옆집
난중일기 119 (20250804-20250810) 본문
2025.08.04. 월요일
에쉬본, 비
아침에 일찍 나가려 했는데 그냥 제시간에 나갔다. 출근길에 가랑비가 내렸다. 귀찮아서 그냥 가려다, 다시 집에 올라가 우산을 챙겨 쓰고 갔다.
오늘은 마감일이라 정신이 없는데, 영업팀에서 sos를 몇 번이나 쳐서 두 배로 정신이 없었다. 웬만하면 입맛을 잃지 않는데 점심이 안 먹힐 정도로 스트레스가 심했다.
밤 11시 가까이 되어서 퇴근하는데… 좀 화가 나기도 하고. 하루가 너무 허무하다.
2025.08.05. 화요일
에쉬본, 맑음
하루라도 가만히 있고 싶다. 누가 날 찾으면 표정관리가 안 된다. 얼마나 정신이 없으면 월세 안 보낸 것도 이제 알았다. 아.
알디에 갔더니 삼겹살이 있어 사왔다. 오븐에 굽는데 한세월이 걸려 밤 늦게 먹었다. 리슬링 하나를 땄는데 술 마시는 내 자신이 질려 와인 반 잔 먹고 내려놨다.
2025.08.06. 수요일
에쉬본, 맑음
드디어 해가 떴다. 드디어라기엔… 금요일부터 28도까지 올라가는 일기예보를 보니 반갑지는 않다. 그래도 빨래는 잘 마르겠구나. 물론 빨래할 시간 없겠지만.
엄마한테 연락이 왔는데 그동안 한국에 두고 온 집 누수 때문에… 아래층이랑 힘들었던 모양이다. 그동안 내가 신경쓸까봐 말을 안 했다고. 금액도 관리도 내게 감당도 안 되는 걸 사가지고 온갖 군데 고생을 시킨다. 진짜 팔아버리고 싶다. 미워. 미워. 사람도 아닌 게 이토록 미울 수가 있다니.
옆팀 직원이 한국에 가면 머리를 할 거라고 뭘 열심히 설명하는데, 알고 보니 옴브레였다. 그럼 옴브레라고 하시지 왜 이렇게 장황하냐 하니 내가 모를 줄 알았댄다. 잘 모르는 것도 사실이지만 이럴 땐 그냥 나이 탓을 하게 된다. 웃으면서 날 무시했으니 3일 동안 상종 안 할 거라고 했다.
오랜만에 후배와 만나서 밥을 먹었다. 이직한 회사에서 잘 지내는 걸 보니 뿌듯하고 대견하고. 초밥을 먹고 커피 한 잔 얻어마시고 숲을 가로질러 집에 걸어왔다.

여기 잘린 나무를 볼 때마다 안타깝고, 밑동에 다시 나는 새싹을 보면 경이롭다. 몇십 년을 키워낸 몸이 잘렸는데. 너는 허무하지도 않니. 나라면 다시 싹을 틔우지 못했을 거야. 하긴 나무에게 무슨 생각이 있을까. 생각이 없는 게 정답인지도.
입욕 소금을 풀어 목욕을 했다. 생각이 많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많고. 그러다보면 회사 일은 어느새 멀고. 하지만 내일은 또 내 옷이 되고 쩍쩍 달라붙어 피부가 되겠지. 오직 그것만을 위해 사는 사람처럼.
2025.08.07. 목요일
에쉬본, 맑음
아침에 갑자기 임원분과 미팅했다. 매번 알만한 것만 물어보셔서 다행이긴 한데… 내가 바보인 걸 빨리 아셔야 될 거 같은데.

점심먹고 비밀장소에 가서 땅을 기며 자라는 나무에 앉아 물멍을 때렸다. 이런 숨구멍이 없으면 하루를 견딜 수가 없다.
성가시지만 머리 안 돌아갈 때 제일 좋은 단순업무를 몇 개 하고, 내일까지 해야 하는 두뇌 풀가동 업무가 너무 하기 싫어서 느적느적(?) 하다가 컵라면 하나 먹고 시작했다가… 맙소사. 무아지경으로 빠져 하다가 11시 넘어 나왔다. 에스반이 끊기는 건 처음 봤다. 게으르고 멍청한 머리 탓으로 야근한 게 창피해 택시는 안 타기로 했다.
보름달이 떴다.
2025.08.08. 금요일
에쉬본, 맑음
점심 10분 먹은 거 빼곤 계속 일했다. 이번엔 자정이 넘었다. 일이 미친듯이 몰려오는데 뭐 하나 속시원히 끝낸 것도 없다. 정말…. 정말.. 못해먹겠다.
2025.08.09. 토요일
에쉬본, 맑음
아침에 빨래를 돌리느라 일찍 일어났다. 집을 청소하다가… 좀 포기했다. 집이 너무 크고 나는 실력도 힘도 없다. DHL이 왔는데 스탠드 조명에 또 전구가 미포함…
장을 보러 가서 또 한가득 양 어깨에 지고 왔다. 덥다. 빨래는 순식간에 말랐다. 바짝 마른 베개 커버랑 수건이 벌써 기대된다.

프푸 시내에 들러 부랴부랴 전구를 샀다. 공항에 가는 길이 초조했다.

저녁에 크리프텔에서 막창을 먹었다.
2025.08.10. 일요일
에쉬본, 맑음
뤼데스하임, 하이델베르크를 끝까지 고민하다가 뤼데스하임으로 가기로 했다. 다음 기차를 타려고 했는데 마침 에스반이 아주 살짝 일찍 도착해서 뛰었다. 괜히 뛴 것이 레기오날이 시장통 찜통이었다. 비스바덴까지 서서 가는데 정말 혼절하고 싶었다.

뤼데스하임에 도착해서 슈니첼을 먹었다. 계란 후라이가 왜 이렇게 맛있는지. 비록 스프라이트가 8.5유로나 하면서 김빠진 것이 나왔지만 좋았다.


케이블카를 타고 풍경을 구경했다. 포도가 알알이 달려있는 게 잘 보였다. 너무 덥지만 또 풍경은 아름답고. 나도 이번에 독일에 와서는 처음으로 국내 여행을 해본 셈이다. 레기오날 왕복 여행 한 번에 차가 너무 간절해졌다. 리즐링 아이스바인을 한 병 시음해 보고 샀다.
저녁에 중앙역으로 돌아와 훠궈를 먹었다. 피곤해서 어디로 뭐가 들어가는지도 모르게 먹었다. 그래도 꽉 채운 하루에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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