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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중일기 032 (20231031~20231106) 본문

일상, 삶/매일 비장하게 나라 구하는, 난중일기

난중일기 032 (20231031~20231106)

여해® 2023. 11. 8. 0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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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0.31. 화요일
부다페스트, 비
 
아침에 카드 들어있는 지갑을 못 찾아 한참 헤매다가 나왔다. 비가 조금 내리길래 우산을 들고 걸었다. 9시쯤 되니 어김없이 해가 들었다. 아................... 햇빛.
 
운동을 매일 한 지 이제 딱 7일 넘겼다. 체감상 2주는 된 거 같은데, 예전에는 2년을 어떻게 이렇게 살았는지 모르겠다. 아직은 적응기간이라 평소보다 더 힘들다. 잠도 엄청 자고 있다. 원래 거르던 점심을 먹기 시작하니 오히려 헐렁하던 청바지가 작아졌다. 그렇지만 뭐라도 꾸준히 해야지.
 
부업으로 하고 있는 일이 11월 말에 끝나니 그때부턴 정말 ACCA 준비를 해야겠다. 회사 생활 오래 할 것도 아니라며 무슨 의미가 있나 싶지만, 그래도 9시부터 침대에 누워 유튜브 쇼츠나 보는 것보단 낫다고 생각한다.
 
오후에는 비가 너무 많이 내려 필라테스 수업을 취소했다. 이래저래 가기 싫긴 했다.
 
 

두나 플라자에 새로 생긴 아시안 마트에 가서 두부와 팽이버섯을 샀다. 나오는 길에 보니 건물에 비가 새는 건지 저렇게 양동이가 몇 개 놓여있었다. 어메이징 헝가리.

오늘 급하게 두부를 산 건 두부 조림이 먹고 싶어서였는데 막상 집에 가니 그냥 라면이 먹고 싶어서 대충 끓여먹었다.
 
 
 
 
2023.11.01. 수요일
부다페스트, 맑음
 
휴일이라 하루종일 누워있었다. 
 
 
 
 
2023.11.02. 목요일
부다페스트, 맑음
 
회사에서 아침에 조금 짜증나는 일이 있었다. 오히려 짜증이 힘이 되어 많이 괜찮아졌다. 뭐라도 기력이 나는 게 얼마만인지 모르겠다.
 
 
 
 
2023.11.03. 금요일
바르샤바, 비
 
회사에서 또 일이 있었다. 한 달 동안 애써 다잡은 마음이 다 무너져내렸다. 마음 약한 내 자신에게 조금 실망했다.

 

다음 주 월요일에 식사 자리가 잡혔다. 얼떨결에 그렇게 됐다. 생각만 해도 낯가려서 힘들지만 부장님이 있으니까.
 
저녁에 회사 마치고 바로 공항으로 갔다. 바르샤바 도착하면 많이 늦은 시간이라 미리 공항에서 저녁을 먹었다. 버거킹 햄버거였는데 양파가 들어가서 그런지, 회사에서 있던 일 때문인지 반도 먹히지 않았다. 마음의 병이 또 시작인가 싶어 이젠 진짜 지겨워진다.
 
라이언에어는 Modlin 공항으로 들어간다. 모들린에서 바르샤바까지 대중교통도 마땅한 게 없어 픽업서비스를 신청했는데 그 작은 공항에, 그 좁은 도로에 차가 어찌나 많고 비는 또 어떻게 그렇게 쏟아지는지. 5분 나와있는 사이에 물을 뒤집어 썼다.
 
숙소 도착해서 와인을 샀다. 혼자 술 안 먹기로 했지만 괴로워 견딜 수가 없었다. 그래도 울지 않았다.
 
 
 
2023.11.04. 토요일
바르샤바, 흐림
 
친구는 12시 넘어서 왔고 나도 그때까지 잤다. 부다페스트만 벗어나면 되는 건가 싶을 정도로 어디서든 잠이 잘 온다.
 
일본식 라면이 먹고 싶다고 해서 맛집이라고 찾아갔는데 사람이 너무 많아 헤매다가 결국 다른 라면 집에 가서도 줄을 서서 기다렸다. 결국 3시가 다 되어서 점심을 먹었다. 맛은 평범했는데 현지인들 입장에서는 아무래도 이국적인 음식이라 인기가 많은 걸까. 저녁 먹을 시간이 몇 시간 안 남기도 했고 얹힌 듯한 속이 안 풀려서 거의 못 먹었다.
 
중간에 에르메스에 잠깐 들렀다. 목걸이 팬던트 잃어버린 것을 물어 봤는데 이제 시즌 아웃인데다가 가능할지도 모른다고 한다. 무슨 스카프도 아니고 목걸이가 시즌 아웃이 되나. 패션쥬얼리는 어쩔 수 없는 건가. 좋은 기억, 좋은 마음으로 산 게 아니었기에 영영 잃어버렸다고 생각하면 차라리 홀가분하기도 하다.
 
저녁에는 본부장님과 만나 멀리까지 갔다. 술은 친구랑 나만 소주 한 병씩 먹었다. 평소에 술이 센 친구가 금방 취해서 조금 우스웠다. 내가 와인을 좋아한다고 하니 본부장님이 좋은 와인도 선물로 주셨다. 숙소에 와서 둘이 마시다가 잔뜩 취했다. 
 
 
 
 
2023.11.05. 일요일
부다페스트, 흐림
 
아침에 쌀국수를 시켰는데 고수가 들어 있었다. 의외로 내가 고수를 못 먹는 입이 아닌지 맛은 괜찮았다. 그래도 미칠 거 같아서 주스를 두 개나 사다 마셨다. 모들린 공항에 내려서는 한국에 있는 친구와 40분 정도 통화했다.
 
비행기 타고 부다페스트까지 오면서 그동안 메모장에 썼던 일기, 편지들을 읽어 봤다. 내 마음은 내가 제일 잘 아니까. 읽는데 얼마나 애쓰고 힘들었는지, 처절하게 밝은 척 하려던 내용 때문에 억장이 무너졌다. 왜 나는 나부터 돌보지 않을까. 이렇게 힘들었으면 조치를 취했어야지.
 
전날 남긴 게 생각이 나서인지 일본 라면이 먹고 싶어 배달을 시켰다. 맛이..... 없었다. 그래도 먹었다. 나는 또 저번처럼 아프면 한국 갈 것이다. 절대 아프면 안 된다.
 
 
 
2023.11.06. 월요일
부다페스트, 맑음
 
아침에 정신이 맑았다. 여섯시부터 씻고 일어나 회사에 천천히 걸어왔다. 커피를 마시며 알고리즘에 뜬 가이 윈치의 강연을 봤다. 차분히 생각해 봤고 저질렀다. 벌써 6개월을 지옥 속에서 살았고 나는 후회 안 할 것임을 알았다. 홀가분해서 하루 종일 일에 집중을 잘했다.
 
저녁에 약속대로 강식당에 가서 밥을 먹었다. 적당히 8시 전에 끝났다. 집까지 걸어가면 한 시간 남짓인데다 하나도 취하지 않아서 그냥 걸어갔다. 그 거리를 어떻게 걷냐고 한 번씩은 만류했으나 끝까지 붙드는 사람도 없었다. 깜깜한 길에 들어서자마자 눈물이 쏟아졌다. 실컷 울었다. 진짜 실컷.
 
천천히 걸어서 한 시간 반이나 걸렸다. 가는 길에 두나 아레나를 보니 수영 갈 생각에 막막해졌다. 솔직히 당분간 아무 것도 하고 싶지 않다. 이러면 안 되는 것을 알지만 하기 싫으면 하기 싫은대로 좀 날 놔두면 안 되는 건가. 나까지 날 몰아붙여야 하는 건 아니잖아. 번역 일도 당분간 쉬어야겠다. 그냥 솔직히 다 싫다.
 
유일하게 하고 싶은 건, 그냥 매일 걷고 싶다. 날씨와 내 몸과 시간이 허락하는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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