옆집

난중일기 040 (20231225~20231231) 본문

일상, 삶/매일 비장하게 나라 구하는, 난중일기

난중일기 040 (20231225~20231231)

여해® 2024. 1. 1. 2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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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2.25. 월요일
베르가모, 맑음
 
밀라노, 꼬모까지 다녀왔다. 여행기는 따로 작성.
 
 
 
2023.12.26. 화요일
베르가모->부다페스트, 맑음
 
역에 짐 맡기는 곳이 있는 것을 모르고 10시 퇴실 후 무거운 짐을 질질 끌고 다녔다. 거리가 온통 사람이 하나도 없고 연 상점도 없어 썰렁했다. 작년에 친구들과 함께 텅 빈 부다페스트를 돌아다닐 때도 마찬가지였는데, 이럴 때 가장 크게 느낀다. 내가 남의 나라 와있다는 것을.
 


크리스마스 마켓 쪽에 그나마 사람이 좀 있고 와인은 더 못 사겠지만 치즈 욕심이 나서 1.5키로나 샀다. 바보같이 100g당 가격을 키로당 가격으로 잘못 보고.................... 93유로 결제할 때 조금 가슴이 철렁했다. 하지만 예전에 한국 살 때 테트 드 무안 치즈 한 통을 10만원 넘게 주고 샀던 것을 생각하면 그냥 비슷한 수준이다.
 
확실히 크리스마스 연휴 끝물이라 그런지 공항에 사람이 많았다. 특히 아이들 데리고 여행 온 가족이 많아 보였다. 뒤에 줄 선 중국인들이 내가 중국어 못하는 줄 알고 (맞음) 한국이 어쩌고 저쩌고 얘기하는데 드문드문 들리는 아는 단어들이 귀찮아 그냥 귀를 닫았다.
 
닌텐도로 데이브 더 다이버 게임을 정신없이 하느라 비행기에서 지루하지 않았다. 이럴 때마다 내가 너무 초딩같다. 여기서 더 나이 들면 진짜 공항에서 이렇게 철딱서니 없어 보이는 모양새로..... 게임을 할 수 있을지 잠깐 생각했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침대에 엎어졌는데 차문 안 잠겼다고 어플에 알림이 왔다. 진짜 많이 피곤했나보다. 주차장에 내려가 문 잠그고, 일어난 김에 빨래도 돌리고 짐가방도 정리했다. 저번에 산 팽이버섯을 잘라 넣어 김치볶음밥을 하고 계란후라이 곁들여 먹으며 고려거란전쟁을 봤다.
 
일찍 누웠는데 윗집 또 쿵쾅거리는 건 이제 예삿일이고, 게임하다가 갑자기 세탁기 돌아가던 소리가 뚝 멈춰서 보니까 오..... 밖이 캄캄한 것이 정전이었다. 냉장고 걱정이 되었지만 겨울이라서 다행이란 생각도 들었다. 한 시간 정도 뒤에 다시 전기가 들어왔다. 나 없는 동안 몇 번이나 정전이 됐을지 모르겠다. 집 오래 비우는 것도 무서운 일이다.
 
 
 
 
2023.12.27. 수요일
부다페스트, 맑음
 
아침에 차 끌고 출근하는데 주차장에 방화벽이 내려와 있어 미로처럼 헤맸다. 정전의 여파일까.
 
오랜만에 회사 복귀하니 이해 안 되는 사람가 일...들이.. 또 많지만 이젠 그러려니 한다. 햇빛이 또 숨이 막히게 들어왔다. 무슨 생각이면 이런 방향에 사무실을 온통 통창으로 뚫어 지었을까.
 
아침에 오자마자 아웃룩 캘린더, 아이클라우드 캘린더를 뒤지며 오늘 정말 아무 스케줄이 없는지 재차 확인했다. 좀 쉬고 싶어서. 내일은 또 저녁에 뭐가 있다. 바이올린 수업이 오늘이었는데 선생님도 깜빡했다고 연락이 왔다. 오늘은 정말 아무 것도 안 하기로 한 날이니까 금요일에 가기로 했다.
 
점심을 마마스 집밥에 가서 백반으로 먹었다. 들깨된장국, 고등어조림 이런 게 나왔고 아주 맛있었다. 여기서 예전에 부대찌개 먹은 게 정말 한국보다 더 맛있어서 기억이 남았는데 더 가까운 데로 이전도 하고 너무 좋다. 너무 좋아하니까 부장님이 창피하니 좀 덜하라고 해서... 조금 슬펐다.
 
 
 
 
2023.12.28. 목요일
부다페스트, 맑음
 
점심은 또 마마스 집밥에 갔다. 오늘은 닭볶음탕이 나왔다. 이것보다 두부부침을 더 많이 먹었다. 아참 저번에 사다둔 두부도 빨리 먹어야 하는데.
 
저녁에 회사 앞 마사지샵에 갔다. 확실히 예약 잡기가 힘들어 많아봐야 한 달에 두 번 가니 그때마다 하는 얘기같은 게 많이 바뀐다. 내가 얼마나 변해가고 있는지 뭐에 관심 갖는지 볼 수 있는 마일스톤같다.
 
집에 와서 일찍 누웠는데 아.... 또 쿵쿵거리는 소리에 깼다. 이번에는 발자국 소리뿐만 아니라 뭘 자꾸 던지는 소리가 났다. 윗집 맞겠지만 누굴까. 정말 갑자기 이게 무슨 일일까. 그때 달갑지 않은 내용의 메일이 왔다. 아웃룩을 핸드폰에서 삭제할까 싶다가도 아침에 특히 정신없어하는 난데 출근하자마자 보는 게 더 나쁠 것도 같고. 아무튼 새로 온 직원 분의 거주증 관련 심각한 내용이어서 겸사겸사 잠을 설쳤다. 이민국 얘기는 아직도 치가 떨린다. 내가 겪은 일은 아무 것도 아니라는 듯이 점점 도가 지나치다. 아니면 우리 회사가 뭔가 찍혔든가.
 
 
 
 
2023.12.29. 금요일
부다페스트, 안개, 이후 맑음
 
결국 잠을 완전히 설치고 세 시간밖에 못 잔 채로 아침부터 여기저기 전화를 걸었다. 대사관에도 전화를 해 봤고 당연한 말이지만 큰 도움은 받을 수 없었다. 우리 회사같은 일이 한둘이 아닌 듯 친절하면서도 매너리즘에 빠진 투였다. 결국 우리가 해 볼 수 있는 건 많이 없구나. 어찌저찌 다음 주까지 기다려 보기로 했다.
 
점심에 Gyugyi's bistro에 가서 점심을 먹었다. 하나씩 하나씩 트라우마처럼 남는 기억의 장소가 원만하고 평범한 기억들로 덮이고 지워진다. 다행이란 생각이 든다. 어서 2023년이 끝났으면 좋겠다. 시간 같은 거, 신년 같은 거 인위적 나눔에 불과하지만, 그래도 꼭 한 번씩 리셋하는 듯한 기분은 환영이다.
 


저녁에 바이올린 수업을 갔다. 선생님은 굉장히... 독특하다. 아직 활 한 번 잡아보지 않았다. 프렌즈에서 피비가 조이에게 기타를 가르쳐 줄 때 기타를 절대 만지면 안 된다고 했던 게 가끔 생각나서 혼자 웃음이 나온다. 다음 시간에는 악보 공책과 코드 책을 꼭 사오라고 하시는데, 며칠 안에 그것도 이 연말에 어디 가서 구해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
 
어제 잠 설친 것 때문에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쿵쾅 소리가 시작되자마자 윗집으로 올라갔다. 초인종을 여러 번 눌렀는데 나오질 않았다. 없는 척 하는 걸까 아니면 정말... 윗집이 아닌 걸까. 옆집이라기엔 너무나 내 머리 바로 위에서 쿵쿵 하면서 울리는데. 윗집이 아니라면 정말 미궁이다.
 
집에 와서 비빔면을 먹으며 심즈 영상을 봤다. 게임 영상 정말 안 보는데 이상하게 심즈만큼은 내가 하는 것보다 남이 하는 것 구경하는 게 더 재밌다. 보다보면 하고 싶어서 오랜만에 설치해도... 하루도 안 가 질리고. 반복이다. 나도 누가 실시간으로 같이 봐주고 웃어주고 하면 신나서 하려나. 베르가모에서 사온 치즈를 얇게 잘라 와인과 함께 먹으며 보다가 잠들었다. 깜빡 정도가 아니라 아주 푹. 악몽을 꿨다. 눈 뜨니 새벽 다섯시라 얼른 씻고 다시 침대에 누워 잤다.
 
 
 
 
2023.12.30. 토요일
부다페스트, 안개, 이후 맑음
 
RMC 클리닉에 진드기 주사 맞으러 가기로 한 날이다. 전날 거실에서 불편하게 자서 그런가, 요 며칠 잠을 못 자 그런가 눈 뜨니 10시였다. 예약 시간을 오후 1시로 미루고 12시까지 잤다.
 
진드기 주사는 이번엔 3층에 올라가 접수하고 바로 맞았다. 두 번째 주사를 맞으러 한 달 뒤 또 오라고 했다. 왜 그런지 의사가 tick shot! 하면서 웃었다. 겨울에 맞는 게 우스워서 그런가 아니면 그냥 이 자체가 재밌나. 나도 사실 이럴 가치가 있는지 모르겠지만, 올해 이유없이 열나고 했던 게 혹시 진드기인가 싶어서 안 맞을 수가 없다. 전에 갔던 스시집에 갔는데 점심 메뉴가 아닌 일반 메뉴는 몹시 비싸고 (우동, 초밥 세 개에 8500포린트) 보기엔 아주 품질 좋은 것같은 초밥은 무슨 처리를 한 건지 약간 생강 비슷한 맛이 많이 났다.
 

올해 한 번도 영화관 가서 영화를 본 적이 없고 집에 가면 심심할 것 같아서 웡카 영화를 원어로 틀어주는 곳을 찾았다. 얼마전 지나갔던 Allee에서 웡카 오리지널을 하고 있었다. 이것도 할 말이 많은데... 도대체 왜, 왜, 왜 죄다 더빙을 해가지고 이렇게 찾아서 가야 하는지 모르겠다. 온라인 예약하다보니 자리가 앞에서 두 번째줄 사이드밖에 없어 우선 예매하고 창구에 가서 뒷 줄 좋은 자리로 바꾸었다. 


팝콘은 큰 걸로 시켰고 생각보다 너무 커서 먹다가 반은 버렸다. 영화에서 비중 있고 웃긴 캐릭터가 아이리시인지 스코티시인지 아무튼 알아듣기 어려운 영어를 써서 30%는 못 알아들은 것 같다. 그리고 옆자리에 앉은 헝가리인 두 명이 (도대체..... 너넨 왜 헝가리어 더빙/자막 놔두고 원어 영화를 보는데..?) 진짜 영화 중반까지 내내 떠들어대서 문화 충격을 받았다. 저번에 루도비코 에이나우디 콘서트에서 팝콘도 먹고 와인도 마실 수 있는 분위기라 놀랐는데, 유럽은 관람 문화가 소음과 취식에 관대한 모양이다. 오페라하우스는 그야말로 시체관극인데 말이다. 아무튼 속삭이는 소리도 아니고 그냥 대놓고 떠드는 건 정말 문화 충격이었다. 쥐어짜듯 말하는 특유의 헝가리어 발성도, 여러번 반복해서 이겐이겐이겐 이러는 것도 더 얄밉게 들렸다.
 
영화를 보든 말든 주차비 쌩으로 다 내야하는 곳인듯 하지만 멀리 내려왔는데 그냥 가기 아쉬워 괜히 여기저기 돌아다녔다. 버블티를 사먹는 중에 어떤 헝가리인 여자가 무슨 내 일행처럼 바로 옆에 바짝 붙어서서 내가 주문하는 걸 구경하더니, 똑같은 걸 시켰다. 영화 보는 내내 헝가리인의 매너에 질리기도 했고, 일단 그 사람 차림새나 표정, 전반적인 분위기가 너무 크리피했고, 이래저래 기분이 나빴다. 종이빨대가 안 꽂아져 여러번 시도하다가 또 옷에 엎었다. 웃긴 건 또 그 옷이다.... 아크네 풀오버...... 어차피 저번에 커피 흘리고, 아크릴 물감 묻고 난리가 나 이미 포기한 옷. 너무 구박하는 것 같아 좀 미안하지만.
 
지하에서 우연히 꽃집을 발견하고 드디어 부사장님 방에 놓을 화분을 샀다. 내일은 절대 회사 근처에 얼씬도 안 하리라 마음 먹었기에 밤이 늦었지만 후다닥 사무실에 가서 놓고 왔다. 저녁 7시쯤 돌아온 집은 절간처럼 조용하다.
 

2023.12.31. 일요일
부다페스트, 맑음



한 시에 두 시간짜리 마사지를 예약해서 다녀왔다. 일하시는 모든 분들이 대체적으로 악력이 정말 세서 그야말로 악 소리 나오는 tui professional massage. 가끔 가면 좋다.

리들이 오후 네 시까지 하기에 통삼겹을 사왔다.


김치랑 구워 먹는 건 이제 질리고.. 고추장 사다놓고 한 번밖에 안 쓴 게 생각나 에어프라이어도 있겠다, 고추장삼겹살을 했다. 양념장을 쓸 게 많이 없어 걱정했는데 정말 생각보다 너무 맛있어서 놀랐다.

11시도 되기 전부터 잠이 쏟아졌다. 그래도 어찌저찌 하다보니 자정까지 깨어있었다. 이웃집에서 파티를 하는지 꿍꿍거리는 음악이 들려왔다. 계속 폭죽 소리도 들렸다.

이런저런 일이 많았던 2023년이 드디어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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