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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중일기 031 (20231024~20231030) 본문

일상, 삶/매일 비장하게 나라 구하는, 난중일기

난중일기 031 (20231024~20231030)

여해® 2023. 10. 31. 1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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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0.24. 화요일
부다페스트, 비
 
회사에 오랜만에 돌아오니 키보드조차 낯설다. 그래도 곧 적응해서 여러가지 일을 했다. 휴가 간 동안 나름 한다고 했는데도 놓친 것들이 몇 개 있었다. 이제는 그런 걸 봐도 기분이 그저 그렇다. 그럴 수도 있지, 하면서.
 
차 배터리 방전으로 시동이 안 걸려 리스 회사에 연락하니 바로 연락처를 주었다. 며칠 걸리겠지 했는데 그래도 자동차 관련해서는 헝가리도 대응이 빠른 편이다. 오늘 중에 온다고 했다. 15분 정도 일찍 회사에서 나와 주차장으로 갔다.


시동은 급속 충전 한 번에 어이없이 걸렸다. 2시간은 공회전 혹은 운전하며 시동 걸린 채로 놔둬야 한다 해서 정말 오랜만에 실비네까지 운전해서 갔다. 생각해 보면 비가 내리는 날만 실비네에 가는 것 같다.
 
얼려두고 먹을 돼지갈비와 급 떡볶이가 먹고싶어서 포장했다. 2키로 갈비보다 비싼 떡볶이다. 한국에서 깜빡하고 엽떡 밀키트 안 사온 게 많이 아쉽다. 반의 반밖에 안 끓였는데 내가 조리를 잘못했나 예전 맛이 아니어서 좀 억지로 먹었다. 한국에서 가져온 짐 정리도 하고 밥까지 먹고 앉았는데 8시가 안 되었길래, 사실 오늘은 비도 오고 피곤도 하고 이런저런 핑계로 운동을 미루려 했건만 그냥 했다. 결론적으론 아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에 폼롤러로 악 소리 나게 미는데 고통과 함께 뿌듯함이 몰려왔다. 내가 잘 살고 있다는 기분이 들었다. 고작 45분 홈트레이닝 따위로.
 
그냥 이렇게 살다보면, 하루하루 큰 의미는 없어도 평온하게 살다 보면, 내가 원하는 장면, 내가 원하는 상황이 언젠가는 다가오겠지.
 
 
 
 
 
 
2023.10.25. 수요일
부다페스트, 비
 
이틀 연속 비가 내린다. 팀원과 두나판다에 갔다가 훠궈를 먹으러 가기로 했는데 딱 알맞은 날씨였다. 낮에는 잠깐 해가 났다. 겨울에도 마찬가지일 것 같아 창문 시트지를 주문했다. 점심시간에는 너무 노곤해서 차에 가서 누워 있었다. 피곤한 와중에도 마음이 아파 눈물이 줄줄 흘렀다.
 
다음 주에는 바르샤바에 친구를 만나러 가려고 비행기표를 끊었다. 12월에 밀라노 갈 비행기도 미리 했다. 루도비코 에이나우디 공연 티켓은 아직 못 구했지만 왠지 취소표를 잡아 볼 수 있을 거 같다. 
 
팀 회식을 못하는 대신 두나판다에서 간식으로 먹을 거리를 잔뜩 사고 건너편 가게에 가서 약속대로 훠궈를 먹었다. 오랜만에 먹어서 그런지 정말 맛있게 먹었다. 회사에 떠도는 소문을 몇 개 주워들었다. 나에 대한 이야기도 꽤 있는 모양이었다. 그러나 이젠 회사에서 오고가는 이야기 따위에는 아무 감흥이 없다. 회사 사람들에게 아무 관심도 애정도 화도 생기지 않는다.
 
집에 오니 10시가 넘었다. 운전해 돌아오며 조금 울었다. 피곤해서 운동은 거르고 싶었지만 이것도 안 하면 나는 다시 마음 아프고 힘들어질 것이다 다독이며 밖에 나갔다. 15분쯤부터 아무 생각이 들지 않았다. 가로등과 하늘이 뿌옇게 보였다. 집에 와서 폼롤러까지 하고 씻고 누우니 12시쯤 되었다. 베드버그가 기승을 부린다는 소식에 요즘은 괜히 몸이 간지러운 느낌이 든다. 간지럽고 부풀어 오르길래 설마 했는데 다행히 피 먹은 모기가 느리게 날고 있었다. 새벽 한 시까지 뒤척이다 언제 잠들었는지 모르게 잠들었다.
 
 
 
 
 
 
2023.10.26. 목요일
부다페스트, 흐림
 
새벽 네 시, 여섯 시에 한 번씩 깨고 알람을 안 맞추고 잤더니 7시 30분에 눈을 떴다. 다행히 지각은 안 했다.
 
운동 고작 이틀 연속 했다고 몸이 엄청 피곤하고 졸음이 몰려온다. 전날 훠궈 먹은 게 계속 속에서 부대꼈다. 남현희 전청조 관련 기사가 너무 재밌고 자극적이어서 아침부터 읽느라 정신이 없었다. 
 
점심에 부사장님, 팀원과 함께 강남에 가서 점심을 먹었다. 내장탕을 먹었는데 국물이 매콤하고 진득해서 입맛이 돌았다. 버블티까지 먹고 돌아오니 시간이 많이 지나있었다. 회사 어른과 식사하면 이런 점이 좋다.
 
사무실에 에어컨은 더 나오지 않고 오후 되면 햇볕이 온 사무실에 들어와 공기가 달궈진다. 나만 더운 게 힘든 줄 알았는데 모두들 괴로워하니 안타깝다.
 
팀원이랑 발레 얘기를 하다가 충동적으로 다음날 수업을 예약했다. 그룹 수업은 5천포린트, 개인 수업은 15천포린트. 가보고 괜찮으면 개인 수업도 들을 생각이다. 골반 틀어진 데에 좋지 않다는 핑계로 그만 두었었는데 그냥 좋아하는 운동이라도 해야지 싶다. 아무 것도 안 하는 것보다 나을 테니.
 
퇴근 시간 이후에 두 시간 정도 일을 더 하다가 천천히 걸어서 집에 갔다. 가자마자 홈트레이닝으로 45분 정도 운동하고, 화요일에 사온 돼지갈비를 구워서 밥을 많이 먹었다. 씻고 누워서 중국 드라마를 계속 봤다. 유치하고 잔잔한 내용인데 오늘 본 회차는 조금 슬퍼서 따라 울었다. 남의 이야기에 울 수 있다는 것은 여유이자 복이다.
 
 
 
 
 
 
2023.10.27. 금요일
부다페스트, 비
 
아침부터 비가 많이 내렸다. 깨기는 6시에 깼는데 갑작스러운 운동량에 내 몸이 정신을 못 차리는지 기압 때문인지 온몸이 무겁고 힘들었다. 그래도 전날 술을 먹어서 그렇다거나, 야근을 해서가 아니라 자랑스러웠다. 하루 한 시간 투자한다고 이렇게 기분이 달라지는 것을 왜 안 하고 살았을까.
 
우리 팀원이 예전부터 해외정착지원금 신청하라고 말해 주었는데, 소득분위 때문에 어려울 것 같지만, 밑져야 본전이니 신청이라도 해봐야지 해놓고 또 잊었다. 아침에 K-MOVE에서 오랜만에 메일이 와 있길래 생각난 김에 신청했다. 됐으면 좋겠다. 그럼 사고 싶었던 목걸이 사게.
 
WSET 자격증 수업이 마침 11월에 있어서 학원에 문의를 하였다. 11월은 얌전히 지내겠다고 했는데 바쁜 한 달이 되겠다. 레벨 2든, 3이든 듣고 한 번에 합격해 보겠다. 레벨 3을 들으려면 3~4주차 금요일마다 연차를 내야한다. 올해 남은 연차일수와 운 좋게 딱 맞겠다. 12월에는 주말에만 여행 다니기로 했으니까.
 
루도비코 에이나우디 부다페스트 공연 티켓 리셀 가격을 봤는데 터무니없다. 사실 이렇게까지 유명하고 인기 많은 작곡가인 줄 몰랐다. 
 
점심시간에 테스코 atm기에 가서 현금을 뽑아오는데 많이 추웠다. 어제까진 사무실이 달궈져서 힘들다고 했는데 날씨가 참 대중없다.
 
5시까지 가기 싫다, 가기 싫다 혼잣말로 징징댔지만 정각에 바로 나갔다.


데악 역까지 가서 도하니 거리까지 걸어가는데 길거리 장식은 벌써 겨울 준비를 하는 듯 했다. 발레 학원은 아니었고 지하 스튜디오 대여 방식이었는데 한국이랑 다르게 체계가 좀 엉망이었다. 블랙핑크 노래에 알 수 없는 춤을 꿀렁대는 앞 시간 수업은 당당하게 5분이나 오바해서 끝났고. 수업 자체는 즐거웠다. 어렵지도 쉽지도 않은 딱 그 수준이었다.
 
돌아오는 길에 두나플라자 미디어마켓에 가서 드디어 에어프라이어를 샀다. 기왕 샀으니 잘 써야겠다.
 
 
 
 
2023.10.28. 토요일
부다페스트, 맑음
 
전날 일찍 잠들었지만 일어나니 11시였다. 13시간을 넘게 잤다. 한국에서 돌아오고 한 번도 못 쉬었으니 그럴만도 했다.
 
발레하고 난 다음날이라 정말 온몸이 다 아팠다. 원래는 사무실에도 가려고 했는데 그냥 하루종일 누워서 핸드폰으로 게임만 했다. 살면서 하루쯤 이런 날도 있어야지 싶어서 마음이 무겁진 않았다.
 
 
 
 
 
2023.10.29. 일요일
부다페스트, 맑음
 
아침 6시에 눈을 떴다. 졸다 깨다 반복하다 7시부터는 완전히 깨어있었다. 창밖으로 보이는 안개 낀 풍경이 멋있어서 한참을 바라봤다.
 
전날 배고픔을 참고 잤기 때문에 아침부터 밥을 해먹었다. 이상하게 한국에서랑 다르게 똑같이 쌀밥을 먹고, 김치볶음밥을 먹어도 배가 바로 아프다. 자극적이어서 그런가. 기름을 너무 많이 쓰는 것일까. 가벼운 책 한 권을 사서 다 읽고 샤워하고 나왔다. 회사까지 걸어오는 길에 어떤 차가 속도를 줄이며 운전자가 날 보고 웃었는데, 내가 뭘 했길래 그런지는 잘 모르겠다. 다행히 사무실에는 아무도 없었다. 날이 맑아 햇빛 때문에 또 방이 잔뜩 달궈져 있었다. 책상에 놔둔 향수병이 뜨끈할 정도로. 우리집은 그렇게 덥지 않던데 (오히려 추워서 이젠 수면잠옷을 꺼내 입었다) 사무실의 방향 때문인듯 하다. 오후 세 시쯤 선선해졌다.
 
WSET 레벨 2 강의를 결제했다. 3까지 따면 한 비용은 300~400만원 정도에 기간도 6개월은 걸리겠다. 레벨 2 합격한 후 3 듣는 게 필수라니 상술같다. 그래도 일단 12월까지 기대되는 일정이 한가득이다. 루도비코 에이나우디 공연 티켓은 아직 나온 것이 없다.
 
적당한 저녁 시간에 일을 마치고 집에 와서 바로 운동을 하러 나갔다. 30분만 해도 충분하겠다 싶었는데 걷고 뛰다보니 한 시간이 금방 갔다. 집에 와서는 유부초밥을 만들었는데 바보같이 요리 저울을 평평하지 않은 곳에 놓고 밥을 계량했다가 너무 많이 남았다. 남은 밥을 김에 싸서 먹어보다가 이내 질리고 배불러서 그만두었다. 유부초밥 만드는 게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유부가 찢어지고 밥이 속까지 안 들어가고.
 
 
 
 
 
2023.10.30. 월요일
부다페스트, 맑음
 
햇볕 때문에 너무 힘들다. 밖에 한 발짝만 나가도 시원한데 방안은 사우나가 따로 없다. 바람 쐴겸 테라스로 나가면 떠올리기 싫은 생각들이 몰려온다. 왜 나 혼자서 마음이 이렇게까지 오래 힘든 걸까. 언제쯤 다 잊혀지나. 나도 곧 괜찮아지겠지. 이런 식으로 결론을 내고 방에 돌아오면 숨이 턱 막히는 더위.
 
유부초밥 만든 것을 집에 놓고 와서 점심시간에 천천히 걸어 집에 다녀왔다. 유튜브에서 보고 계속 먹고 싶었던 컵라면도 먹었다. 회사에 다시 나오기가 싫었다. 다른 이유는 없고 그저 이동이 귀찮아서. 차를 끌고 주차장에 갔더니 자리가 딱 하나 있었다. 원래 널널했던 곳인데 건물 새로 들어서고 사람이 많아진 모양이다.
 
7시쯤 퇴근해서 집에서 운동했다. HIIT 영상을 보고 하는데 중간에 정말 너무너무 힘들다. 운동하고 남은 밥으로 간장계란밥을 먹었다. 또 너무 많이 했나 싶었는데 그냥 다 먹었다. 자려고 누웠는데 오른쪽 무릎이랑 골반이 신경쓰이게 아팠다. 발레 때문인가 러닝때문인가. 도수치료를 다시 다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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