옆집
난중일기 097 (20250224-20250302) 본문
2025.02.24. 월요일
부다페스트, 맑음
오스트리아 여행 가서 너무 많이 먹고 속이 안 좋아 하루종일 굶었다.
2025.02.25. 화요일
부다페스트, 흐림
너무 많이 울어 눈가가 헐더니 물집이 잡혔다. 너무 괴롭다. 오늘 미팅에서는 정신을 가다듬고 최선을 다했다.
2025.02.26. 수요일
부다페스트, 흐림
출근길, 회사, 길거리 매일 접하던 모든 것이 갑자기 낯설어 보인다. 집 천장 형광등까지. 정말 떠날 때가 된 것 같다.
이사님이 왜 화가 나셨는지 짐작도 안 되는 일로 전화해서 10분동안 와다다했다. 사회생활하면서 상사가 내게 이렇게까지 화낸 건 처음이다. 대충 기억나는 것은, 내가 내 직무답게 굴지 않았다는 말이다. 틀린 말이 아니다. 나는 마음도 약하고 냉정하지 못해 회사생활에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 맞다.
사흘 동안 끙끙 앓던 일을 후련히 해치웠다. 다행히 결과가 좋았다.
2025.02.27. 목요일
부다페스트, 맑음
이사님이 한 말이 잊혀지지가 않는다. 내가 잘못한 것도, 진심이 아니셨다는 것도 알고, 후회 내지는 미안한 마음이 느껴지기도 했으나.. 어제 하신 말씀 중에 틀린 말도 없었다. 집에 가면서 한 걸음 한 걸음 울었다. 이제는 정말 이별하기로 했다.
꼭 이렇게 몸부림치며 울고 불고 다 포기하려는 때에 원하는 것을 주는 세상. 약오른다. 그러나 기쁘다.
2025.02.28. 금요일
부다페스트, 맑음
부다페스트로 신혼여행을 온 친구가 모레 돌아간다고 하여 잠깐 저녁에 나가 커피를 마셨다. 어릴 때랑 목소리가 너무 똑같고, 여전히 착하고. 나도 여전할까? 아니면 많은 게 변했을까? 좋은 분과 결혼한 것 같아서 마음이 놓였다.
2025.03.01. 토요일
부다페스트, 맑음
늦게 잤는데 6시에 눈을 떴다. 불안하고 설레고 여러가지 겹쳐서 이렇게 신경이 곤두선 것이다.
집 옆에 마사지를 받으러 갔다. 역대급으로 시원해서 갖고 있던 유로로 팁을 많이 드렸다. 진짜 온몸이 다 녹아내리는 기분이었다.
집주인에게 퇴거 통보를 보냈다. 상호 2개월 통보 기간이라, 5월에 떠나려면 오늘은 말해야 했다. 여기 와서 정착함에 있어 유일하게 속썩이지 않고 수월했던 것이 집주인과의 계약이었다.
어쩐지 많은 것이 낯설게 느껴지던 이유가 이제 실감이 난다. 떠날 때가 된 것이다.
2025.03.02. 일요일
부다페스트, 맑음

점심에 신입과 강식당에 가서 갈비탕을 먹었다. 원래 머깃섬에 갈까, 아니면 회사에 가서 내 짐을 좀 정리 시작할까 했는데, 날이 너무 좋아 시내를 돌아보기로 했다. 관광객처럼 괜히 여기저기를 보는데 그렇게 오래 살았음에도 내가 모르는 부다페스트가 많다는 사실에 괜히 짠한 마음.

처음에 여기 와서 국회의사당, 부다성, 어부의 요새를 보고 "나 이제 이런 데에서 사는 거야?" 하면서 나이를 잊고 팔짝팔짝 뛰며 좋아했던 기억이 난다. 회사는 사랑할 수 없었어도 부다페스트는 사랑했다. 곳곳이 예쁘고 하찮고 귀엽다.



이해할 수 없었던 헝가리 감성, 나도 모르게 내게 스며들어 있겠지. 부다페스트 촌놈으로 사는 것이, 꾸미는 것 하나 모르고 복잡한 도시를 싫어하는 내겐 참 좋았다.
날씨가 더할나위없이 좋았다. 마시모두띠에서 예정에 없던 소비를 했다. 입던 바지들이 전부 흘러내려서 신입이 볼 때마다 잔소리를... 어마어마하게 했던 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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