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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중일기 029 (20231010~20231016) 본문

일상, 삶/매일 비장하게 나라 구하는, 난중일기

난중일기 029 (20231010~20231016)

여해® 2023. 10. 24.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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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0.10. 화요일
수원, 맑음
 
돌아보니 요즘 직장 생활 안 하는 친구가 하나 둘 늘어간다. 비슷한 시기에 퇴사해 이직했다가, 다시 퇴사한 친구와 노량진에서 만났다. 1년만에 보는데 달라진 게 없이 그대로였다.
 


꽃게랑 가리비를 많이 시켰는데 내가 워낙 많이 먹어서 남기진 않았다. 의외로 초장집이 비쌌다. 한 3만원 이하일 줄 알았는데 5만원 가까이 나왔다. 내가 초장집까지 살걸 싶었다.
 
커피를 마시면서 날 괴롭히는 문제에 대해 드디어 이야기를 털어 놓았다. 이 문제에 대해 근 한 달 정도 말을 안 하고 있었는데, 친구가 그간의 이야기를 다 듣더니 내 문제를 정말 너무 별 것 아니게 우스갯소리로 만들어 주어 고마웠다. 전날까지 수시로 집에서 우울해지면 몰래 울곤 했는데 이젠 안 그럴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보다 어린데 어쩌면 이렇게 명쾌하고 어른스러운지.
 
저녁에는 한대앞에 가서 회계하는 언니 오빠를 만났다. 만나고 보니 난 해외법인, 오빠는 본사, 언니는 국내법인 각자 이해관계가 다른 구성이라 (비록 다른 회사이지만) 재미있었다. 미나리랑 나물같은 걸 많이 올려주는 삼겹살 집에 기대하며 갔는데 고기에 염지를 얼마나 한 건지 짠 맛에 익숙한 나인데도 다 먹을 수가 없어서 빠듯한 와중에도 2차를 갔다. 새우 구이를 먹었는데 난 새우보다도 번데기가 맛있어서 계속 집어 먹었다.
 
1년만에 똑같은 얼굴, 똑같은 사람들이지만 하는 이야기에 계속 변화가 있으니 신기하다.
 
 
 
 
 
2023.10.11. 수요일
서울, 맑음
 
염치없게 늦잠 자서 친구랑 늦게 만나고 말았다. 친구가 행궁까지 와 준다고 해서 그 와중에 또 침대에서 졸았다. 왜 이렇게 잠만 자꾸 쏟아지는지 모르겠다.
 


조금 빠르게 나선 덕에 팔달사에 들렀다. 합장 인사 안 하고 그냥 인사해서 주지스님께 잔소리 들었다. 나는 아직 사찰 예절같은 걸 잘 모르겠다. 서른 넘은 이제야 예의범절로 왜 여기저기서 혼나고 다니는지 잘 모르겠다. 초를 올리고 사리탑에서 탑돌이도 했다. 근심하던 일이 그냥 별 것 아니게 느껴졌다.
 


친구랑 마담마담에 가서 즉석떡볶이를 먹었다. 오랜만에 먹어서 그런지 정말 정말 너무 맛있었다.
 


잘 꾸며둔 찻집도 갔는데 메뉴 구성이나 꾸며둔 게 애매하게 허접하지만 돈 쓸어모으겠지 싶어 부러웠다. 이 친구도 회사를 안 다니고 있기 때문에 여러 이야기를 했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까. 회사 생활은 언제까지 할 수 있는 걸까.
 


밥을 다 먹고는 방화수류정에 가서 산책했다. 처음 와 본다고 하니까 친구가 놀랐다. 나는 모기가 너무 많고 평일 낮에 사람이 많아서 더 놀랐다.
 
퇴근이 늦는 두 교포 친구 때문에 저녁 약속은 늦은 시간이었지만, 서울역에 예약해둔 호텔에서 잠시나마 눈이라도 붙이고 싶어서 일찍 서울역으로 갔다. 이럴 바엔 그냥 엄마아빠 집에서 지내지 말고 서울에 계속 숙소를 잡을걸 그랬나 싶을 정도로 서울을 엄청 드나드는 기분이다.
 
내가 좋아했던 삼각지 바 음은 내가 헝가리로 떠난 사이 문을 닫았다.

친구가 그 자리에 바로 다른 술집이 들어섰다고 해서 갔는데, 내가 좋아하는 막걸리도 종류가 많고 음식도 나쁘지 않았다. 그래도 예전의 그 내추럴 와인 바가 그립다. 왜 내가 좋아하는 곳들은 문을 많이들 닫는가.
 
한국 와서도 몇 년을 철저한 비건으로 살던 친구가 동호회 활동도 하고 한국에서 오래 살면서 어느 정도 타협을 했더라. 1년이란 시간이 그런 시간인가. 덕분에 메뉴 시키기가 훨씬 수월해져서 좋았다. 2차를 짧게 갔다가 새벽 세시쯤 헤어졌다. 호텔 돌아와서는 기절한듯 잠을 잤다.
 
 
 
 
 
2023.10.12. 목요일
수원, 맑음
 
아침에 원래는 아무 의원이나 찾아가서 링겔을 맞으려 했는데 무슨, 체크아웃도 한 시간 미루고 약속시간도 한 시간 반을 미루었다. 체력이 다 떨어져가는 게 느껴졌다. 비몽사몽간에 전철 타고 명동까지 갔는데, 명동역에서 약속 장소까지 그렇게 멀 줄은 또 몰랐다.
 


저번에도 그렇고 내가 자꾸 얻어먹기만 했는데, 심지어 식당이 선불제라 이미 친구가 돈을 냈고... 시간은 커피 마실 시간밖에 주어지지 않아서 값을 맞추느라 조선호텔에 갔다. 그래도 대접한 느낌이 나서 다행이었다. 이 친구도 회사를 관둔지 얼마 안 되어 할 얘기가 많았다. 내가 상사병으로 힘들 때 가장 많이 들어주고 얘기해준 친구인데, 사업 얘기를 하는 내게서 이런 생기있는 목소리 오랜만에 들어본다고 하여 반성했다. 한때 지나갈 감정으로 얼마나 우울해하고 있었으면.
 
친구와 헤어지고 바로 양재역으로 가는데 내가 또 서울 교통을 간과했다. 괜히 버스 때문에 시간 버리고, 전철 타고 약속 장소 가는데 또 한 시간 늦었다. 늦는 거 싫어하는데 진짜 난 최악이다.
 
1년만에 만난 동생은 만난 계기는 대수롭지 않지만 그래서 더 신기한 인연이다. 얘기하다보면 시간 가는 줄을 모른다. 막창을 둘이서 5인분이나 먹고, 서초동 곰포차에 갔다. 이때부터 살짝 기억이 없게 또 많이 마셨다.
 
 
 
 
2023.10.13. 금요일
수원, 흐림
 
급히 서명할 것이 있어 점심쯤 성균관대역 근처 프린트 카페에 다녀왔다.


간 김에 근처 의원에서 비타민 주사도 맞았다. 심지어 한 군데는 환자가 너무 많아 거절당하고 돌아왔다. 저녁 먹기까지 시간이 애매해졌지만 먹고싶은 건 먹어야지, 등촌샤브칼국수에 갔다. 그런데 교묘...하게 짝퉁 맛이 났다. 왜 그렇지.
 
저녁까지 시간이 한시간 정도 남아 근처 마사지샵에 갔다. 시각장애우 분들이 하시는 국가 공인 마사지 센터인데 진짜 치료받는 느낌이었다. 엄청 시원했다. 마치고 나오니 살짝 늦은데다 집에 없다고 동생이 화를 냈다.
 
외식하고 돌아와 간단히 케익에 초를 붙여 불고, 밤 늦게까지 일했다. 조금 투덜대니까 엄마아빠가 나더러 이제 그럴 나이, 그럴 직급이랜다. 누가 시켜서 하냐고. 나는 학교 졸업한 후로 일을 누가 시켜서 해 본 적이 없는 거 같은데.
 
밤에 다음날 보기로 했던 토익 시험을 취소했다. 환불은 기대도 안 했는데 반이나 해주어서 고맙기까지 했다.
 
 
 
2023.10.14. 토요일
수원, 맑음
 
이모네 집에 일찍 가려고 했지만 일어나니 엄마는 이미 갈 준비를 다 마친 상태였다. 결국 엄마가 먼저 가고 나는 한두시간 정도 누워서 쉬다가 나섰다. 수액 맞으면 바로 가뿐해진다더니 나한테 그런 효과는 없나보다.
 


이모네 집에서 백순대를 시켰는데 너무 많이 시켰고 나만 좋아하는 음식이라 4분의 1만 조리하고 나머지는 집에 가져갔다. 너무 짧게 봐서 아쉽지만 다음 약속이 있어서 나섰다.



매번 알부자에서 만나는 친구와 또 알부자에서 만났다.
 
바쁘게 육아하는 와중에 나 본다고 지방에서 올라와 준 게 너무 고마운데, 화장실 다녀온 사이 와인 두 병이나 먹은 2차를 냈길래 선물로 리델 와인잔 세트를 보냈다. 내가 어디에 있으나 1년에 한 번밖에 못 보겠지만 매번 1년치 이상의 배움을 얻고 오는 겸손하고 잘난 친구.
 
집에 오면서 나도 주변에 그런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했다.
 
 
 
2023.10.15. 일요일
수원, 맑음
 
대구에서 친구가 서울역까지 왔다. 나도 다행히 이번엔 시간 맞춰서 서울역까지 갔다. 모두가 내가 먹고 싶어하는 메뉴에 맞춰주고 있어 또 노량진에 갔다.



대구에는 꽃게가 흔한 식재료가 아니라 꽃게찜은 처음 먹는다는 친구. 대학 때는 내 엄마라는 별명 붙을 정도로 나한테 하나하나 다 챙겨주고 밥먹여주고 했었는데, 내가 친구한테 거꾸로 꽃게 손질해서 건네는데 약간 감격이었다.
 
다음날 출근도 해야 하고 멀리서 오기도 해서, 다섯 시간밖에 못 봤지만 충분히 재밌게 놀았다. 수원역에 붙은 AK플라자에서 살 것들을 몇 개 사고 집에 왔다. 진짜 진짜 진짜로. 체력 바닥이다.
 
 
2023.10.16. 월요일
수원, 맑음
 
유일하게 약속 없는 날. 오후 네시까지 잠만 잤다. 정말 이렇게도 잘 수 있구나 싶을 정도로 잠만 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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