옆집
난중일기 116 (20250714-20250720) 본문
2025.07.14. 월요일
에쉬본, 맑음
날씨가 선선하다. 아침에 오랜만에 기분 좋게 출근했다.
퇴근길에 걷는데 바로 폭우가 쏟아졌다. 10분도 안 내린 소나기로 속옷, 양말까지 다 젖었다.
2025.07.15. 화요일
에쉬본, 맑음
점심에 중화루에서 짜장면을 먹었다. 가구 배송이 제멋대로 오늘 온다고 해서 이러는 게 어디있냐고 화를 좀 냈다. 저녁에 훠궈를 먹었다. 회사 얘기를 하는데 번아웃이 너무 심한 걸 느꼈다.
집에 와서 누워 있다가, 예전 일기를 읽어보았다. 천진난만하게 “난 내년쯤엔 독일에 있을까?” 라고 몇 번이나 쓴 것을 보고 내 자신에게 너무 미안해졌다. 나는 왜 원하는 걸 이뤄놓고도 이럴까. 난 나를 왜 이렇게 몰아붙일까. 하루하루 나아지고 있다고 믿고 싶다. 내가 나를 아직 믿을 수 있다고, 그럴 힘이 남았다고 믿고 싶다.
2025.07.16. 수요일
에쉬본, 비
회사 근처에 요정숲같은 곳에 시냇물, 그루터기 하나 남은 장소를 발견했다. 점심에 파니니 같은 거 사들고 가서 먹어도 좋겠다. 비가 엄청 많이 내려서 잠시 팀원들이 다 창문에 붙어서 구경할 정도였다.

집에 가는 길에 건널목에 걸려 서있는데, 무지개가 떠있는 것을 보았다. 좋은 일이 있으려나. 괜히 기대해 본다.
저녁에 일요일에 덜어먹고 남은 태국 볶음밥을 볶아 먹었다.
2025.07.17. 목요일
에쉬본, 맑음
점심에 예전에 면접 보고 고사한 회사 법인장님을 만났다. 그런데 식당에선 팀장님을 마주치고, 카페에선 임원들을 마주쳤다. 다른 의도가 있던 건 아니고 하도 좋은 말씀 해주시고, 당시 너무 너무 어렵게 결정하고 지금 회사를 선택한 만큼 좋은 마음으로 만나 인사한 것인데.
옆팀 동료가 망고젤리를 잔뜩 주고 갔다. 나중에 보니 종류가 다 다른 망고젤리라 웃겼다. 회사 일 파악이 하나씩 될수록, 그동안 칼퇴한 내 여유가 참 무지했다고 느낀다. 내 탓은 더이상 안 하기로 했는데, 솔직히 난 머리가 나쁜 게 맞다. 매일 나머지 공부를 해야지만 겨우 따라갈 수 있는.
일주일 넘도록 외국인청에 카드 픽업도 못하러 가고.. 내일은 꼭 가야지. 일기를 다시 쓰기로 했다. 하루 단 한 줄이라도 좋으니.
타이타닉 주제곡이 뜬금없이 유튜브에 나왔다. 어릴 때는 영어를 못 읽으니까, 아빠가 이걸 한국어로 다 써줘서 엉망진창 발음으로 부르며 외우곤 했는데. 옛날 생각도 나고. 늘 연인의 사랑 얘기라고만 생각하고 들었는데, 이젠 내 자신에게 하는 얘기로 들리기도 한다.
언제였는지 잃어버린 내 자신이 문을 열고 내게 와주면. 그럼 정말 두려울 게 없고, 안전하게 지켜주고, 영원히 그대로 함께할 수 있을 것 같다.
2025.07.18. 금요일
에쉬본, 맑음
일이 계속 밀리고 또 밀려서 내 문제인지 구조적 문제인지 하고 있다. 저녁 식사 가기 전에 와인을 사왔다. 바롤로 와인을 샀다. 석연찮은 일들을 정리해 면담 신청했다. 훨씬 후련해졌다.

고기를 아주 많이 먹었다. 술도… 집에 자정 넘어 돌아왔다.
2025.07.19. 토요일
에쉬본, 흐림
오후에 회사에 가려다가 샴푸도 다 떨어지고, 마트도 가고 싶고, 참치김밥도 먹고 싶어 Hauptwache까지 다녀왔다. 습기 가득한 공기에 금방 갑갑해졌다. 비가 언제 한 번 시원하게 내려줄 것인지.

모모롤에서 김밥 포장해 나오던 길에 어디서 정말 안 마실 수 없는 커피 냄새가 강하게 흘러나와서 홀린듯이 들어갔다. 나중에 커피 기계를 사면 원두는 여기서 사야지.
과장님한테 연락이 와서 내일 통화하기로 했다.
2025.07.20. 일요일
에쉬본, 비
점심에 과장님네와 통화를 하고, 벌써 내년 겨울에 칠레 놀러갈 계획을 세웠다. 막연히 먼 일 같아도, 금방 또 시간은 가겠지.

산책을 하러 나갔다. 안 본 사이에 밀이 누렇게 익었다. 나는 그동안 뭘했지. 그러나 너무 탓하지 않기로 했다.
비가 너무 많이 내려 나무들이 쓰러지고 난리가 났다. 집에 겨우 돌아와 목욕물에 깨끗이 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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