옆집

난중일기 041 (20240101~20240107) 본문

일상, 삶/매일 비장하게 나라 구하는, 난중일기

난중일기 041 (20240101~20240107)

여해® 2024. 1. 8. 0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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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1.01. 월요일
부다페스트, 맑음
 
새해 첫날부터 늦게까지 잤다. 꿈을 아주 이상한 것을 꿔서 아침부터 기분이 싱숭생숭했다. 새해 인사로 카톡이 정신 없었다. 몇 개 읽어보다가 어제 저녁에 해먹은 고추장삼겹살이 계속 생각나 다시 해먹었다. 이럴 거였으면 고기를 얼리지 말걸. 어제 애써 청소한 집이 다시 더러워질라 조심조심 요리했다. 
 
하루종일 누워있다가 일어났다가, 쪼그만 화면으로 뭘 자꾸 본다고 유튜브 켰다가 블로그 켰다가 뭘 검색하고 어쩌고 반복하니 눈앞이 흐릿해졌다. 겨우 일어나 앉아 한 것이 하던 짓 그대로 맥북으로 화면을 옮긴 것이다. 점심에 했던 밥이 딱 알맞은 양으로 남아서 유부초밥을 했다. 밥솥을 비우고 깨끗이 씻어 계란도 구웠다. 내일 점심, 저녁 다 이걸로 해결이다.
 
윗집인지 옆집인지 모를 것들이 정말 하루종일 소음을 낸다. 신경이 안 쓰이다가도 밤 11시 넘었는데도 가구를 끌고 뭘 떨어트리고 쿵쾅거리며 돌아다니고 하는 것에는 좀 화가 치밀었다. 윗집이 아닐 수도 있을까. 너무나 바로 머리 위에서 울리는 소리인데... 누가 올 일이 없는데 초인종이 울려 없는 척 한 걸까. 자꾸 그런 사정이 궁금해지고 소음에 집착하는 내 사고의 흐름이 싫다. 층간소음은 정말 어떻게 해도 적응이 안 되는 고통이다.
 
 
 
 
2024.01.02. 화요일
부다페스트, 흐림
 
아침부터 정신이 없었다. 꽤 긴 시간 회사 일이 나한테 스트레스가 아니었는데 이젠 스멀스멀 치고 올라온다. 내가 뭘 어떻게 할 수도 없는 일이라서 더욱. 그래도 정신 팔릴 곳이 있다는 건 좋았다. 이상하다. 다른 느낌이다. 마치 업무로 스트레스 받아하는 건 별개의 나인 것처럼. 온통 심각한 척 실제로도 열심히 하고 있지만 사실 아무 관심도 없다. 눈물도 뚝뚝 흐르지만 내 것 같지가 않다. 그냥.. 연기하는 것 같다. 이게 좋은 건지 나쁜 건지 모르겠다.
 
저녁에 바이올린 수업을 다녀왔다. 드디어 활을 잡아 봤다. 도레미파솔라시도는 언제쯤 연주할 수 있을까. 그래도 손가락으로 현을 튕기면서 음을 듣고 있는데, 그것만 해도 너무 좋다.
 
 
 
2024.01.03. 수요일
부다페스트, 맑음
 
새벽 다섯시에 일어나 아침부터 이민국에 다녀왔다. 그래도 합리적이고 영어도 잘하는 공무원 덕분에 거주증 관련해서 또 많은 정보를 알게 되었다. 점심에는 진반점에 가서 짜장면을 먹었다. 많이 매웠다. 그 옆에 버블티 가게를 갔는데 프림맛 같은 고소한 향이 아주 중독적이었다.
 
저녁에 스위스클리닉 피부과 진료를 보러갔다. 진료는 금방 끝날 거고, 그 옆에 Allee 몰 구경시켜 주고 싶어 신입이랑 같이 갔다. 진료 예약했을 때는 두피 상태도 너무 안 좋고, 몸 피부도 건조한 날씨 때문에 엄청 가려웠는데 막상 진료일이 다가오니 괜찮아져서 별로 말할 게 없었다.
 
Allee를 2시간이나 돌아다녔다. 점심에 먹은 짜장면, 탕수육 그리고 버블티가 엄청 배불러서 둘다 저녁은 생각이 없어 걸렀다. 전에 맛있게 먹은 와인을 또 샀다.


서점에 갔다가 내추럴 와인 양조장을 모아놓은 유용한 책을 발견했다. 헝가리어를 내가 할 줄 알면 바로 샀을 텐데. 저 두꺼운 책을 구글 번역기 돌려가며 읽을 자신이 없어 우선 내려두고 왔다.
 
집에 오자마자 피곤해서 금방 잠들었다.
 
 
 
 
2024.01.04. 목요일
부다페스트, 맑음
 
기다리고 기다리던 월급날. 투자에 신경쓰니까 월급날이 많이 기다려진다. 급여명세서에 잘못된 부분이 보여서 고쳐달라고 보내느라 조금 미뤄졌다.
 
회사가 나를 괴롭히지 않은지 꽤 됐다고 쓴지 얼마나 됐다고, 회사에서 또 이런저런 사고가 터진다. 그리고 그 중심은 언제나 꼴랑 이 직급임에도 불구하고 나지. 우습다.
 
저녁에 발레를 갔다. 두 번째 운전해가는 길이라 처음보단 수월하고 시간도 적게 걸렸다. 한 시간 반 수업은 좀 힘들다. 나중에 아 정말 그만하고 싶다 라는 생각이 들 때쯤 딱 시간이 다 되었다. 월급도 받았겠다 운동도 했겠다 진도식당에 가서 치킨을 포장했다. 어제 먹다가 너무 매워서 남겨 아쉬웠던 짜장면도 다시 시켜보았다.
 
밤에 후배와 통화하면서 와인 한 병을 다 마셨다. 기막힌 이야기를 들었다. 화도 안 나고 그냥.. 웃음만 나왔다. 고작 한 병에 취해서 포카리스웨트를 거의 1리터 마셨다. 
 
 
 
 
2024.01.05. 금요일
부다페스트, 흐림
 
모든 것이 내 책임으로 돌아오는 회사와... 인간들에게 질린다. 정말 너무 질린다. 그래도 어쩌겠나. 그냥 다녀야지.
 
점심에 오징어짬뽕 컵라면을 먹었는데 입안이 계속 텁텁했다. 이상하게 요즘 라면이 하나같이 맛없다. 어쩌면 스트레스 때문에 입맛이 변했는지도 모르고.
 
이만한 스트레스 안 받는 사람들도 있을까. 한두 번 아팠다고, 또 최근 몇 개월 죽은 듯이 다녔다고, 말끝마다 "과장님 스트레스 받으시면 안 되는데" 라는 소리를 듣는 것이 참 민망하다. 그렇게 약하지도 않고 스트레스에 많이 취약한 편도 아닌데. 이래서 첫인상이 참 중요하다. 좀처럼 바꿀 수가 없으니.

야근을 할까 어쩔까 하다가 그냥 집에 갔다. 몹시 피곤해서였다. 두나플라자에 들러서 팽이버섯이나 사려 했는데 없었다. 알리오올리오 파스타 해먹으려고 스파게티와 마늘을 샀다.

집에 와서 생각해보니 페퍼론치노가 없었다. 고민하다가 그냥 피자를 시켰다. 늘 맛있게 먹던 곳인데 상자 받아들면서부터 기름이 흥건했다. 노력했지만 정말 못 먹을 음식이란 생각뿐이었다. 엄은향 유튜브를 오래된 순으로 놓고 보며 깔깔대다가 잠들었다.



2024.01.06. 토요일
부다페스트, 흐림

열두시에 일어났다. 동생에게서 강아지가 아프다는 소식을 들었다. 돈은 얼마든지 보낼 테니 병원에 하루빨리 데려가 보라고 했다. 싱숭생숭한 마음을 지우려 듀오링고로 독일어 공부를 두 시간이나 했다.

케이팝 뮤비를 틀어놓고 투자 책을 읽다가 어느 순간 뉴진스를 넋놓은 듯이 보고 있었다. 아이돌 좋아하는 사람들 마음이 어느 순간부터 이해가 안 됐는데 조금은 알 것도 같았다. 세월이 갈수록 어딘가 아프고 변해가는 내 주변인과 가족, 그리고 하루하루 늙어가는 나의 내외면을 견디고 이끌어가는 와중에 저렇게 반짝 반짝 빛나는 청춘을 보면 너무 찬란해서.

헝가리 오고나서부터 더 개털이 된 긴 머리가 너무 거추장스럽다. 다시 숏컷으로 살고 싶다. 자르는 거야 문제가 안 되겠지만 그러고 나서 미용실을 자주 갈 수 있는 환경이 아닌 게 아쉽다.

책 읽다가 중간에 씻고 다시 누워 책을 읽었다. 갑자기 시간이 확 흘러가 있어 놀랐다. 경제, 재테크, 주식, 부동산 이런 이야기를 읽을수록 내 상황이 불안하게 느껴져서 손에서 놓을 수가 없다.





2024.01.07. 일요일
부다페스트, 비

영화 예매한 것이 영 끌리지 않아 취소하려 했지만 취소 가능한 시간을 이미 넘겨버렸다. 영화는...... 영화 보다가 잠들뻔한 건 살면서 두 번째였다. 영어자막이나 영어원어 영화에 현혹되지 않기로 다짐했다.


스시플라넷에서 초밥 포장을 했다. 퀄리티는 한국 결혼식 부페 수준인데 가격은...... 다신 안 먹어야겠다. Spar에서 계란, 페퍼론치노, 그리고 속이 빨간 귤을 샀다. 우리집 옆 Spar에는 없는 것이다.

고려거란전쟁을 보다가 너무 울어서 키친타올로 닦아도 금방 너덜너덜해졌다. 애국심이 뭘까. 뭐라고 저렇게 몸바쳐 죽을 수 있었을까.

윗집이 너무너무 시끄럽지만 그냥 신경 끄고 누웠다. 딱히 잘 되고 있는 것도 아닌데 주식장 열린다는 사실 하나로 월요일에 위안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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