옆집
난중일기 142 (20260127-20260201) 본문
2026.01.27. 화요일
인천->에쉬본, 눈
독일 도착하니 진눈깨비가 내렸다. 짐 찾는 곳에서 이상한 토사물 냄새가 나고 화물칸에 실려온 강아지들이 주인 찾느라 불쌍하게 계속 짖었다. 여러모로 난장판이라 빨리 벗어나고 싶었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나오질 않았다. 알고 보니 큰짐으로 부친 건 bulk baggage claim에 나오는 것이었다. 그제야 무게를 보니 40kg. 언제 이렇게 많이 실었지…
어려보이는 중국인 학생 한 명이 카드가 안 된다며 카트 뺄 돈 2유로만 빌려달라고 한국돈으로 돌려주겠다고 번역기를 들고 말하길래 그냥 해주었다. 그 학생이 도와주어 내 짐도 겨우겨우 카트에 실었다.
도착층에서 출국층으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를 찾을 기운도 정신도 없어서 바로 택시를 탔다. 우버보다 훨씬 비싸서 평소에는 잘 안 타는 것이다. 가는 내내 속이 울렁거리고 머리가 아파서 힘들었다. 짐을 다 올려두지 못하고 창고에 두었다가 냉동식품만 꺼내 냉동고에 욱여넣었다. 씻고 누워 열을 재보니 39도. 한국이면 별로 안 무서웠겠지만 독일은… 진심으로 공포스러웠다. 다행히 해열제 먹고 열이 떨어져서 땀에 절어 푹 잤다.
2026.01.28. 수요일
에쉬본, 눈
아침에 집 마당에서 낯선 사람을 봤다. 열쇠를 들고 있는 것을 보니 세입자 중 누군가와 아는 사람인 듯하다.
오랜만에 출근한 회사는 그냥 며칠밖에 안 지난 느낌이었다. 없는 동안 쌓인 일들 볼 게 산더미지만, 나는 이제 내가 할 수 있는 데까지만 하기로 했다. 뭐가 어떻게 되더라도 난 나를 위해 힘쓰기로. 주말에 일하는 한이 있어도, 마감당일이 아닌 이상 매일 회사에는 최대 19시까지만 앉아있기로.
열이 계속 나서 16시에 퇴근했다.
짐을 세 번에 나누어 다 옮기고 18시부터 누워서 잤다.
2026.01.29. 목요일
에쉬본, 눈
속이 계속 불편해서 약을 먹었다. 밤새 눈이 내리더니 아침까지 내리고 있었다.
3주 비운 사이 회사에 별일이 다 있었다. 안타까운 소식도 있었고. 나 혼자 최선을 다해봤자, 업무 분장이며 일이며 배려하고 잘하려 해봤자 소용없다는 걸 깨달았다. 그런데 그런 깨달음 속에 아무 감정이 없다. 정말 그냥 나한테 이젠 이런 거 저런 거 회사에서의 일이 감정적으로 중요하지가 않다. 갈 때 올 때 크게 아팠더니 깨달아지는 바가 있었던 걸까.
출장 보고 정리를 하고, 아프리카 출장 품의를 올리고 준비하고 집에 왔다. 에스반을 한참 기다려 타자마자 회사에 열쇠… 그놈의 열쇠를 두고 온 것을 깨달았다.
공동현관 문만 열면 집에 들어갈 수 있어서 다행히 아랫집 남자를 만나 집에 들어왔다. 며칠째 눈이 제법 굵게 내려서 눈 청소를 어떻게 할지, 나 없는 동안 눈이 많이 왔다던데 아랫집 남자만 해온 것이 미안해서 상황을 말하고 도구가 있는 곳, 청소하는 법을 배웠다.
집에서 독일어 공부를 했다. 왕초보라고 해서 듣는데 너무 다 아는 내용이다. 그렇다고 조금만 레벨을 올리면 또 하나도 모른다. 아무래도 어휘 문제일까. 지루해도 참고 해야할까.
2026.01.30. 금요일
에쉬본, 눈

출근길에 20센트를 주웠다. 주머니에 넣었다가 점심에 갔던 베트남 음식점에서 두꺼비 모형 안에 동전을 넣어두었길래 얹어주었다.
월말이 다가올수록 여기저기서 쪼아대는 일이 많다. 내가 adhd인 건가 아니면 일이 워낙에 많은 건가. 남들은 어떻게 이 많은 일을 쳐내고 있는 건가 궁금할 정도이다.
무슨 일이 있어도 19시에는 꼭 퇴근하겠다는 스스로와의 약속을 오늘 10분 어겼다. 뭐 이정도면 괜찮다. 문제는 집에 와서 아무것도 하고싶지 않다는 것이다. 그래도 오늘 내일 먹을 것은 있어야겠어서 리들에서 닭다리, 채소를 사다가 오랜만에 닭곰탕을 했다. 헝가리 있을 때 신입이랑 같이 여러번 먹었던 것인데 혼자 먹어도 그때 그 맛이 나기는 했다. 아파서 먹는 건지 맛있어서 먹는 건지 분간이 안 될 정도로 많이도 해서 먹었다.
독일어 공부가 너무 하기 싫어 밍기적거리다가 겨우 오늘치를 했다. 이틀만에 이래서 정말 큰일이다.
2026.01.31. 토요일
에쉬본, 흐림
새벽에 알림이 엄청 와서 깨서 보니 이더리움 매도 매수 알림이었다. 뭔 일이 있던 건지 자동 매수매도 걸어둔 것이 1분 내에 수십번 매도 매수 되어있었다. 요즘 코인 성적이 영 좋지 않다.
아침까지 밍기적거리며 누워있다가 (원래는 회사에서 밀린 일도 하고 독일어 공부도 하려고 했다..) 눈을 떠보니 오후 세시.

친구와 통화를 하면서 말차 케이크 재료를 사러 다시 리들에 갔다. 버섯도 사고 요즘 철에 보기 힘든 복숭아와 자두도 샀다.

집에 돌아와 케익을 구웠다. 케익 틀이 없어 실리콘 용기에 조금 만들었는데 보관이 쉽고 뚜껑도 있어서 이게 더 나은 것 같다. 케익 식는 동안 독일어 공부를 했다.
유튜브에서 어떤 교수의 강의를 보다가 누구든 일이나 공부는 하기 싫고 첫 발을 떼는 게 어렵다는 내용이 나오길래 유심히 봤다. 내 자신한테 ”이것만 드셔봐“, ”한 번만 해봐봐“, ”책만 펼쳐봐“ 이렇게 살살 구슬러가며 속여가며 하면 된다는데, 이렇게까지 뭘 시키려는 내 의지는 어디서 나오는 걸까? 내일은 정말 ”샤워라도 해봐“, ”옷이라도 입어봐“ 살살 달래가면서 꼭 재고실사 보고서는 마치고 와야겠다. 오늘 다녀왔으면 내일이 얼마나 달콤했을까.
2026.02.01. 일요일
에쉬본, 흐림
어제 그렇게 많이 잤는데도 오늘도 6시간을 꼬박 자고 7시에 일어났다. 환기를 하느라 창문을 열다 오랜만에 옆집 할아버지와 눈이 마주쳤다.
월말 월초는 내 나름의 투자 결산을 하느라 바쁘다. 엄마 시드와 내 시드를 비교해보면, 그리고 같은 방법으로 운용해도 얼마나 수익이 차이 나는지를 보면.. 조금만 더 절약해서 목돈을 많이 모아둘걸 하는 후회가 많이 된다. 내가 이 재미를 10년만 일찍 붙였더라면.
어제 사온 버섯으로 아침에 버섯스프를 했는데 왜인지 졸여도 졸여도 스프랑 건더기가 따로 놀고 묽어서 조금 망했다. 세상 쉬운 게 스프인데… 스프 망한 건 처음이다. 목욕하면서 듀오링고를 거의 한시간 했다.
오후에 회사 나가서 책상을 내렸다가 건너편에 생각지도 못하게 사람이 앉아있어서 거의 비명을 질렀다. 빨리 서재를 잘 꾸며서 집에서 일해야겠다.. 영업팀에 다른 분도 나와있어서 마치고 저녁을 먹기로 했다. 재고실사 레포트 다 하고 가려고 했는데 사유 파악 안 된 게 많아서… (하…) 일단 접었다.

문 연 곳이 붐치킨뿐이라 치킨과 닭칼국수를 먹었다. 집에 돌아와 독일어 인강을 하루치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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