옆집

난중일기 080 (20241007-20241013) 본문

일상, 삶/매일 비장하게 나라 구하는, 난중일기

난중일기 080 (20241007-20241013)

여해® 2024. 10. 14. 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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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0.07. 월요일
부다페스트, 맑음

오늘부터 다음 주까지는 내일 있을 약속 말고는 집 정리와(과연..?) 회사 일에 총력을 기울이기로 했다.

발목은 낫는 듯하다가도 새벽에 두세 번 깰 정도로 아프다. 마데카패치였나, 동생이 이런 게 한번쯤 꼭 필요할 거라고 한국에서 챙겨준 것을 드디어 찾았다. 여드름 날 때나 조금씩 붙여보던 것인데 발목에 덕지덕지 붙이고 나니 한 장을 다 썼다.



2024.10.08. 화요일
부다페스트, 맑음

습윤패치는 좋은 생각이 아니었던 걸까. 오후에 너무 겁이 날 정도로 아프고 간지러워, 이러다 썩는 건 아닌지 (여기서 “oo이가 세상에 장화를 잘못 신고 패혈증으로 죽었대“ 라는 소문이 도는 상상까지 마친 것이다.....) 메디커버에 전화해서 갔다.

오랜만에 또 보는 텅 빈 대기실. 의사는 내 상처를 보고 장화 때문이라는 걸 믿지 못하겠는지 사진을 보여달라고 그랬다. 다행히 별일은 아니라고 했다. 한국 같으면 항생제를 줬을 것 같은데 베타딘이나 더 바르란다.

약사는 정말 심각하게 뭐한 거냐 누가 이랬냐(?)를 재차 물었다. 난자당한 발목 때문에 행색이 초라해 보일까 봐 괜히 목걸이도 했는데 나는 그런 내가 참 우습다.

왕푸는 정기 휴무일이었고 오랜만에 럭시비프를 갔다. 오늘도 역시나 영업 종료 시간까지 무아지경으로 대화하다가 집에 갔다. 한국 휴가 기간이 마침 겹쳐서 다녀오면 또 보기로 했다.


2024.10.09. 수요일
부다페스트, 맑음

온실처럼 더운 내 방은 창문을 열어두고 일했더니 각종 벌레의 천국이 되었다. 신입이 들어올 때마다 그걸 보고 화들짝 놀란다.

면접을 보고 있다. 나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은 절대 안 된다는 이사님의 강한 말씀에 너무 놀랐다. 평소에는 나 알아서 하라고 두시는 일이 많아서 더욱. 썩 마음에 들지 않지만 어리다는 이유로 채용을 했다. 30대 후반의 경력 좋은 사람을 떨어트리며.. 나도 어디 가서 누구 밑에서 일하기는 점점 어렵겠구나 생각하니 마음이 아팠다.

사실 지금은 새로운 사람이 들어오는 게 심적으로 부담이 크다. 어쨌든 이 나라에서 계속 일하면서 살 건데 헝가리인에게 더는 실망하고 싶지 않아서다.

카드값 청산을 어느 정도 해놓고 보니 마음이 개운하다. 한국 가면 또 기하급수적으로 늘겠지만..

돈도 그렇고 미친 듯이 몰려오는 회사 일을 보면 한국 가는 게 영 달갑지 않다. 말을 못 하는 강아지, 병상에 누워계신 할아버지 보러 가는 것에 의의를 두려 한다.


나눔에 가서 비빔밥을 먹었다.



2024.10.10. 목요일
부다페스트, 맑음

점심에 본부장님, 신입과 같이 갈비탕을 먹으러 강식당에 갔다. 갈비가 너무 많아 헤아려보니 내 탕엔 8개나 들어있었다. 이게 너무 배부르고 야근하느라 정신이 없어 저녁을 걸렀다.


2024.10.11. 금요일
부다페스트, 맑음

하루종일 일하느라 정신이 한 개도 없다. 화가 나려다가 내서 뭐 하나 싶고, 어쩌면 이렇게 엉망으로 버려뒀지 싶다가 짠한 기분이 들기도 하고.. 사람들 퇴근하면 귀 틀어막고 그냥 무아지경으로 일하면 그만이다.


2024.10.12. 토요일
부다페스트, 맑음

아침에 일어나 씻고 컵라면 하나 챙겨 회사에 나갔다. 신입도 나와서 오래 고생하다 갔다.

집에 오니 열두 시가 넘었다. 윗집이 파티를 하는지 쿵쾅거리고 떠들고 웃고 하는 소리가 가득한데 그냥 너무 피곤하니까 잠에 들었다.



2024.10.13. 일요일
부다페스트, 흐림

윗집 소리가 정말 도를 넘었다. 아침 열한 시부터 쿵쾅거리고 돌아다녀서 골이 아프다. 덕분에 좀 나도 활동적으로 청소를 하고 해볼까 싶었지만.. 집주인에게 다시 한번 말을 해야겠다.

한강 작가가 노벨문학상을 탔다는 소식은 어느 날이었지.. 아무튼 야근 후에 혼곤한 정신으로 접했다. 더는 그런 소식에 흥분도 뭣도 없는 내 마음을 들여다볼 새도 없이 한 주가 다 갔다. 지금보다 젊을 땐 분명 꿈이 많았는데. 지금은 살아남을 궁리에 지쳐, 이렇게 일기라도 매일 쓰는 것에 위안을 삼는 정도가 다다.

밀려둔 판트 환불을 받으러 spar에 갔다. 한참을 기다렸는데 두 병은 결국 바코드가 읽히지 않아 포기했다. 하루종일 누워 놀고 책 한 권을 다 읽고 해도 회사에서처럼 시간이 빠르게 가지 않는 것을 보고 놀랐다. 나는 도대체 얼마나 많은 시간을 자각도 못하고 회사에 바치고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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