옆집
2024년 10월 한국 휴가 (4) 간월암, 청포대해수욕장, 백사장항시장, 노을, 갯벌체험 본문
한국에서 해마다 철마다 하는 것들이 있었다. 봄에는 딸기 따기, 가을에는 갯벌에서 조개 캐기. 딸기 따기는 헝가리에서도 할 수 있고 (비록 노지 수준이지만..) 갯벌은 언감생심 지중해도 바다라고(?) 보려면 차를 타고 6시간, 혹은 비행기 타고 가야한다.
우리나라는 어디에서든 두 시간 달려가면 바다를 볼 수 있고 서해에 광활한 갯벌까지 있으니 얼마나 축복받았는지.
동생을 가게에 내려주고 커피 얻어 마시고 네비를 찍어보니 도착 예정 시간이 2시. 간조가 11시 30분이니.. 오늘은 갯벌에 못 들어가겠구나. 언젠가 지도에 표시해두었던 간월암에 가보기로 한다.

간월암은 아주 작은 섬 하나를 절이 모두 차지하고 있는 곳이다. 일명 기도명당이라는데 용궁사도 그렇고 절벽 아래로 바다가 철썩이면 다 용하다고 느끼는 듯하다.


테이크아웃컵은 반입을 못한다기에 컵 버릴 데를 찾아 헤매다 이런 노점들도 보았다. 아. 운전만 아니면 한 접시 사서 소주랑 먹고 싶었는데.

간월암은 바닷길이 열린 시간에만 드나들 수 있다. 바다가 허락해야 들어가는 절이라니 그 낭만에 더 찾는 것일까. 다른 절에서 단체로 많이 놀러들 오셨는지 배낭마다 이름과 어느 절 이름이 적힌 명패가 달려있었다.

법당에 들어갔다가 익숙한 구절이 들려 이어폰을 빼고 들어보니 천수경이다. 마침 신묘장구대다라니 구절 직전이기에 책을 얻어다 15분 정도 같이 독경하였다.

진짜 소원 잘 들어주게 생기긴 했다... 아뜨를 보내기 전 우리 둘의 이별여행이기도 했으므로, 아뜨의 평안한 날을 빌었다.

지겹다 지겨워 했는데 우중충한 헝가리 와서 보니 또 그리운 햇빛.

주차장 근처에 이렇게 코스모스가 끝도 없이 피어있었다.


헝가리에서는 구경도 못하는 생막걸리. 마트에서 한 병씩 사보았다. 내가 먹기엔 소원 생막걸리가 훨씬 맛이 좋았다.

백사장항 시장까지 가서 조개를 2만원어치나 사고.

겁나서 잘 하지도 못할 폭죽도 샀다.

숙소에 도착하니 간조 이후 세 시간이나 지나있어 바닷물이 밀고 들어왔다. 여름에는 해수욕에 최적일 해변이 이제는 가을이라고 텅텅 비었다.

숙소에서 베란다 열고 나가면 이런 뷰.

동생이 사진에서 삼선 때문에 감성 다 버렸다는데 난 애초에 그런 게 없다.

조개 2만원어치는 혼자 먹기엔 너무 많았다. 절반보다 조금 넘게 씻어 냄비에 담고 술찜 준비를 했다.

바다 보면서 요리하니까 진짜 이런 천국이 따로 없다. 한국에 머문 날보다, 떠날 날이 더 가까워진 시점에서 이런 행복은 클수록 나를 불안하게 했다.

한국도 해가 많이 짧아져 다섯 시쯤부터 해가 해수면으로 빠르게 들어가기 시작했다. 마늘, 고추, 조개를 넣고 달달 볶다가 청주를 넣고 찜을 시작했다. 중간 중간 해변으로 뛰어 나가 사진을 찍고 바닷물에 발을 담가보았다.

노는 사이 해는 거의 지고, 찜도 다 되었고.

마트에서 사온 막걸리를 짠.

나랑 한 번이라도 바다로 여행을 가본 친구들은 내가 만든 조개술찜을 한 번씩 맛을 봤는데, 그냥 하는 말인지 정말인지 몰라도 너무 맛있어서 잊을 수가 없다고 했다. 우리집에서 나는 요리바보로 통하지만, 친구들은 이렇게 내 버릇을 잘못 들이니 내가 요리에 미련을 못 버리는 것이다.

우리나라 최고.

시간은 멈추지 않고 나는 곧 지옥(?)으로 돌아가야 한다.

감성팔이를 그만하고 칼국수를 넣어 먹었다.

잔뜩 사놓은 폭죽(도 아니고 스파클러?)을 딱 세 개 켜서 놀았다.

별이 너무.. 너무 많았고.

술김에 근처 치킨집에 걸어가 40분을 기다려 닭강정을 샀다. 물론 거의 다 남겼다.
새벽 두 시. 너무 덥고 모기 물린 곳이 가려워 깼다. 10월 말에는 에어컨이 필요없다고 생각했는지 숙소에 에어컨을 켤 수 있는 리모컨이 없었다. 창문을 열고 다시 잤다.
새벽 다섯 시. 하늘 무너지는 소리에 번쩍 깼다. 열어둔 창문 틈으로 비가 미친듯이 들이치고 있었다. 혼자 여행도 많이 다녀봤고 나름 오만군데 다 가봤는데 이상하게 이날의 공포는 어떻게 표현을 해야할지 모를 정도로 강렬했다.

다음날, 언제 그랬냐는 듯이 맑게 갠 하늘. 예정과 다르게 시작된 생리에 컨디션도 영 엉망이었지만 여기 온 이유는 오로지 하나, 갯벌 체험이니까.

이 광활한 갯벌에 나를 포함하면 세 팀밖에 없었다.

첫 수확물.

두번째 수확물. 찾아보니 생합이라는 나름 비싼 조개다. 엄청 파면서 그야말로 뻘짓을 해 고인 물 속으로 손을 집어넣으면 돌같은 게 걸린다. 그게 생합이다.

세 시간 동안 이거 잡았다. 혼자 하고 있으니 내가 현지 어민인줄 알고 구경왔던 아주머니가... 바구니를 들여다보고는 "하이고.." 하고 웃고 가셨다. 무려 구미에서 왔다고 장거리를 자랑하시기에, 해외에서 왔다고 하려다가 그냥 입을 다물었다.


또 백사장항에서 꽃게를 사다가 먹었다. 얼마나 큰지 두 마리를 담았는데 1키로가 조금 안 되었다.

있어도 있어도 질리지 않던 풍경. 이렇게 급 질렀던 혼자 여행도, 한국 휴가도 뉘엿뉘엿 끝을 향해 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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