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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중일기 038 (20231211~20231217) 본문

일상, 삶/매일 비장하게 나라 구하는, 난중일기

난중일기 038 (20231211~20231217)

여해® 2023. 12. 18.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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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2.11. 월요일
부다페스트, 흐림
 
아침에 이민국에 다녀왔다. 미리 예약을 해놓기도 했고 단순 변경 문제라 서류 제출하고 서명하는데 15분도 걸리지 않았다.
 
마이리얼트립에서 결제한 투어 상품 환불 때문에 아침부터 화르륵 하고, 커피 마시다가 왜인지도 모르게 옷에 쏟아버리고 (저번부터 마음에 안 든다고 구박한 아크네 맨투맨.......) 메일에서 until을 빼먹고 읽어 미팅 시간을 바보로 잡질 않나 정신이 없었다. 그냥 어떻게 봐도 체력이 고갈된 게 이유 같아서, 다시 한 번 다짐한다. 당분간은 휴가 안 쓰고 가는 벼락치기 주말 여행 금지.
 
친구가 곧 네 생일이지 하면서 현금을 보내주었다. 이것으로는 주식을 하나 사서 안 쓰는 계좌에 넣어두기로 했다. 꼭 이렇게 사소하게 사놓고 잊는 건 잘 오르더라.
 
피곤해서 수영은 다른 날로 미루고 대신 7시에 두나플라자에 있는 마사지 90분을 예약했다. 원래는 다섯 시 땡 하자마자 일 그만하고 한 시간 반 공부하다가 가려 했는데, 역시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 프로그램에서 다운 받은 원장에 오류가 있어 같은 일을 두 번 반복했다.
 
마사지 받는 도중 이사님께 전화가 와서 받았더니 세상에..  몹시 신경쓰이는 일이라서 한 30분은 그냥 핸드폰으로 자료만 본 것 같다. 어서 끝나기를 기다려 회사에 도착했는데 건물 문이 잠겨있었다. 쾅쾅쾅쾅 두들겨서 들어오고 나니 진짜 나라 구하는 모양새가 따로 없어 우스웠다. 자료를 보고 설명만 하면 되는 일이라 15분 정도 걸려 일은 금방 마쳤고, 다시 책상 앞에 앉은 김에 두 시간 정도 ACCA 공부를 했다. 확실히 실무 계산 문제가 나오니까 오답률도 내려가고 속도가 붙는데 문제는 개념이다. 사지선다형 문제는 죄다 말장난 하는 것 같고 쓰는 용어도 익숙하지 않고 IFRS 기구가 뭘 어쨌단 말이고...... 하도 오랜만에 공부라는 것을 하니까 ~입니다. 에 밑줄 긋는 바보가 된 기분이다. 뭐가 중요한지, 뭐가 시험에 나올지 감이 하나도 없이 무식하게 다 보고 있는 미련한 느낌.
 
택시를 타고 집에 갔다. 오늘은 진짜 정신없고, 일이 안 풀리고, 이상한 날이었다. 그래도 이만하면 선방했다. 자기 전까지 독일어 공부를 했다. 무슨 언어든 초급이 제일 재밌을 때니까, 또 어플이라서 약간 게임 같으니까(?) 가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한다.
 
 
 
 
2023.12.12. 화요일
부다페스트, 맑다가 비
 
오늘은 햇빛이 강하다. 주차장에서부터 코트를 벗고 왔다. 며칠째 쌓였던 눈이 녹기 시작했다.
 
햇빛이 강한 날은 왜인지 모르게 알러지가 심하게 도진다. 세티리진염을 한 알 먹고 일을 봤다. 재채기 한 번 나기 시작하면 성가셔서 살 수가 없다.
 
신입이 어제 연말정산을 물어봐서 대답해 준 김에.. 슬슬 종소세 공제받을 수 있는 게 뭐 없나 (그래봤자 연금) 살펴보다가 소름돋게 국민연금이 이제야 생각났다. 작년 12월부터 소득이 발생한 것을 생각도 안 해놓고 그냥 산 것이다. 아..... 어떻게 회사 돈은 관리하며 밥벌어 먹고 살고, 내 돈, 내 세금은 이렇게 엉망진창일까.
 
점심시간에 그저께 반 덜어둔 버터치킨을 먹었다. 현지식도 아닌 이 인도 요리가 제일 안 질리고 꾸준히 잘 먹는 음식인 듯 하다.
 
오후에 평화롭게(?) 종소세 감면 계획을 세우고 있는데 갑자기 전화가 와서 받으니 와인 학교에서 이번 주 주말 수업을 취소한다는 내용이었다. 10월부터 등록하고 엄청 기다렸고, 정말 기대했는데 기운이 빠졌다. 이렇게 된 김에 WSET 레벨2는 독학으로 시험을 치고 레벨3으로 바꿔 들어도 되겠냐 하니 매너리즘에 빠진 목소리로 "응 니가 통과한다면 말이야" 라고 했다. 아................. 뭐 하나 한 번에 되는 게 없는 어메이징 헝가리.
 
퇴근 후에 조말론에 가서 회계법인에 줄 선물을 샀다. Szamla 하나 끊는데 30분이 넘게 걸린 것 같다. 어린 직원이 손을 덜덜 떠는데 안쓰럽기도 하고, 내 시간은 아깝고 만감이 교차했다.


선물 포장 한세월 걸릴 것 같아서 크리스마켓을 둘러보고 왔다. 전체적인 구성은 작년이랑 비슷하고 뱅쇼는 여전히 맛있다.
 
What's Running에서 오랜만에 저녁을 먹었다. 사람이 많아져서 이젠 예약 안 하면 먹기 힘들겠다.



배불리 먹고 옆 카페에서 아이리시 커피까지 먹으니 실시간으로 몸이 불어나는 느낌이었다.

집에 도착해서 누웠는데 후배가 회사 관련 고민이 있다고 해서 들어주었다. 오랜만에 이런저런 얘길 하다보니 새벽 3시가 되었다. 깜짝 놀라 끊었다.
 
 
 
 
2023.12.13. 수요일
부다페스트, 비
 
쉬는 시간에 종소세 계산하느라 초장부터 머리가 깨지는 줄 알았다. 결론은.... 복식부기를 하면 20%나 감면 되니까 2024년부터는 복식부기 하자는 것과 (단순경비율보다 실제 경비가 더 나올지는 미지수), 올해 연금저축에 180만원 불입하면 2023년 결정세액은 0원이라는 것.
 
팀원이 생각지도 못하게 크리스마스 선물을 주었다. 그것도 회사 옆 마사지샵에서 사용할 수 있는 아주 요긴한 바우처를. 나도 팀원들 선물로 뭔가 준비해야 하는데 마땅한 게 생각이 나질 않는다.
 
1월 이집트, 3월 한국 가는 일정을 보고하고 휴가를 냈다. 3월 정말 영원히 오지 않을 것 같더니 벌써 3개월 남았다.
 


저녁에 원래 도수치료가 있는 날인데 부장님이 방어 먹으러 가자고 하셔서 홀라당 갔다. 참치도 시켰다. 한국에서 먹던 것이랑 완전히 똑같아서 놀랐다. 하긴 우리나라에서 먹는 참치도 밖에서 잡아오는 거니까 다를 이유는 없겠지. 두 명이서 술을 다섯병이나 먹었다. 그런데도 멀쩡했다. 
 
 
 
 
 
2023.12.14. 목요일
부다페스트, 비
 
주택임대소득 생각해 보다가 작년에 비과세분을 종소세에 합쳐 신고한 것이 떠올라서 경정청구했다. 작년 낸 세금에서 10만원 더 돌려 받겠다. 역시 모르면 돈을 더 내고 알면 더 아낀다. 내 돈에 관심 생기니까 이제야 세금에 예민해진다.
 
오늘은 팀 회식 하는 날이라 점심은 대충 새우깡 먹고 걸렀다. 어제 너무 많이 먹기도 했고.
 
어제부터 계속 게으르게 있는데 연말이라 일은 닥쳐온다. 우리 법인도 이제 외부감사 대상인데다, 자체기장 하고 있다보니 헝가리에서 처음으로 외감을 대응해 보겠다. 평소에 워낙 잘해놓아서 별로 쫄릴 건 없지만... 그래도 감사는 늘 달갑지 않다. 뭐, 이것도 잘 지나가겠지.
 
신입이 날 위해서 Firstmed에 진드기 예방주사 예약을 전화로 해 주었는데, 혹시 여기도 영양수액 맞을 수 있지 않을까 싶어 채팅으로 물어보니 내 앞으로 예약된 것 자체가 없단다. 마침 생일이라 연차도 냈겠다 아침부터 병원 볼일 좀 보려고 했더니 어게인, 어메이징 헝가리. 다시 예약하고 시간은 11시로 미루었다. 영양 수액은 바로 맞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저녁에 나눔까지 택시를 타고 갔다. 차가 많아 거의 50분이 걸렸다. 택시기사가 틀어둔 라디오는 시끄럽고 멀미가 나서 힘들었다. 
 


사장님이 다 먹을 수 있겠냐고 했는데 우린 다 먹었다. 의외로 비빔밥이 너무너무 맛있었다. 팀원들에게 이런 자리를 자주 못 만든 것에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내가 앓아누웠던 그 오랜 기간 동안, 내가 정신 나가 있던 동안, 나 없이 회사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도 들었다. 나는 정말 팀장의 자질이 없다... 하지만 이제부터라도 팀원들에게 내 책임을 다 하리라 마음 먹었다.
 
다음 주 생일에 좋은 저녁을 뭘 먹을까 고민하다가 김해 식당에 연락했지만 혼자는 안 된댄다. 굳이 내 생일 주변에 알리기도 부담스럽고... 누구라도 그냥 같이 가자고 하면 분명 물어볼 것 같고. 오마카세 너무 먹고 싶지만 그냥 스시세이 가는 걸로 대충 스스로 합의 보았다. 남는 예산으로는.. 한달만에 또 엉망진창이 된 집에 청소 서비스나 한 번 더 불러야겠다. 어차피 좋은 거는 평소에도 많이 먹으니까.
 
 
 
 
 
2023.12.15. 금요일
부다페스트, 흐림
 
해외정착지원금이 계좌로 들어왔다. 안 받아도 그만이라 생각해놓고 막상 훅 늘어난 계좌 잔액을 보니, 기간을 놓쳐 2~3차는 못 받는 게 아쉽다. 한창 힘들었던 11월에 정말 겨우 정신 붙들고 했던 번역 수수료도 오늘 들어왔다. 정말 그때는 아무 것도 못하겠는 거 주말에 겨우 몸 일으켜 뚝뚝 울어가며 했는데... 돈으로 결과를 보니까 뿌듯하다. 오늘 들어온 번역료까지 소득 금액을 다시 계산해 보니 생각보다 더 많아서 연금저축 통장에 돈을 더 넣었다.
 
생각해보니 정신없어 부사장님 휴가 가시는데 인사도 못 드렸다. 카톡으로나마 새해 인사를 드렸다. 이제 정말 연말이다. 오늘은 유독 회사에 앉아있는 게 지치고 힘들어서 저녁에 두나플라자에 마사지 예약을 했다. 노인처럼 온종일 아이구 힘들다 힘들다 소리가 계속 나왔다.
 
내일은 비엔나에 간다. 가서 먹기만 할 거 이럴 바엔 그냥 아예 비엔나에 살면 좋겠다. 이렇게 대충 써두면 이것도 언젠간 이뤄질까? 써놓고 잊으면 많은 게 이뤄져 있는 경험을 여러 번 했다. 꼭 잊고 살았던 주식에서 수익이 50%나 나듯이.

저녁에 인도커리를 또 시켜먹었다. 정말 맛있었다. 오늘이 고거전 하는 날이면 보면서 먹기에 딱 좋았을 텐데. 윗집이 또 시끄러워 불경을 틀어놓고 잠들었다.





2023.12.16. 토요일
부다페스트, 맑음

택시를 탈까 차를 탈까 고민하다가 차를 끌고 켈레티역에 갔다. 비엔나는 아주 꽉 채워 잘 놀다 왔다.

주차장에 세워둔 차가 하루종일 추웠는지 잔뜩 얼어있었다. 눈이 쌓인 것도 아니고 창문에 다닥다닥 얼음이 얼어 녹이느라 한참 기다렸다. 밤이라 거칠게 운전하는 차가 좀 있었다. 랜덤으로 틀어둔 플리에서 BK love가 오랜만에 나왔다. 어릴 때는 멜로디가 너무 내 취향이라 몰입하고 싶어도 무슨 소리인지 몰라 못했던 가사다. 너에 대한 마음이 커지면 커질수록 나는 더욱더 힘들어해야만 했어. 불안에 떨어야만 했어. 이제는 내 자신이 지쳤어 너를 볼 자신이 없어. 그래 비겁하게 너에게 등을 보이고 도망

집에 돌아오자마자 최소한만 씻고 누웠다. 내일은 드디어 집에서 좀 쉬어보겠다. 시간이 괜찮으면 회사도 가보고.




2023.12.17. 일요일
부다페스트, 맑음

윗집이 새벽 두 시까지 쿵쾅거려 덩달아 두 시까지 못 잤다. 아침에 잠깐 화장실 간 것 빼고 오후 12시까지 잤다.

비엔나 중앙역에서 사온 캘리포니아롤을 먹고 오랜만에 캡슐커피도 내려먹었다. 뭐 한 게 없는데 날이 금방 저물었다.



해질녘 특히 예쁜 우리(주인)집. 1년간 정말 큰 불만없이 살았는데 이젠 빛좋은 개살구다. 윗집 때문이다. 윗집은 사람이 없으면 분리불안인지 개가 하울링하고 사람이 들어오면 진짜 잠시도 쉬지 않고 발소리가 들린다.

맥북을 정말 오랜만에 켰다. 5월 이후 이걸 켜보는 게 처음인가보다. 그때 잘 주고받던 메시지가 팝업으로 떠서 심장이 덜컹했다. 3초 정도 망설였나? 이내 지워버렸다. 즐거움은 찰나였는데 어쩌면 이렇게 후유증이 길게 가는지.

윗집 소음이 너무 심해서 정말 몇 번이나 올라가고 싶은 걸 꾹 참았다. 그러나 이러다가 언젠가는 올라가 볼 것 같다.

 


고려거란전쟁 보면서 울었다. 현종이 너무 인프피같아서 가끔 좀 보기 싫을 때도 있지만 나라 구하는 게 너무 비장하고 슬프다. 나는 현종보다 나이도 훨씬 많고 우리 회사는 나라도 아니니 감히 공감하면 안 될 것 같지만.


밥을 넉넉히 해서 인도커리랑 먹고 남은 밥으로는 유부초밥을 만들었다. 처음 만들 때보다 확실히 잘한다. 밥을 마구 넣다가 찢어진 것도 딱 하나. 밥 양도 조금 많긴 했지만 그래도 남는 것 없이 성공. 두나플라자 아시안 마트에 유부초밥 키트도 팔아주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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