옆집

난중일기 022 (20230522~20230528) 본문

일상, 삶/매일 비장하게 나라 구하는, 난중일기

난중일기 022 (20230522~20230528)

여해® 2023. 5. 30. 15:39
728x90
반응형

 

 


2023.05.22. 월요일
부다페스트, 맑음
 
전날 재테크 책을 읽다가 새벽 두시까지 못 잤다. 너무 열심히 공부해서는 절대 아니고 일요일은 매번 이런다. 적어도 9시엔 일어나야지 하다가 12시까지 자버리고, 결국 새벽 2~3시까지 못 자는 것이다.
 
책 읽으면서 오랜만에 같은 일 하는 언니 오빠가 있는 단톡방에 앞으로 얼마나 회사원을 할 것인지, 40대 이후에는 뭘 할 것인지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세무사 준비한다는 언니와 회사경력을 더 키우겠다는 오빠 둘다 멋져 보였다. 나는 그 어느쪽도 엄두가 나지 않고, 뚜렷한 꿈이나 계획도 없어서 먼저 말을 꺼내놓고도 부끄러운 기분이 들었다.
 
일주일만에 출근한 나를 배려해서인지, 정말 별 일이 없었던 것인지, 팀원들이 나를 조용히 놔둬주어서 고마웠다. 본사에서 분기 보고서에 대해 질의가 왔는데 기본적인 건데도 내가 놓친 것이라 아주 참담한 기분이... 들어야겠지만 그냥 또 별 생각이 없었다. 점점 이렇게 되는구나. 점심에는 대충 피자 한조각 사서 때우고, 웬일인지 집중이 정말 안 되는 일을 까딱거리다가 결국 스타벅스까지 걸어가 오랜만에 라떼를 마셨다.
 
두 번이나 시간과 날짜를 착각해 못 간 도수치료를 오늘 드디어 갔다. 8시 예약이라 빈둥빈둥 일하다가 블로그 쓰다가 회사에서 7시쯤 나섰다. 아무도 없는 사무실이 고요하고 일하기 좋다. 아무래도 나는 일 자체를 싫어하는 것 같지는 않은데..
 
도수치료를 너무 오랜만에 가서 잔소리를 들었다. 가는 길에 잠깐 비가 내렸다. 집에 돌아오니까 너무 오랜만에 도수치료 받아서 그런가 정말 온몸이 다 아팠다.
 
 
 
 
2023.05.23. 화요일
부다페스트, 맑음
 
남동생 생일이다. 선물은 미리 했으니 간단히 카톡만 보냈다.
 
점심은 대충 샌드위치로 때웠다. 샌드위치 가격이 1,100 포린트가 넘는다. 이번 달은 정말 긴축재정에 들어갈 것이기 때문에 조만간 나가게 될 유틸리티 빼고 약 50,000포린트로 생계를 유지할 것이다. 잠깐 걸어서 공원에 아이스크림 가게에 갔는데 맑은 하늘에서 누가 침뱉는 것처럼 비가 왔다. 무지개라도 안 뜨려나 했지만 해만 쨍쨍했다.
 
별 것도 아닌 걸로 기싸움처럼 한시간 가까이 통화하고 진이 다 빠졌다. 기가 쪽쪽 빨리는 하루였다. 
 
저녁에 삼겹살 생각이 간절했지만 참았다. 한국관의 특이한 양배추 김치 구워서 먹으면 맛있을 텐데... 대신 엄마아빠가 사다준 순대를 데워서 먹었다. 화요일답게 금방 피곤해져서 일찍 누웠다.
 
 
 
2023.05.24. 수요일
부다페스트, 맑음
 

에스토니아 대사관에 전자영주권을 받으러 다녀왔다. 벨을 계속 눌렀는데 아무도 응답이 없어서 허탕친 건가 했다. 부다쪽은 정말 갈 때마다 느끼는 건데 페스트랑 분위기가 많이 다르다. 저런 지역에서, 저런 건물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부러워졌다. 다리 하나 건넌다고 어쩜 이렇게 다른 세상인지.
 
점심에 생각없이 케밥을 사먹고 보니 2400포린트나 했다. 그전엔 이렇게 비싼지 생각도 안 하고 막 긁었던 것이다. 체크카드 쓰니까 확실히 얼마 남았는지 눈에 보이고 절약 정신이 바짝 든다.
 
요즘은 차를 두고 걸어다니고 있다. 날씨가 더 더워지기 전에 많이 움직여놔야겠고 음악 들으면서 힘차게 걷다보면 뭔가 미래에 대한 희망이 생길 것도 같고(?). 내일 집에 친하게 지내는 사람을 초대했기 때문에 집을 좀 미리 치워두고 지쳐서 9시부터 누웠다. 자정에 며칠 전 사뒀던 딸기가 생각 나 열어보니 몇 개는 곰팡이가 피기 시작해서 다 버리고 몇 개만 남겨서 얼려두었다.
 
쪼개고 쪼갠 자산 중에서 그나마 오르고 있던 미국 주식마저 다 내려갔다. 주식, 채권, 금 모두 마이너스다. 어떻게 이럴 수 있을까.


아참, 팀원이 꽃 선물을 해주었다. 집에 와서 꽂아 놓으니 화사해졌다.
 
 
 
2023.05.25. 목요일
부다페스트, 맑음
 
점심값을 아끼느라 테스코를 전전하다가 KFC에서 1500포린트 정도 하는 점심 세트를 사먹었다. 그동안 얼마나 생각없이 돈 써왔는지 반성한다.
 
저녁에 친한 사람을 초대해 집에서 순대볶음과 떡볶이를 했는데 엄청 맛있었고, 선물로 가져온 와인도 맛있었다. 또 과음했다. 
 
 
 
2023.05.26. 금요일
부다페스트, 맑음
 
월요일 휴일을 앞둔 금요일이라 조용하면서도 어수선한 하루였다. 토, 일 모두 잠깐씩 일정이 있어서 푹 쉴 생각은 하지 못했다. 다음주면 또 월말이고 그러면 또 마감이 다가오기 때문에 마음 속 부담이 컸다.
 
ACCA 시험을 이젠 미루지 않으려고 점심시간마다 공부하려 했는데 그것도 쉽지 않다. 그리고 아주 기본적인 내용같은데창피한 말이지만 몇 개 틀려서 사기가 꺾였다. 점심시간에 공원까지 걸어가 젤라또를 사먹었다. 요즘은 길가에 양귀비가 많이 보인다. 짭귀비인지 찐귀비인지 유심히 보고 있지만 우리나라에서처럼 신고한다고 바로 조치하러 올 지는 의문이다. 예전에는 예쁜 꽃인지 몰랐는데 볼수록 예쁘다. 
 
주말에 차를 써야 하기 때문에 운전해서 집에 돌아왔다. 대충 책은 조금만 읽다가 잤다.
 
 
 
2023.05.27. 토요일
부다페스트, 맑음
 
오후 세시에 zoom으로 수업을 듣게 되어있었다. 내심 오늘만은 안 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기다렸는데 마음이 통한 걸까, 선생님이 수업을 까먹으셨댄다. 흔쾌히 다음으로 미루고 집에 누워 있다가 와인 축제 참가할 겸 국회의사당까지 천천히 걸었다.
 


확실히 5월 초부터 관광객이 많이 늘었다. 관광객은 딱 봐도 티가 난다. 만약 나를 다른 사람들이 본다면 관광객인줄 알까 아니면 여기 사는 외국인 노동자임을 알아볼까. 오늘은 나도 관광객인 척 동영상도 찍고 사진도 찍고 두나 강도 계속 바라보고 잠깐 강가에 앉아보기도 했다.
 


축제는 굉장히 정신없었다. 그리고 입장료가 있으면 마땅히 시음은 무료일줄 알았는데 내가 도둑놈 심보였나보다. 와인 세 잔 정도 사서 마시고 사람에 치이고 지쳐서 집에 일찍 돌아왔다. 와인 축제라기보다는 그냥 와인을 파는 뭐랄까... 야외클럽? 같은 느낌이었다.
 
집에 돌아와서 늦은 저녁을 먹었다. 엄마아빠가 지난 번에 갖다준 옥수수를 두 개 구워먹었다. 엄마아빠가 딱 일주일 전에 한국으로 갔다는 게 믿어지지 않는다. 한참 지난 일 같은데.
 
 
 
 
2023.05.28. 일요일
부다페스트, 맑음
 
11시까지 자다가 겨우 씻고 발라톤으로 출발했다. 와이너리 두 군데나 방문해야 하는 빡센 일정이라 조금 시간을 넉넉히 가져갔는데 첫번째 와이너리에서 시간을 많이 썼다. 발라톤 호수가 저멀리 보이는 언덕 위 와이너리가 너무 탐이 나고 화목하고 자연친화적인 가족들이 보기좋고 편해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요즘 헝가리에서 음주운전 처벌 수위를 높이고, 알콜 수치 기준을 0으로 두고 있어서, 와이너리에서도 시음할 때 와인을 뱉을 수 있는 유리병을 마련해 주었다. 정말 하나같이 다 맛있어서 안 그래도 내 돈 주고 한병씩 사려 했는데, 떠날 때 아예 한 박스로 챙겨주셔서 정말 감사했다.
 
다음 와이너리는 꽤나 상업화 되어있기도 하고 지금같은 성수기에는 바빠서, 엄청 정신이 없는 와중에 그래도 할 건 다 했다. 여기서는 시음용으로 땄던 오렌지 와인을 하나 기념으로 줬고 내 사비로 오렌지 와인 하나, 카버네 프랑 하나 이렇게 더 샀다.    
 
집에 돌아오니 열시가 넘었다. 생각보다 발라톤은 멀었다.

 

 

 

 

728x9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