해 놓고 앞날을 걱정해야지.
오래간만에 일다운 일로 두뇌 풀가동 했더니 6시가 넘어 있었다. 오늘따라 유독 피곤하고 목이 푹 쉬었다. 몸이 안 좋은 건 아닌데 뭘까. 그냥 회사 일이 싫어서일까. 끝나고 바로 집에 갔어도 피곤했을 몸으로 9시까지 공부를 했다. 사실 아이엘츠 치고 와서부터, 또 WSET 공부를 벼락치기로 이틀 한 뒤로부터 가만히 앉아 영어로 된 글을 보는 게 어렵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 생판 모르는 지명을 외워야 하는 와인 공부를 접하다가 외울 것 없이 이론과 산수 문제에 가까운 ACCA 내용은 선녀 같고. 학점은행제로 듣고 있는 심리학 강의를 출첵을 위해 틀어놓았다가... 가만 보니 이젠 알바 중독이 아니라 공부 과목 중독인가 싶다. 예전엔 알바가 왜 그렇게 재밌고 좋은지 회사 다니면서도 주말에 알바 가고 그랬었다.
2024.01.25. 목요일
부다페스트, 맑고 강풍
나눔에서 팀회식을 했다. 나는 비빔밥을 시켰다. 사장님이 잘해 주셨다.
컨디션이 나쁘다. 졸린 건 아닌데 자꾸 졸린 것 같은 상태가 지속되었다. 집에 오는 길에 택시에서 전생처럼 잊고 있던 노래가 나왔다. Blue의 One Love.
2024.01.26. 금요일
부다페스트, 맑음
동생이 또 할머니네 집 1층에 샌드위치 가게를 차리니 어쩌니 허황된 이야기를 하는데 거기 빠져서 잠시 행복했다. 채용공고 볼 수록 나는 나이, 경력도 너무 많고 이렇다 할 자격증도 없으니 이직은 어려워 보인다. 볼수록 우울해져 이제 그만 구경하기로 하였다.
연 마감을 해야 하는데 사람들에게 같은 내용을 몇 번을 설명하는지 좀 지친다. 그래도....... 뭐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으면 됐지. 여기 와서 좋은 점 하나는 업무에 대한 강박증이 많이 내려놔졌다는 것이다. 이게 과연 생산적인 변화인지는 모르겠으나.
날이 점점 풀리고 있고 햇빛은 더 길어진다. 내 방은 무슨 찜질방 같다.
며칠째 속이 안 좋아서 죽이랑 포카리스웨트만 먹어보았다. 배고파서 하루종일 꼬르륵 소리가 나서 거슬렸다.
7시까지 회사 일을 하고 이후에는 FA 공부를 했다. 챕터 순대로 하다가 IFRS Foundation 이하 기구 편성 외우느라 시간을 다 쓸 것 같아 익숙하고 잘 아는 내용부터 빠르게 훑기 시작했다. 일요일에 나와야겠다. 처리해야 할 회사일도 남았고 겸사겸사.
윗집 때문에 잠들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려 늘 피곤하다. 이사를 간다고 해도 또 안 시끄러우리란 보장은 없고, 그렇다고 새벽 1시까지 자꾸 뭘 던지고 쉼 없이 걸어 다니는 또라이들이 또 존재할까 싶기도 하고... 어떡하면 좋을지 모르겠다.
2024.01.27. 토요일
부다페스트, 맑고 강풍
아침에 RMC에 가서 가다실 1차, 진드기 주사 2차를 맞았다. 간호사 둘이서 양팔에 동시에 놓겠다고, 그럼 한 번만 아파도 된다고 해서 진짜 뭔 소린가 싶었다. 그냥 두 번 놔달라고 하니까 애기들도 이렇게 놔주니까 믿어보랜다..... 그들의 고집 꺾을 힘이 없어 그냥 두었다. 당연히 동시에 놓지 못했다. 1초 미만이지만 차이가 있었고 아픔은 당연히 두 번 느껴졌다. 당연한 얘길 난 왜 쓰고 있는 거지. 내 말이 맞지? 한 번만 아프니까 좋았지? 하는 간호사에게 예스, 하고 웃어 주었다. 가다실이 조금 더 아팠다. 지난번 받은 백신 기록 카드에 스티커도 붙이고 하니까 뿌듯했다. 주사는 당분간 안녕이다.
병원에서 신입 직원과 바로 판도르프로 출발했다. 판도르프에서 버버리 트렌치, 숄을 샀다. 하나는 내 거고, 하나는 동생 것이다. 돈 보내준다 하여 아직 계산 안 했다고 둘러댔는데, 그냥 생일 선물을 이걸로 퉁칠까 생각 중이다.
비엔나까지 가서 샤브샤브집에 드디어 둘이 가서 2인분을 먹어보았다. 늘 혼자서 2인분 다 먹던...... 창피한 기억.
집에 오는 길에 화물차, 렉카가 많은데 졸음운전인지 뭔지 몇 번이나 위험할 뻔했다. 덕분에 잠은 다 달아나 정신 똑바로 차리고 운전할 수 있었다. 고속도로 표지판에 쓰인 부다페스트가 왜 정겨운지.
신입을 먼저 내려주고 집에 돌아오니 새벽 두 시가 넘어있었다. 피곤해서 금방 잠들었다.
2024.01.28. 일요일
부다페스트, 맑음
윗집 쿵쿵거리는 소리에 8시 30분에 깼다. 핸드폰을 보니 어제 헝가리 사는 분 블로그에 남겨둔 댓글에 답글이 달려 있었다. 바로 카톡을 해서 만나자고 약속을 잡아 보았다. 꼭.. 소개팅처럼 보여서 기분이 묘했다. 내 블로그는 어때 보일까 문득 궁금해서 제3자의 시선으로 다시 쭉 보려고 노력했다. 10~12월 초까지 내용이 너무 우울해서 깜짝 놀랐다. 그리고 한편으론 기분이 좋기도 했다. 내가 이랬었어? 하고 깜짝 놀랄 정도로 이젠 안 그렇다는 뜻이니까.
회사에서 결산 전표 좀 치려고 했는데 기본적인 게 또 틀려있어서......... 아.. 내가 잘 못 가르친 탓이다. 오늘 꼭 결산하려고 했건만 또 하루 미뤄지는구나. 하루이틀 일은 아니니까 그러려니 하련다. 좋아하는 단순 업무만 좀 하다가 두 시간 정도 myACCA를 켜서 FA 공부를 했다. 아무리 기초라지만 기출문제만 풀고 시험 보는 것은 무리였다. 기준 점수가 워낙 낮아 붙긴 붙었겠지만 하나만 보고 말 시험도 아니고, 용어도 많이 다르고, 유형이랑 익숙해지는 시간도 필요하다.
4시까지 공부하다가 약속이 있어 시내에 나갔다. 인도 커리를 먹었는데 맛있었다. 집에 와서 전날 사온 와인을 땄다. 반도 안 먹었는데 속이 싸르르했다. 후배와 밤늦게까지 카톡 하다가 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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