옆집
난중일기 100 (20250317-20250323) 본문
2025.03.17. 월요일
부다페스트, 흐림
어느덧 100번째 일기. 끈기 없어서 뭘 해도 지속을 못하는 나에겐 대단한 일이다.
인수인계를 하는데 팀도 경력연수도 너무나 달라 앞으로 많이 헤맬 어린 친구에게… 도대체 나의 무엇을 알려주어야 하는지, 반나절도 안 되어 창백해진 얼굴이 안타깝고 속상하다. 나는 내가 떠나는 날까지 열심히 할 줄이야 알았지만 끝까지 참…
금요일에 블루카드 서류를 드디어 전부 제출했는데, 오늘 오전에 신청서에 대한 피드백이 왔다. 고치라는 것을 고쳐서 보냈더니 곧바로 승인이 되었다. 와. 기계의 속도다. 그렇다기엔 사람이 일일이 달아준 게 분명한 코멘트라… 헝가리 와서 비자 때문에 날린 6개월이 새삼 허무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대사관 방문 약속은 다음 주로 잡혔다. 주한 독일 대사관은 좀 더 오래 걸리는 듯하던데 오히려 주헝가리 대사관은 이용객 수가 더 적어서일까. 아무튼 엄청난 속도에 마음이 매우 편안하다. HR 담당 직원도 엄청 기뻐해주었다.
2025.03.18. 화요일
부다페스트, 흐리고 비
새벽까지, 그리고 아침부터 따뜻한 대화가 이어진다. 아침에 눈을 뜨면 행복한 기분을 얼마만에 느껴보는지.
인수인계는 나름 평화롭다. 잘 몰랐는데 착실하고 꼼꼼하고 똑똑한 친구라서 다행이다. 내가 그만두는 시점으로 회사에서 왈가왈부 말이 많은 것을 안다. 그런 오해와 소문과 서운함에 스트레스 받지 않으려 해도.. 어쩔 수가 없다.
그래서 그런지 오후에 대판 싸우고 직원들 퇴근하기를 기다려 눈물을 꾹 참았다. 자리에 엎드려 엉엉 울다보니 저녁 약속까지 늦고 말았다.

회는 맛있었다. 늦은 것도 죄송하고 거주증 관련 도움도 주신 게 고마워서 내가 샀다. 간만에 먹은 소주에 취했다.
2025.03.19. 수요일
부다페스트, 비오고 흐림
통화를 밤새서 했다. 피아노 소리가 너무 좋았다. 피곤하지만 기분은 좋고. 회사 나오면 또 다운되고. 정신을 못 차린다.

저녁에 Aranytal Hotpot에 갔다. 꿔바로우를 욕심 내서 두 개나 시키고 인심 좋은 사장님이 포춘 쿠키를 또 한아름.... 많이 취하진 않았다.
2025.03.20. 목요일
부다페스트, 흐린 후 맑음
며칠째 혈압이 너무 낮다. 90/70도 안 나온다.

신입 생일이라 케익을 시켰는데 이따위로 왔다. 이젠 이게 화가 안 나고 웃긴 걸 보면... 나도 헝가리에 완벽 적응한 셈인데. 떠나려니 여전히 아쉽다.

점심에 부사장님과 만나서 왕갈비탕을 먹었다. 王 이름에 걸맞은 양이었다. 고기를 한참 덜어드리고도 겨우 먹었다.

옆 코너 카페에서 타르트에 마차라떼를 먹었다.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몇 장 없는 20대 시절 사진들을 봤는데, 나는 분명 20대의 내가 철없고 밝고 술을 좋아하고(?) 그랬다고 믿었으나.. 우울증이 만성인 건 알고 있었지만 눈빛들이 하나같이 슬프기 그지없다. 그런 것 때문에 기운이 빠졌다.
상대 출근할 시간도 생각을 못하고 통화하다가 중요한 미팅에 늦잠 자서 지각하게 만들고 말았다. 10대도 아니고 진짜 난 최악이다.
2025.03.21. 금요일
부다페스트, 맑음
상대와 지키지 못할 게 뻔한 앞으로 통화 시간을 어떻게 하자, 이런 약속을 부질없이.. 하고.
회사 때문에 많이 울었다. 얼마나 더 나의 무엇을 이렇게 쏟아야 할까?
저녁에 인수인계 받는 친구에게 미안해서 저녁을 살까 싶다가, 저녁 자리가 커져서 왕푸에 갔다. 훠궈.. 이번 주만 벌써 두 번이고, 내일 빈에 가서 샤브샤브 또 먹을 것이고. 이제 또 옷이 불편해지기 시작하려 한다.
2025.03.22. 토요일
빈, 맑음
여행기로 대체.
2025.03.23. 일요일
부다페스트, 비
동생이 언니 왜 엄마한테 전화도 안 하냐고 잔소리해서.. 죄책감에 괴로워졌다. 아침에 엄마하고 강아지하고 영상통화를 했다. 강아지가 얼마나 살 수 있을까.. 할아버지는. 왜 세월이란 사람을 이렇게 무력하게 할까. 또 답이 없는 걱정을 하고, 상대가 생각보다 너무 멋있고(?), 그런 것들 때문에 한없이 우울한 상태로 친구를 만났다.
벌써 이번 주 네 번째 외식. 또 훠궈. 당분간 진짜 먹지 말아야지. 친구네 회사 얘기를 듣고, 우리 회사 얘기도 하고. 이제 정말 슬슬 마무리가 되어가는 게 느껴진다. 내일은 독일 대사관에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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