옆집
난중일기 126 (20250922-202509228) 본문
2025.09.22. 월요일
비, 에쉬본
반가운 소식에 뒤늦은 액땜이라도 있던 걸까. 비오는 아침에 허둥지둥했다. 열쇠를 잃어버린 것이다. 집이야 그렇다 치고 회사 서랍을 열어야 하는데, 회사에는 딱 내 서랍 열쇠만 스페어가 없다고 하고.. 혹시나 하고 집에 돌아가 보았는데 복도에 있었다. 정말 다행이다.
저녁에는 일찍 가려다가, 집에 가신 조장님 대신해서 까마득히 높은 분이랑 식사를 하게 되었다. 분위기 다 좋고 재밌고 그랬는데 한심하게도 나와서 넘어져버렸다. 내가 아무리 원래 잘 넘어진다고 설명해봤자 나는 그냥 취해서 넘어진 사람이 되었다. 이렇게 액땜했으면 다행인 거고. 그렇지만 너무 너무 창피해서 아픔은 잊힐 정도였다.
2025.09.23. 화요일
에쉬본, 맑음
새벽 세시에 눈을 떴다. 넘어진 기억에 회사에 어떻게 나가나 머리를 쥐어 뜯었다. 제발 모른 척 해주길… 빌며 겨우 나왔는데 보자마자 “무릎 괜찮아요?” 라고 물어봐서 모두가 알게 되었다.
점심에 중화루 가서 짬뽕을 먹었다. 영상 통화로만 보던 분이 출장 와서 실제로 뵈니 훨씬 좋았다. 입사한지 얼마 안 되었다고 하자 엄청 놀라셔서 기분도 좋았다.
일하다가 자정 가까워서 퇴근했다. 오늘만큼은 도무지 걸어갈 수가 없어 우버를 탔다.
2025.09.24. 수요일
에쉬본, 비
이제 겉옷을 입지 않으면 안 되는 날씨가 되었다. 체력이 모자라 허덕이며 왔다. 점심에는 부뚜막에 가서 감자탕을 먹었다. 회사는.. 하루하루 사고가 안 터지는 날이 없다. 미칠 거 같다. 지나고보면 기억도 안 날 별 것 아닌 일일텐데도.
저녁에 라멘집에서 과장님이랑 만나기로 했는데 비가 미친듯이 쏟아졌다. 에스반은 계속 취소되고 라멘은커녕 집에나 갈 수 있을까 싶었는데, 다행히 7시 40분 도착하는 에스반은 와서 늦게 만났다.

녹차아이스크림이 맛있었다.
라멘을 먹고 집에 와서 겨우 세수만 하고 누웠다. 몇 시간 동안 쉬지 않고 눈물이 났다.
2025.09.25. 목요일
에쉬본, 비
시차적응보다 더 힘들게 아침에 도무지 일어날 수가 없었다. 정말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미뤄가며 쪽잠을 자고 집에서 나와 회사까지 걸어왔다. 내일까지 보내야 하는 자료 외에는 아침에 거의 아무것도 못해서, 점심시간을 쪼개가며 여행경비 인수인계를 했다.
헝가리 인보이스 문제 때문에 머리가 터질 거 같다. 답은 아는데 시스템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모르니.. 진짜 소리 지르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느라 힘들었다.
개인연금 서류가 왔다. 오지 않을 것 같던 10월이 코앞이다.
내가 안쓰러웠는지 그룹장님이 영업팀이랑 밥 먹으라고 해서 갔다가 생각보다 길어졌다. 즐겁게 웃고 떠들고, 누구한테 내 얘길 들었는지 몰라도 헝가리에서 여기 온 나에 대한 소문이 있다 해서 남몰래 불안에 떨기도 하고. 회사에 돌아와 앉아있는데 내 자신이 너무나 열등생 같이 느껴졌다. 매일매일 진도 못 따라가서 나머지 공부하는 그런 애.
왜 그렇게 퇴근이 늦냐고, 무슨 일이 그렇게 많냐는 걱정에도 위축이 되고 눈치가 보이고, 가끔은 퇴근 지문을 먼저 찍기도 한다. 야근 수당을 받는 것도 아닌데. 그저 내가 머리가 나쁘고 미련하다는 것을 들키고 싶지 않아서. 메일 검색창에 암호같은 거래처코드가 잔뜩 떠있는 걸 보고 멍해졌다.
나는 뭘 제대로 하고 있는 걸까. 왜 나는 잘하는 것도, 이룬 것도, 손에 쥔 것도 없을까.
2025.09.26. 금요일
에쉬본, 비
아침부터 욕나오게 바빴다.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할지 답이 안 보인다. 회사에 지박령이 몇 있다는데, 그중 하나 추가된 게 나란다. 점심 먹는데 최소한의 대화도 따라잡기 어려울 정도로 뇌가 다 쓰인 기분이 들었다.

저녁에 훠궈를 먹었다. 이번 달 용돈이 벌써 다 떨어져간다.
2025.09.27. 토요일
에쉬본, 맑음
리들에 갔다가 홍합이 있어서 사왔다. 삼겹살도 있고. 횡재한 기분이다. 한인마트에서 쌀을 사왔다.

청하가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맛있게 먹었다.
2025.09.28. 일요일
에쉬본, 비
하루종일 집에만 있었다. 파스타 해먹고 갈비 구워먹고. 회사에 나갈까 생각도 했지만 도무지 그럴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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