옆집

난중일기 078 (20240923-20240929) 본문

일상, 삶/매일 비장하게 나라 구하는, 난중일기

난중일기 078 (20240923-20240929)

여해® 2024. 9. 30. 1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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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23. 월요일
부다페스트, 맑음

회사에서 밥 먹을 시간도 없고, 이번 달에 식비에 너무 돈을 많이 쓰기도 했고.. 겸사겸사 박용우 스위치온 1일차를 다시 시작했다. 일하다보니 배도 안 고프고 잘 됐다(?). 마우스만 쥐면 새끼 손가락이 너무 아프다.

키보드가 혹사 당하다가 개빡쳐서 내 대신 파업이라도 하는 건지 방향키 하나가 부러져 버렸다. 장인은 도구 탓을 안 한다지만 나는 장인도 아니고(!) K780이 꼭 필요하다. 다행히 팀원이 한국에 휴가 가 있어 염치없이 대리구매를 부탁했다.

8시에 퇴근했다. 강변을 산책하는데 어디서 이상한 새 울음소리가 들렸다. 강변의 가로등은 여전히 꺼져있고 덕분에 별을 실컷 봤다. 요즘의 내 인생은 정말 별로지만 그래도 이런 걸 누리고 살 수 있어서 감사하기도 하고. 30분 정도 벤치에 누워 노닥거리다가 집에 돌아왔다.



2024.09.24. 화요일
부다페스트, 흐림

맹자가 말씀하셨다. 하늘이 장차 어떤 사람에게 큰 임무를 맡기려 할 때에는, 반드시 먼저 그 마음과 뜻을 고통스럽게 하고... 하, 됐고.
 
승마를 했다. 어떤 사람이 내가 한국인인 걸 알아보고 한국어를 해서 반가웠다.

집에 돌아와 누우니 온몸이 아프다.
 
 
 
 
2024.09.25. 수요일
부다페스트, 흐림

점심시간에 박서방네 가서 미나리를 사왔다. 이번에도 못 사면 그냥 영영 포기하려 했던 것이다. 왜 꼭 이럴까? 많은 일들이.. 이번에도 아니면 포기할 거야, 라고 생각하면 왜 꼭 이뤄지는 걸까?


당장 미나리를 먹는 것보다 키우는 데 목적이 있기에 신나게 손질했다. 요즘 나오는 건 거머리가 없겠지 했는데 아주 작은 검은... 그것이.. 보여서 순간 정이 떨어졌지만 꾹 참고 끝까지 다 마디를 잘랐다. 어서 무럭무럭 자라라.



2024.09.26. 목요일
부다페스트, 맑음


하루종일 일에 정신없이 매달려 있다가 저녁에 집에서 미나리 삼겹살을 먹었다. 몹시 취했다.


2024.09.27. 금요일
부다페스트, 맑음

회사에서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었다. 주말에 나오면 되겠지 싶어 오후엔 완전히 정신을 놓고 있었다.

작은 일에도 이렇게 흔들리다니. 호불호의 문제가 아니라, 나는 회사 생활을 하면 안 되는 사람 같다.



2024.09.28. 토요일
부다페스트, 흐림

친구와 두 시간을 통화했다. 자꾸 잠만 잤다.



2024.09.29. 일요일
부다페스트, 맑음

어제 오늘 합쳐 20시간은 잔 것 같다. 지금 현실에서 얼마나 도망치고 싶은지 알 것 같은 내용의 꿈이었다.

미나리가 몰라보게 자라있어 놀랐다. 요즘들어 내 유일한 기쁨.

마음을 가다듬고 금요일에 못 다한 일을 마치러 회사에 갔다.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잎 색, 한국 가로수처럼 단풍이 멋진 나무들은 아니지만 이젠 가을이 익을대로 익은 거리를 걸어 사무실에 가면서.. 전동 킥보드가 아닌 옛날 킥보드를 타고 가는 어린 남매와 그 뒤를 따라가는 남자를 보면서. 얼굴도 알고 이름도 익숙한 배우들의 부고 소식을 건너 건너 아는 사람이 죽은 것처럼 허무해하면서. 사진마다 늙어가는 엄마아빠 얼굴을 떠올리며. 다시 생각했다. 내가 추구하는 게 무엇이고 나는 뭘 위해 사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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