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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중일기 037 (20231204~20231210) 본문

일상, 삶/매일 비장하게 나라 구하는, 난중일기

난중일기 037 (20231204~20231210)

여해® 2023. 12. 11. 2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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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2.04. 월요일
부다페스트, 맑음
 
햇빛이 강한 아침이다. 사무실 커피기계가 20분을 기다려 물을 뺐는데 석회청소를 해달라며 아예 파업해버렸다. 그래.. 화끈하게 뻗는 네가 나보다 낫다. 제대로 된 커피를 못 마심+미친 햇빛 때문에 아침은 집중하기가 어려웠다. 24s에서 지른 게 벌써 왔다. 니트는 탄탄해보여서 마음에 들고 디퓨저는 생각보다 많이 크다. 기대한 것과는 크기부터가 달라서 비닐 포장도 안 뜯었다. 
 
점심에 테스코에 가서 밥을 먹고 왔다. 불편한 마주침이 없을 것을 확신하고 먹으니 맛도 있고 한 그릇을 싹 비웠다. 사실 나는 내가 밥을 잘 못 먹는 게 그렇게 걱정되지는 않는다. 오히려 토요일부터 잘 먹고 잘 자니 옷이 또 작아지는 느낌이 불편하다. 저번 주 수요일에 산 장미가 벌써 시들었다. 테스코에 간 김에 살펴봤는데 푸르딩딩한 흰색 장미에 크리스마스라고 시덥잖은 은색 나뭇가지 데코한 것이 영 마음에 안 들어 내려두고 왔다. 내일 다시 가 봐야지.

예전 사무실 건물에 가서 오랜만에 커피를 사마셨다. 그때는 일에 치여도 까르르 잘만 웃고 살았다. 아주 오랜 옛날처럼 느껴졌지만 마음이 아프진 않았다. 어떻게 돌아다녀도 신경 쓸 일이 없으니 편안하고 자유롭다. 주변을 두리번거리지 않아도 되고, 좋아하는 길을 회피하지 않아도 되고, 타이밍을 생각하지 않아도 된다. 얼마만인가, 이런 자유. 좋든 싫든 고자극의 일상이 7월부터였으니... 이젠 편안히 숨 좀 쉬고 살고 싶다.
 
비엔나에서 먹었던 자허 토르테가 요즘 왜 이렇게 먹고싶은지 모르겠다. 하루이틀 먹고싶다가 마는 정도면 몰라도 저번에 비엔나 다녀온 후로 내내 그러는 것을 보니 진짜 먹고 싶은가보다. 단맛 없는 묵직한 동물성 크림에 푹 찍어서 한입만 먹고 싶다. 그렇게 파는 곳을 부다페스트에서는 못 찾겠다. 12월은 주말이 다 차 있어서 1월에나 갈 수 있다. 여러모로 12월은 어서 지나갔으면 하는 달이다.
 
하도 아무 계획없이 여행 다니는 게 버릇이 되어서 이번 주 런던 여행도 그냥 가려고 했지만, 런던은 비쉥겐, 비EU 국가라고 좀 더 흔히 갈 수 없는 느낌이라서 (전혀 그렇지 않음) 철저히 준비해야 할 것 같다. 그런데 할 게 너무 너무 너무 많으니 오히려 뭘 해야할지 모르겠다.

집에서 처음으로 하이쭝을 틀었다. 웃풍이 너무 심해 몸이 바르르 떨린다. 기온 자체는 그리 낮지 않은데 왜 이렇게 추운지.




2023.12.04. 화요일
부다페스트, 흐림
 
아침에 나오니 또 눈이 쌓여 있었다. 운전하는 길은 평소와 별다를 게 없어 다행히 지각은 안 했다.
 

아침부터 신입한테 아이엘츠 얘기로 징징거리다가 한심해서 현타가 왔다. 농담 아니고 진짜로 열 살이나 어린데 내가 이 친구 붙들고 무슨 헛소릴 하는 건지. 그냥 눈 딱 감고 2024년 1월에는 시험 보기로 했다. 내가 무슨 수준인지는 알아야 대학원을 찾아보든, 뭘 하든 마음이 깔끔할 것 같다.
 
점심 먹기 전부터 몸에 오한이 들기 시작하더니 종합감기약을 먹어도 몸이 계속 춥다. 오늘부터 진짜 공부하려고 했는데 이게 무슨 일인지 모르겠다. 그래도 더 미루고 싶지 않아 챕터 1만 읽어보며 노트필기를 시작했다. 오랜만에 공부하려니 기분이 이상하고, 학생 때는 어떻게 살았는지 까마득하다. 공부는 거의 못하고 투자 계좌를 리밸런싱 했다. 그래도 40분은 공부한 거 같다.
 
집에 와서 대충 밥을 먹고 듀오링고로 독일어를 공부하다가 잠들었다. 오랜만에 켜본 듀오링고는, 기능을 많이 업그레이드한 대신 귀찮은 광고가 늘었다. 그래도 할만해서 30분은 게임하듯이 한 것 같다. Meine Mutter, mein Vater..
 
 
 
 

2023.12.05. 수요일
부다페스트, 눈
 
밤 사이 또 눈이 많이 왔다. 주차장에 눈이 쌓여있었다. 출근하니 책상에는 온갖 간식거리가 쌓여있고. 오늘이 산타데이라서 서로 초콜렛을 주고받는단다. 우리나라 빼빼로데이처럼 약간 야매(?) 데이 같은 느낌이 든다. 
 
위즈에어에서 산타딜 한다고 메일이 와서 둘러보다가 예전부터 가고 싶었던 이집트 샤름 엘 셰이크로 항공권을 끊었다. 리조트는 몇 군데 보다가 올인클+스윔업 룸이 저렴한 곳으로 했다.

6시까지 일을 마치고 공부를 시작했다. 한국에 있는 늦게 자는 친구랑 수다 떠느라 완전히 집중하는 데엔 한 시간이 걸렸지만, 이후로는 두 시간이나 공부를 했다. 30분도 집중 못하던 것에 비하면 진짜 장족의 발전이긴 한데, 사실 기출문제 풀어보니 너무 많이 틀려 조급해져 그렇다.

학위용으로 듣던 학점은행제도 2024년 1학기 총 21학점 신청했다. 그리고 2학기에 또 21학점 들으면 심리학 학사 학위가 나온다. 이것으로 뭘 할지 아직 구체적으로 모르겠지만, 하고 싶다고 무한정 할 수 있는 게 아닌 일들부터 (한 학기에 24학점만 들을 수 있음) 빠르게 처리하기로 하였다.
 

 
아홉 시쯤 나오니 눈이 쏟아지고 있었다. 눈송이가 굵지는 않고 가루같은 눈이 촘촘하게 내렸다. 독일 폭설이 여기로 옮겨왔나. 운전 어려울 것은 생각도 안 하고 눈 밟는 느낌이 좋아 신이 났다. 집 가는데 30분이나 걸렸다.
 
피자가 먹고 싶어 주문했는데 에어프라이어에 돌려도 너무 맛없었다. 와인도 피노 누아인데 어마어마하게 달았다. 얘는 뱅쇼 재료로 써야겠다. 피자는 원래 시켜먹던 곳에서 시켜야겠다.
 
자기 전에 듀오링고로 30분 독일어 공부했다. Ich bin sehr nett........ du bist klug.. der Elefant...... die Katze...
 
내가 얼마나 할 게 없으면 공부를 다 한다고 말하니 가족들이 놀란다. 하긴 나 자신도 내가 고등학생 때 이후로 공부하는 걸 본 적이 없다. 
 
 
 
 
 
2023.12.07. 목요일
부다페스트, 눈
 
어제부터 쉬지 않고 눈이 왔는가. 창문을 보니 설국이다. 주차장에 내려가다 그냥 택시를 타고 회사에 왔다. 빨리 헌터 부츠 왔으면 좋겠다. 지금 유일하게 있는 신발이 한국에서 산 스니커즈인데 불안해서 조금도 걸을 수가 없다.
 
아침에 조금 예민했다. 말하면서도 내 말투가 날 서있는 게 느껴져서 창피했다. 잘 먹고 잘 자놓고 왜 이러는가. 안 하던 공부를 일과에 추가해서 그런 것 같다. 아니면 그냥 반복되는 이상한 소리에 지쳤든지.
 
한국 소식이긴 하지만 여기저기 독감 이야기가 들리고, 나는 다른 건 몰라도 호흡기 쪽이 안 좋아서 열심히 독감 예방주사 맞을 곳을 알아보다가 RMC에 예약했다.
 
그치나 싶었던 눈은 저녁까지 계속 내렸다. 오늘은 원래 메리어트 스카이바 가기로 한 날인데 부사장님이 못 나오셔서 취소되었다.


신입이랑 둘이서 진갈비에 가서 닭갈비를 먹고 메리어트 바에 갔다.


오랜만에 아이리시 커피를 마셨다. 친구랑 자주 가던 곳에서 친구랑 자주 마시던 음료를 마시니까 그리워졌다. 한국 간 지 벌써 9개월이 되었는데 가끔 생각난다. 생각해보면 나한테 좋은 기억만 있는 유일한 식당이 메리어트 스카이 바다.
 
마사지를 받을까 하다가 그냥 집에 갔다. 내일 런던 갈 생각에 마음이 무겁다. 아무 것도 안 알아봤고, 식당도 예약 안 했고, 뭘 할지도 모른다. 쇼핑이나 해야지.
 
누워서 듀오링고로 독일어 공부를 40분간 했다. der, die에 이어 das가 나오기 시작했다. 
 
 
 
2023.12.08. 금요일
런던, 비
 
투자에 다시 관심을 가지게 된지 일주일, 이때가 제일 재밌다. 150일간 물려있었던 소액의 엔화도 환율이 갑자기 올라 오늘 많이 팔렸다. 수익률이 꽤 괜찮아서 (150일 동안 1.9%) 시드를 조금 더 올려볼까 생각 중이다.
 
점심에 RMC 클리닉에 가서 독감 백신을 맞고 왔다. 주사 맞는 것 자체는 10분도 안 기다렸는데 운전이 진짜.......... 왔다갔다 하는데 한시간 이십분이 걸렸다. 난 다신 부다  지역에 차 끌고 안 갈 것 같다. 팔이 조금 뻐근하고 졸린 것 외에 주사 부작용은 딱히 없는 듯 하다.
 
런던에서 뭐할지 찾아보다가 내셔널갤러리 도슨트 투어나 하자 싶어서 여기저기 신청을 넣는데, 아무래도 바로 전날이라 예약이 어려웠다. 일주일이라도 먼저 알아봤으면 이런 일은 없었을 텐데 왜 항상 목전에 닥쳐야 하는 걸까. 그래도 겨우 한 군데 들어갈 수 있었다.
 
일기예보를 보니 런던답게 내일, 모레 다 비가 오는 모양이다. 마침 오늘 배송 온 헌터를 신고 갈까 하다가 괜히 여행 갔다가 발 아프고 난리날까봐 그만두었다.

비자 확인한다고 보딩패스는 체크인 카운터에서 받고 어쩌고 했는데도 시간이 많이 남아 스포츠바에서 햄버거와 맥주를 먹었다. 비행기는 지연이 한 시간이나 되어 스탠스테드 공항 도착했을 땐 이미 급행열차는 막차가 끊긴 시간이었다. 정말 많이 헤맸다.

어찌저찌 숙소 들어오니 새벽 네시였다.



2023.12.09. 토요일
런던, 비오다 맑고 흐림

런던은 나랑 안 맞는다. 아니. 그냥 대도시 자체가 난 이제 안 될듯. 20대일 땐 호스텔 가서 잠도 제대로 못 자고 하면서 어떻게 그렇게 많이 다녔는지 예전 기억이 거짓말같다. 거기에 윈저 캐슬까지 갔던 거 같은데 정말 대단하다. 오늘은 중간 중간 힘들어서 얼마나 여러 번 주저앉았는지 모른다.

아무리 억양 차이가 있다지만 영어 못하는 내 자신에게 너무 충격이 크다. 카페에서 드립 커피 품절이랑 말도 못알아 들었고, 앉아서 먹고 가냐는 말도 못 알아듣고 질문인지도 몰라 바보같이 웃고 있었다. 아이엘츠 생각하면 머리가 아프다.

 

런던 여행기는 따로 작성 예정.

 

 

 

 

2023.12.10. 일요일

부다페스트, 맑음

 

스탠스테드에서 4시간, 부다페스트에서 1시간. 공항에서 깨어있는 시간 중 절반 이상을 보내니까 이제 좀 결심이 선다. 주말 짧게 다녀오는 여행은 당분간 그만 하자고.

 

꿈에 그리던(?) 마사지를 받고 집에 오는 길에 인도 커리를 포장했다. 절반만 먹고 절반은 회사 가서 먹으려고 챙겨두었다.

 

윗집은 여전히... 여전히 쿵쾅대고 있지만, 고려거란전쟁 이번 주 회차를 몰아보고 너무 피곤해서 그냥 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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