옆집

난중일기 039 (20231218~20231224) 본문

일상, 삶/매일 비장하게 나라 구하는, 난중일기

난중일기 039 (20231218~20231224)

여해® 2023. 12. 25. 1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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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2.18. 월요일
부다페스트, 맑음
 
아침에 꿈을 꾸고 일어났다. 윗집 소음과 내 개인적 문제로 스트레스가 심해 꿈자리가 좋지 못했다. 분명 저번 주만 해도 기억하고 있었는데 이순신 장군님 기일도 놓쳤다는 것을 깨달았다. 확실히 많이 소홀해진 것을 느낀다. 나는 왜 좋아하는 것도 꾸준하지 못할까. 이렇게 하루하루 달라지는 내 갈대같은 마음이 언제까지 관심 가질지 모르겠지만 투자하고 있는 것들이 소소하게 수익이 나서 자꾸 들여다보게 된다.
 
올해 잃어버린 시간에 대해 본전 생각나는 내 마음이 치사하고 멋없다. 멋대로 좋아해놓고, 멋대로 허송세월 보내놓고 이제와서 내 체력과 내 시간 내 건강 아까워 쫑알쫑알 어쩌구 딴 소리 하게 되는 것이 이제 진짜 살만해졌나 보다. 그러나 이렇게 되기만을 (울지도 않고 밥도 잘 먹고 잘 자고 잘 일어나고 회사 잘 나오고) 얼마나 간절히 바랐는지 생각해보면... 지금이 최선이다. 지금에 감사한다. 
 
간만에 맑은 하늘은 보기 좋지만 사무실 앉아있으면..... 힘들다. 오랜만에 창문을 열었다. 차가운 공기에 기분이 좋아졌다. 때마침 오늘 회계법인과 있던 미팅이 취소되었다. 헝가리인은 모두 프로 캔슬러인가 슬슬 자리잡으려 하는 편견과는 별개로 일단 내년으로 미뤄진 부담감에 안도한다. 나는 정말 미팅을 이렇게까지 싫어해서 어쩌려는지 모르겠다.
 
어젯밤에 1월에 내야 할 카드값이 700만원인 것을 보고 너무 놀랐다. 공개된 공간에 이렇게까지 적나라하게 쓰는 것은, 정말 정신차리고 싶어서다. 저 700만원 중에 100만원 넘는 고가의 물건은 하나도 없었다는 것이 더욱 충격이다. 당연하지. 나는 지금도 똑같은 옷 입고, 똑같은 에코백 들고 다니는데. 어디에 썼는지 궁금해 찾아보니 대부분 항공사, 부킹닷컴 등이 결제처인 것으로 보아 여행으로 추정된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진짜 미쳤나보다. 가계부를 열심히 쓰기로 했다.
 
점심시간에 어제 만들어온 유부초밥을 먹었다. 양이 많아도 내가 직접 만든 거니까 다 먹었다. 오후에는 회계법인에서 보낸 부가세 신고 업무파일을 보면서 이해했다. 몇 가지 고칠 것이 보여 정리해 메일을 보냈다. 다섯시 되자마자 acca textbook을 켜서 공부했다. 한 시간 반쯤 하니까 너무 졸리고 재미도 없고 생각보다 많이 틀리고 저번 영국 여행부터 날 괴롭히는 영어 실력에 (나 진짜 이 나이에 영어로 고생할 줄 몰랐네) 자괴감이 들었다. 자기합리화일 수도 있지만 정말 개념을 몰라서 틀린다기보다 용어와 문장의 문제인 것 같다. 계산 문제는 거의 다 맞는 것을 보니까 조금 안심도 되고 속도가 붙어 9시까지 정신없이 문제를 풀었다. 저번 주에 진도식당에서 먹은 참치회가 자꾸 생각났지만 시간도 늦고 귀찮고 피곤해서 그만두었다.
 


밤에 기온이 많이 떨어져 차가 또 꽝꽝 얼었다. 10분정도 히터를 최대치로 틀고 차를 녹였다. 몹시 추웠다. 기름이 한 칸 남았고 내일은 바이올린 수업 들으러 부다까지 가야 하기에 Shell에 들러서 기름을 넣었다.
 
집에 와서 옷 입은 그대로 드러누워버렸다. 일은 아홉시까지 해도 이렇게 힘들지 않은데 공부는 괴롭다. 새벽 한 시까지 뭘 자꾸 그렇게 던지는 건지 발로 찧는 건지 윗집 때문에 선잠처럼 자꾸 졸다 깨다 했다.
 
 

 
2023.12.19. 화요일
부다페스트, 흐림
 
거리마다 풀과 나무가 설탕가루 입힌 것처럼 하얗게 얼었다. 아침 이슬이 언 것인지 눈이 잠시 내리다 만 것인지.
 
출근하니 책상 위에 또 초콜렛이 두 개 놓여져 있었다. 하도 간식이 쌓이니 이제 누가 뭘 새로 갖다 놔도 모르겠다. 내 방에 누가 들어온다는 것이 기분 나쁘진 않고 그저 너저분한 책상이 부끄럽다. 한 번 마음 먹고 싹 치웠다. 정리하는 머리는 따로 있는 걸까. 나름 치운다고 치워도 깔끔해 보이지 않았다.
 
EUR 환율이 조금씩 오르고 있다. 얼마 전 사놓고 매도 걸어둔 유로화가 한국시간으로 오전에 팔렸다. 회사 자금도 일부 포린트로 환전했다. 이런 추세라면 이번 달 월급은 저번 달보다는 많겠다. 유로 환율에 따라 급여가 달라지다 보니 돈에 관심 많아진 요즘 특히 민감하게 보고 있다. 언젠가 내가 신입에게 포린트 환율은 거의 코인 수준이라고 농담한 적이 있다. 코인은 농담이 심하고 주식 수준까진 되는 거 같다.
 
ACCA 시험을 12월 31일로 예약했다. 마감이 없으니 공부도 비효율적으로 하게 되는 것 같고, 그냥 현실을 마주하고 싶다 (또?). 그래도 어떻게 벼락치기로 되지 않을까. 이번 달에 아이엘츠 비롯 영국에 시험료로 바친 돈이 얼마인지 모르겠다. 생각해보니 WSET도 그 출처가 영국이다. 영국은 자격증팔이의 나라입니까?
 
전날 밤에 그냥 뻗어버리고 저녁을 굶어서인지 배고파서 신입이 한 움큼 씻어준 딸기를 먹었다. 벌써 딸기가 나오는 철이라니. 올해 늦봄에 헝가리 햇빛 따가운 줄도 모르고 센텐드레 딸기밭에 딸기 따러 갔던 거 생각하면....... 철없다. 한편으론 혼자 꿋꿋하게 그런 델 가고 어쩌고 할 정도로 해맑았나 싶어 씁쓸하고. 몇 개월 사이 이렇게 가라앉고 웬만한 일엔 이제 잘 웃지도 않는 나는, 이젠 어른이 되었다는 말보다는 늙어간다는 말이 어울리는 나이이지만, 그래도 성숙해졌다는 말로 퉁쳐보고 싶다.

 
생일 주간을 기념해 테스코에서 꽃을 샀다. 평소 사던 것보다 1,000포린트 더 주었는데, 동생이 사진으로는 그냥 썩어보인다 해서 살짝 감흥이 식었다. 썩은 게 아니고..... 파스텔톤이라 해야해 뭐 뭐라고 해야해. 아무튼 실제로는 예쁘고 정성스레 손질해서 화병에 꽂아 두니 더 예쁘다.


 


회사 마치고 바이올린 수업 들으러 가는데 장소에 가까워져 갈수록 동네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안개가 껴서 더 그렇고 중간에 숲 수준의 공원도 지나갔다. 회사에서 차로 15분 거리에 이렇게 별천지 같은 데가 있다니.

 

 
피아노 n년 배웠단 소린 안 하는 게 나을뻔 했다. 나는 저 줄 네 개로 도레미파솔라시도 어떻게 해야하는지 모르는데... 완전 초심자는 2년만에 처음 받아본다는 선생님의 기대는 한없이 높아 보였다.


 

Spar에서 장을 보려고 두나플라자에 갔는데 못 보던 미니소 매장이 보였다. 새로 생긴 건가? 아시아 문화가 여기도 열심히 침투중이다.
 
집에 와서 김치볶음밥을 대량으로 만들고 뻗으려고 했는데 윗집이 너무 시끄럽고 견딜 수가 없어서 와인을 한 병 다 마셔버렸다. 새벽 1시까지 쿵쿵 뭘 자꾸 떨어트리는 소리가 났다.

 


2023.12.20. 수요일
부다페스트, 맑음

 
아침마다 눈 혹은 이슬이 언다. 주차장 장미가 미녀와 야수 속 장미처럼 탐스러웠는데 하얗게 얼어버렸다.

이러다가 곧잘 해가 쨍쨍해진다. 그럼 나는 또 숨이 막히고.. 그래도 볕이 좋아 점심시간에 간만에 공원까지 산책했다. 여기 벤치에 숨어앉아 얼마나 울었는지 헤아려지지도 않을 정도인데 이젠 그냥 까마득히 어린 날 내지는 남의 일 같다. 내 마음에서 나가버린 모든 것들은 얼마나 사소하고 무의미한지.

요즘은 공부, 층간소음, 투자(만세..!)에 관심이 가서 꿈도 그런 걸 꾼다. 아이엘츠 꿈을 꿨다. 정확히는 내가 B1이 나오고, 내 경쟁자는 C1이 나오는..... 공부도 안 하면서 욕심만 많아가지고 뒤죽박죽이다.
 
오후부터는 햇빛이 덜해 시원하게 있었다. 잠깐 달아올랐던 방 공기에 장미도 활짝 피었다. 잎이 크고 풍성해서 작약 생각도 난다. 겹겹이 꾹 다물고 있다가 활짝 피어나는 작약을 한국에서는 종종 사곤 했는데.... 생각해보면 이번 주 금요일에 생일이라 연차, 26일까지 크리스마스 연휴, 볼 수 있는 시간이 며칠 없어 조금 아깝기도 하다.
 
저녁에 발레하러 부다 지역 남쪽까지 내려갔다. 주차료도 안 받을 정도로 외진 곳에 있다. 주변에는 한때 SNS에 주구장창 올라오던 약간.. 힙한 공장 분위기의 건물이 많았고 실제로도 BUDAPEST ART WORKSHOP? 이런 간판 걸어놓고 있는 곳도 있었다. 예전에 한 번 가고 말았던 Kiraly 거리의 시간 단위로 빌리는 지하 연습실보다야 훨씬 낫지만, 너무 먼데다 운전이 쉽지도 않은 길이라 고민이 된다. 간만에 운동다운 운동을 한다는 느낌을 받은 건 좋았다. 슈즈도 조금 더 큰 사이즈로 새로 샀다.
 
남쪽까지 내려간 김에 두나판다에 들러서 식료품을 샀다. 이번엔 꼭 먹자, 절대 버리지 말자, 다짐하면서 산 두부와 팽이버섯. 부끄러운 말이지만 지금까지 팽이버섯을 네 번 샀는데 한 번도 먹은 적이 없다..... 제발 먹자 이번엔 꼭.
 
집에 돌아와 어제 만든 김치볶음밥을 먹으며 내 남자의 여자를 봤다. 요약본만 주구장창 돌려봤었는데 묘하게 남아있는 서울사투리, 폴더폰, 그리고 현란한 대사까지 향수를 불러일으키니 팝콘무비처럼 보기 딱 좋다.
 
 
 
 
 
2023.12.21. 목요일
부다페스트, 흐리다 비
 
아침에 이민국으로부터 우리 회사 직원분의 거주증 신청이 취소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들어보니 나랑 아주 똑같은 케이스인데, 그래도 이 분은 기존 거주증의 변경, 연장이라... 다행이다. 이걸 보는데 또 예전 기억이 확 떠올랐다. 이때 얼마나 울고불고 했었는지. 지금 생각하면 이렇게 허허 이민국이 허허 또 그랬네 할 거면서. 지들끼리(이민국-노동청) 서류 주고받고 못한 거면서 정말 부당하지만 이게 바로 외노자의 서러움이다.
 
나는 한 달 중 지금이 제일 바쁜 시기인데 팀원들은 모르는 눈치다. 몰라도 상관없지만 바빠지니 신경이 날카로워지는 건 나도 느껴서 자제하고 있다. 작년에 생일이라고 연차 썼다가 반납하고 사무실 들어와 일하고, 우리 팀원 빼고 다들 퇴근한 사무실, 이미 해가 다 져버린 저녁 하늘을 테라스에 나가 올려다 보며 엉엉 울고 그랬었다. 구질구질하게 전 회사 생각도 좀 했었고. 생일이라고 특별하게 뭐 하고자 하는 것도 없고, 누가 나 챙겨주는 것도 싫어서 꽁꽁 숨지만 그래도 이런 하루쯤은 내 자신에게 잘해주고 싶은데 (카드값 보면 평소에도 지나치게 잘해주고는 있음...) 야근하는 건 너무하다고 생각했다. 지금 생각해도 살짝 빡치는 일이다. 그러니까 내일은 무슨 일이 있어도 카톡 안 볼 거다. 아웃룩도 꺼버릴 거야.
 
어쨌든 마감은 해야 하기에 7시 30분까지 야근했다. 보고서 작성이랑 겹쳐서 많이 바빴다. 신입이 크리스마스 선물을 주고 갔다. 나도 마침 라이언에어에서 기프트카드를 구매해서 보냈다. 아무 것도 준비 안 했으면 정말 민망할뻔 했다. 집에 갔다가 외식하러 나갈까 싶기도 했지만 생각해 보니 27일까지 컴퓨터 앞에 앉을 일이 없고, 한국에 두고 온 자차 자동차 보험 갱신이며 학점은행제 공인인증서 이동이며 핸드폰이나 맥북으로 해결 못할 것들이 갑자기 생각나서 인증프로그램 이제야 깔고 어쩌고 하다가 결국 한 시간이 지났다. 현대해상 욕욕욕.

집에 그대로 갈까 하다가 나눔에 갔다.

만두 너무 맛있었는데 이 뒤로 사장님이 음식을 많이 주셔서 만두까지 시킨 건 좀 후회됐다.


1년 넘게 못 먹은 알밥.... 메뉴에는 없는데 저번에 사장님이 듣고 약속해 주신 걸 잊지 않으셨다. 진짜 진짜 먹어본 것 중에 세 손가락 안에 드는 알밥.



두 병 비운 따뜻한 청주. 나중에 와인도 가득 따라서 주셨는데 진짜 더 들어갈 공간이 없이 많이 먹었다.



2023.12.22. 금요일
부다페스트, 맑음, 소나기



생일이었다. 생일에 아침부터 병원 투어를 다녔다. 2주 전부터 예약하고 간 진드기 주사는 재고가 없다 하고 비타민 수액도 젊다고 안 놔주었다. 아무 것도 안 하고 진료비는 35,000포린트(약 13만원..?) 쓰고 나와 그 앞 맘뭇에 갔다. 다행히 마사지 받을 자리가 하나 있어 한 시간 의자에 앉아 마사지를 받았다. 너무 좋았다.

하루종일 짜증났다가 밝아졌다가 하는 내 마음처럼 날씨도 비가 내리다 맑다 난리가 났다.

모든 식당이 평일 점심에도 난리여서 결국 긴 줄을 섰던 맥도날드 드라이브인. 무지개가 선명히 떴다.




단독 건물 사용에 외진 곳에 있어 더 병원 같았던 스위스 클리닉. 멀지만 않아도 여기로 정착할 텐데. 어쨌든 Firstmed는 이제 안 갈 것 같다.



저녁에는 참치회와 홍합탕을 먹었다. 어제 저녁부터 계속 먹기만 하니 나중엔 발목부터 발이 땡땡 붓는 게 느껴졌다. 오랜만에 골드핑거까지 가서 마사지를 또 받았다.



2023.12.23. 토요일
베르가모, 맑음

베르가모는 따뜻해서 코트를 입지 않아도 되는 수준이었다. 친구 부부를 만나 재밌게 놀았다.




2023.12.23. 일요일
베르가모, 맑음

밀라노, 꼬모까지 다녀왔다. 저녁에는 피자를 먹었다. 여행기는 별도로 작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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