옆집

난중일기 090 (20250106-20250112) 본문

일상, 삶/매일 비장하게 나라 구하는, 난중일기

난중일기 090 (20250106-20250112)

여해® 2025. 1. 13.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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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1.06. 월요일
부다페스트, 흐림
 
전날 일찍 자서인지 새벽 네 시에 눈을 떴다. 여섯 시까지 주식 계좌를 괜히 기웃거리고 카드값 나가는 날이라 잔고 있는지 다시 한 번 확인하고.. 그러다가 잠깐 다시 졸았다. 눈 뜨니 세상에 7시 30분. 부랴부랴 나오느라 전날 싸둔 유부초밥도 못 갖고 나왔다.
 
오후에 차량 점검이 예약되어 있어 바빠 죽겠는데 또 꾸역꾸역.. 갔다. 이 서비스센터는 두 번 가보았는데 갈 때마다 길이 너무 헷갈리는 것이다. 차를 맡겨놓고 기다리길 한 시간 반. 회사로 곧장 돌아와서 일하다 한숨 돌리려니.. 현지인이 그만두겠다고 결국 서류를 들고 왔다. 한국인만 있는 팀에서 혼자 외로웠을까. 사무실 생활이 처음이라 그런지.. 아침에 일어나기가 힘들다고 (너무나 이해하지만..) 근태가 좋지 않았고 그만둔다 말한 게 세 번째라 예상 못한 바도 아니었으나 내가 못 챙긴 것 같다는 기분이 드는 건 어쩔 수가 없다. 이 또한 그냥 무뎌지겠지. 회사가 이토록 날 온종일 매일 정신이 하나도 없게 한다. 제발 쉴 틈 좀 있었으면 좋겠다.
 
라이언에어에 EU261 청구를 해놓고 블로그도 좀 하고.. 일도 하고.. 대충 집에 걸어갔다. 겨울.. 너무 길고.. 춥고. 힘들다.
 
 
 
2025.01.07. 화요일
부다페스트, 비
 
회사에 임원들이 손님으로 오셨다. 이사님이 들어오면서 날 보고 "이사님 왔어요~" 하신 게 자꾸 생각나서 일하는 내내 종종 웃었다. 손녀한테 하는 말투같기도 하고 과일트럭의 참외가 왔어요 말투 같기도 하고. 얼마전 식당에서는 "어디 보자, 얼마 나왔나. 아저씨가 깎아줄게~" 라고 학생?애? 취급을 받았는데 마흔 앞둔 나이에 참 신기한 경험인 것이다. 
 
아침부터 괜히 일이 손에 잡히지 않더니 정말 사소한 것을 반복적으로 실수했다. 이런 날은 중요한 일을 하면 실수할 확률이 높아 적당히 해야 하는데 목전까지 차오른 데드라인들이 보여 멈출 수가 없었다. 점심에 꾸역꾸역 밥을 먹는데 너무 괴로웠다. 억지로 다 먹으면 유부초밥을 평생 먹지 못하게 될 것 같아서 조금 남겼다.
 
전날 10시까지 했던 부가세 파일을..... 결국 다시 다 뒤엎어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정신이 아득해졌다. 부가세 공제며 계정, 환율 틀린 게 월마다 고루고루 끝도 없이 나온다. 이게 끝나기는 할까. 처음부터 그냥 올해 9월 장부까지는 난 모르는 일이라고 쌩깔 걸 그랬나. 하루하루 시간은 가는데 어쩌면 이렇게 남이 이따위로 해놓은 장부를 나더러 고치라는 것인가. 누굴 원망해야 할까. 남에게 맡겼다가 결국 다시 떠안은 나 자신? 아니면 회사? 어쩔 수 없다. 이미 시작한 일은 끝을 내야 한다.
 
하늘도 무심하게 퇴근길에 비가 왔다. 다 포기하고 잠만 자고 싶었으나 이러면 안 되지 싶어 점심에 남긴 유부초밥과 두부김치를 해 저녁을 먹었다. 나가서 비가 오든지 말든지 한 시간을 걷고 뛰었다. 머리에 산소와 피가 도니 비로소 제정신으로 돌아오는 기분. 근거는 빈약하나 나는 뭐든지 다 해낼 수 있다고 차오르는 자신감. 그래, 먹고 살기 위해서 운동은 하고 살아야 해.
 
책 읽으면서 목욕하다가 물이 다 식어서 시계를 보니 두 시간이 지나 있었다. 오늘은 꼭 일찍 자려 했는데...
 
 
 
 
2025.01.08. 수요일
부다페스트, 흐림
 
6시 40분에 눈을 떴으나 도무지 일어날 수가 없었다. 아침은 너무 괴롭고 힘들다. 지금 갑자기 운동하고 식단해서 더 그렇다. 그러나 2주만 지나면 몸이 적응하고 에너지가 솟을 것이다.

친구 생일이라 연락했는데 더 기쁜 소식이 있었다. 꼭 잘 됐으면 했는데 정말 다행이다. 우리는 4월에 보기로 했다.

머리가 그야말로 깨질 것 같은데 억지로 붙들고 겨우 장부 3개월치를 확정지었다. 8시에 집에 갔다. 아무 것도 하고 싶지 않았으나 그럼 오늘 또 천칼로리도 못 먹은 것이라.. 남은 김치와 돼지고기, 두부를 해서 먹었다. 고기 냄새가 이제 슬슬 힘들어진다.


나가서 한 시간을 뛰었다. 큰 나무가 쓰러진 것을 보았다. 바람이 그렇게 분 적도 없는데 어쩌다가..

더 뛰고 싶었으나 너무 늦어 억지로 돌아와야했다. 하루가 조금만 더 길었으면 좋겠다.


2025.01.09. 목요일
부다페스트, 흐리고 비

출근하니 오랜만에 아침 하늘에 해가 흐릿하게나마 보여 테라스에서 한참 구경했다. 온종일 두뇌 풀가동했다. 이젠 힘들지도 않다. 미국장이 쉬는 날이라 화장실 가는 잠깐 잠깐 사이가 심심했다.
 
점심을 코끼리밥처럼 먹다가 도무지 안 되겠어서 반 나눠 3시에 먹고.. 또 7시에 저녁을 먹으려니 너무 괴로웠다. 양배추 계란전 예전에 분명 잘 먹었는데.. 꾸역꾸역 밀어넣다가 역겨워서 헛구역질 하면서 먹었다. 내가 먹는 걸 괴로워할 줄은 몰랐다. 이렇게 많이 먹는 게 정말 내 상태에 맞는 거냐고 챗지피티에게 하소연했으나 응 맞아! 하고 단호박 답변만 돌아왔다. 비가 왔으나 나가서 맘껏 뛰고 운동했다. 정말 너무 행복하다. 집에 돌아와 요거트 만들고 내린 유청을 섞어 목욕을 했다. 와인 대신 책을 동무 삼아서 목욕하는 것이 생각보다 큰 즐거움이다. 
 
 
 
2025.01.10. 금요일
부다페스트, 맑음
 
점심시간에 SYNLAB에 또 갔다. 나이 지긋한 간호사가 내 어깨와 머리를 쓰다듬어주면서 피가 느리게 나와서 오래 걸린다고 미안하다는 표현을 하기에, 부랴부랴 번역기에 '대부분 내 혈관을 못 찾아서 두 번 세 번 찌르는데 당신만은 한 번에 해 줘서 정말 멋져요 감사합니다' 라고 써서 보여주니 엄청 좋아하였다. 제발 염증 수치가 일시적으로 잘못 나왔던 것이길, 이번엔 다 정상으로 나오길.
 
점심에 또 꾸역꾸역 건강식을 먹었다. 감기 걸려서 끼니 때마다 가루약 먹어야 했던 어린 시절, 혹은 식판을 다 비워야 했던 초등학교 시절, 늘 낙오되어서 마지막까지 남았던 급식실 생각이 나는 기분이다. 끼니 때가 돌아오는 게 싫다. 왜 이렇게까지 먹어야 하지.
 
진짜 어리둥절한 것은, 블로그나 인스타 들여다보면 그냥 죄다 맛집 후기들인 것이다. 다들 이렇게 몸에 안 좋은 거 많이도 먹고 다니고 술도 다들 좋아하는데, 그러니까 다들 나처럼 사는 줄 알았는데 내 건강은 엉망이 됐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정말 억울해 죽겠다. 생각보다 술 먹고 싶은 마음은 많이 안 들고, 채소랑 고기를 한가득 먹으니 배가 맨날 동산처럼 불러서 뭐가 먹고 싶지도 않고, 그냥... 그냥.. 하루 최소 천사백 칼로리 먹는 게 뭐 이리 어려운지 모르겠다. 제대로 살아보려 하지만 사는 건 왜 이렇게 힘든가. 어제는 점심 먹다가 너무 짜증나서 눈물이 찔끔 날 정도였다. 언젠가 적응될 수 있을까? 다 포기하고 싶다. 연마감 때문에 예민해져서 더 그런 듯하다. 일한 지가 몇 년인데.. 회사 일은 쉽다가도 어렵고.

혈액 검사 결과가 저녁에 바로 나왔다. 신기하게도 모든 염증 수치가 다 정상으로 돌아와 있었다. 2주만에 이렇다고? 몸이 이런 변화가 반가워서 열심히 회복하고 있었다는 사실에 미안하고 고마워졌다.

밤 10시쯤 퇴근하고 강앞까지 걸어가 산책했다. 쓰러져 있던 나무가 흔적도 없이 치워져있었다.
 
 
 
2025.01.11. 토요일
부다페스트, 맑다가 눈

대리님 내외는 2시에 왔다. 욕심을 내서 음식을 많이 했더니 다 남기고 말았다. 고대했던 치팅데이이건만 생각보다 많이 못 먹고 마시는 내 자신이 놀라웠다.

나가서 두 시간을 걸었다. 한 시간은 싸락눈이 내렸다. 걸어온 거리가 4km쯤 되었을 때 쌓일 듯했던 눈은 녹고 없었다. 집에 돌아와 목욕을 하려다, 앉았다 일어나는 눈앞이 핑글 돌아 그냥 잠을 잤다. 술은 정말이지.. 멀리해야겠다.


2025.01.12 일요일
부다페스트, 맑음

꿈자리가 나빴다. 강아지가 아픈데 24시간 병원이 모두 전화를 받지 않았고 여기저기 찾아가봤으나 결국 죽었다. 무력한 내가 싫었다. 현실은 더할 텐데.. 강아지가 죽으면 나는 견딜 수 있을까.

데이스파를 가려 했는데 아침에 가계부와 주식 계좌 중간 정산을 해보니 이번달 수익이 좋지 않아 이비용이라도 아끼기로 했다.

부엌(이랄 것도 없지만..)을 깨끗이 청소하고 로봇청소기를 한 번 돌리고 빨래도 두 번 돌렸다. 침대 시트와 커버를 빠는 날이기 때문이다. 밖에 나가 놀고 싶었으나 과장님 정말 집세가 아깝다던 신입 말이 생각 나서 그냥 참아보기로 했다.

대신 테라스에서 드디어… 사둔지 거의 8개월 만에, 드디어. 만두카 매트 포장을 끌러다 소금으로 박박 문질러 길들였다. 이 과정을 몇 번 더 해야 한단다.

밥때를 놓쳤고 그냥 오늘만큼은 먹고 싶지 않아서 단식… 하고 내일부터 성실히 먹기로 했다. 만두카 매트 길이 다 들면 다음주부터는 슬슬 집에서 하는 근력운동을 추가하려 한다. 만두카라고 쓸 때마다 만두가 먹고 싶어(?)…


밀린 Repont를 하고 장을 봐와서 일주일치 밀프렙을 했다. 소스가 아무래도 너무 많은 것 같아 사진보다 2인분을 추가했다. 맛이 나쁘지 않으면 조금 더 많이 만들려고 한다. 시간이 너무 많이 걸려서 7개 만들기엔 아깝다. 운동한다고 나갔다가 얼어 죽을 뻔했다. 한국 겨울 같은 느낌.. 오랜만이었다. 요거트 만들고 남은 유청이 많아서 풀어 목욕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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