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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0월 한국 휴가 (2) 엄마랑 둘이 제주도 3박 4일, 날 구원해준 제주투어패스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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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0월 한국 휴가 (2) 엄마랑 둘이 제주도 3박 4일, 날 구원해준 제주투어패스

여해® 2024. 11. 4. 1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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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시 55분 버스를 타러 터미널로 나갔다. 전날 술을 많이 마시고 혹시나 못 일어날까봐 잠을 엄청 설친 뒤였다. 숙소랑 렌터카만 했지 어떤 계획도 없었던지라 더 피곤하게 느껴졌다.

엄마와 나는 아마 남남으로 만났으면 서로 상종도 안 했을 것 같은 상극의 취향을 가졌다. 나는 여행이든 외식이든 뭘 할 거면 쓸 돈은 쓰자는 주의이고 일명 가성비 따지는 행위를 극혐한다. 엄마는 정반대다.

이번엔 그래도 절대 화내지 말아야지 했던 효심+인내심은 공항에서 전망대 일리 카페를 가고 싶다는 내 말에 엄마가 내민 텀블러에서 이미 99%를 소진하고 말았다. 혹시 몰라 겨우 제주도행 비행기를 탄다고 3시간이나 일찍 도착한 탓에 더욱 피곤해졌다.

남은 4일이 끔찍해지기 전에 타협점을 찾아야 한다. 북촌이라는 함덕 옆 작은 해변가 마을에 숙소를 잡아놨으니 그쪽을 중심으로 코스를 찾아보다가 제주도투어패스라는 것을 발견했다. 정해진 시간동안 각종 입장권 아메리카노 공연 등을 이용할 수 있는 패스였다. 일단 결제를 하고 나면 엄마도 아무 말 안 하고 잘 따라다녀줄 것 같았다. 이게 아주 신의 한 수였다.

우선은 도착하자마자 함덕 근처 맛집이라는 데에서 전복죽, 성게보말죽을 먹었다. 맛은 무난하게 좋았으나 심상치 않은 하늘 상태와 파도를 보면서 걱정이 되었다. 설상가상 내일은 비바람이 몰아친다는 얘기를 듣고 누굴 원망해야할지도 모르겠고 그냥 짜증이 났다. 게다가 옆에서 4일은 너무 길다고 반복적으로 말하는 엄마 때문에 신경질이 머리끝까지 날뻔했으나 나는 사회인이다, 사회인이다, 하면서 참아보았다.

숙소는 나는 잠은 죽어도 누구랑 같이 못 자기 때문에 방 두 개짜리를 구하고 구하다가 잡은 에어비앤비였다. 얼마나 별로였으면 사진 한 장도 없다. 굳이 비추천하는 숙소 이름을 여기 밝히긴 싫고, 더럽거나 하진 않았으나 불편한 일들이 많았다. 주인 없이 운영되다보니 옆 건물 팀이 현지 지인들을 불러다 놓아 주차 문제도 있었다.

숙소에 짐을 겨우 풀어놓고 마트에서 사온 전복, 햇반, 라면 등을 정리해 넣었다. 엄마도 나도 잠을 두시간밖에 못 잔 상태로 오후 4시쯤 되니 기진맥진하였다. 가까울 줄 알고 우선 비자림부터 가보자고 나섰는데 웬걸, 30분이 넘게 걸리는 것으로 나왔다.

비자림은 짧은 코스, 긴 코스가 있는데 긴 코스는 한 시간 반 정도 걸리는 평지길이었다. 중간에 짧은 코스로 돌아나올 틈이 있었는데 엄마가 더 가보고 싶어해서 그냥 쭉 돌았다. 마지막 30분은 내가 뭘 보고 있나 몽롱하게 꿈 속에 있는 기분이었고, 아침에 못 마신 커피 생각만 간절히 났다. 엄마가 뭐라고 잔소리를 하든 말든 커피를 사먹으러 입출구에 있는 매점 겸 카페를 갔는데 커피 기계를 이미 끄셨단다. 다행히 아무 편의점이나 찾아서 드디어 남(이)타(준)커(피)를 먹을 수 있었다.

숙소에 돌아와 피곤해 죽겠으나 다음날을 위해 전복을 따고 죽을 한 대접 끓였다. 참기름을 들이부으니 정말 맛있었다.

다음날, 과연 비바람이 몰아치고 있었다. 우산으로 막아질 게 아니었고 우비가 있어야 덜 불쾌하게 다닐 수 있을 것 같았다.

함덕에 있는 소품샵에 가서 이런 저런 걸 구경하다가, 나름 귀엽고 비닐도 후들후들 두꺼워 질이 좋기에 우비를 샀다. 헝가리 가서 입고 다니면.... 생각만 해도 길거리 시선 집중일 것 같다.

비를 뚫고 찾아간 감귤밭. 비가 와서 그런지 거름 냄새가 더욱 세게 코를 찔렀지만 투둑투둑 우비와 타이백 위로 떨어지는 빗소리를 들으며 귤 따는 재미는 독특했다. 엄청 달고 맛있어서 실컷 먹었다.


주차장에 세워진 차 중에 하, 허, 호로 시작하는 렌터카가 하나도 없어 현지인 맛집이겠구나 하고 들어간 중국집. 예상대로 정말 맛있었다. 크든 작든 섬에 가면 꼭 중국음식이 먹고싶다. 면이 엄청 쫄깃했다.

근처에 폐교를 개조해 만들었다는 카페에 가서 옛날에는 교실을 잇는 복도로 쓰였을 자리에 앉아 커피를 마셨다.



교문에 있던 반가운 이순신 장군님.



곳곳이 사진 핫스팟이었던 산양큰엉곶. 비자림만큼, 혹은 그보다 더 만족스러웠다. 정말 정성들여 잘 꾸며놓았고 구조물들이 하나도 조악하지 않아, 비오는 날을 오히려 운치있게 느끼게 해주었다.

6시 공연에 맞추어 찾아간 아트 서커스. 엄마는 상하이에 갔을 때 원조 공연을 봤다는데, 저 오토바이 도는 묘기는 하나하나 추가되는 게 나름 반전이었건만 스포를 당하고 말았다. 너무 어리고 너무 위험한 묘기가 많아 손에 진짜 땀을 쥐고 봤다.

갈치조림 맛집이라는 데에 가서 나는 밥을 세 그릇(...)이나 먹었다. 공기에 꽉 채워 안 담아줘서 한 공기가 한 공기가 아니라고 구차하게 설명했지만 엄마한테 나는 그냥 돼지가 되고 말았다. 구이보다는 조림이 훨씬 실하고 맛있어서, 세트 말고 갈치조림 2인분 시킬걸 했다.

숙소 티비는 넷플이나 유튜브가 되지 않는 일반 tv라서 하는 수없이 ebs를 틀었다가 세계테마기행이라는 프로에 푹 빠지고 말았다. 제주도는 해가 지고 나면 갈 곳도 할 것도 없어서 강제로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났다.

다음날, 엄마 세대가 좋아한다는 평이 많은 개인 소유 박물관에 갔다.

나도 어렴풋이 기억날 것 같은 포니가 입구에 있었고.


이런 것들이 많았는데 잘 모르는 내가 봐도 그냥 재밌었다. 엄마가 옛날 집 생각이 난다고 엄청 좋아하는 듯 했다. 영화 극장이 있는 시내를 재현한 세트에서는 교복을 대여해서 입은 어른들이 신나게 트위스트를 추었다.

녹차밭 옆 카페에 가서 족욕도 했다. 이거 너무 좋아서 사오고 싶었다. 엄마 잔소리가 싫어서 그냥 곧장 나왔다.

유람선은 헝가리에서도 많이 탔고 멀미가 좀 걱정됐지만 엄마가 은근히 아쉬워하는 거 같기에... 서귀포까지 내려갔다. 근데 이때부터 날이 개기 시작하더니 바다도 잔잔해졌다.

서귀포 유람선은 의외로 정말 탈만하다. 왜냐면 유람선 선장님이 진짜 웃기기 때문이다. 세대가 달라도 같은 말도 그냥 웃기게 하는 신이 내린 재능을 가진 사람들 있잖은가. 그런 분이었다.


게다가 이 절경은 말할 것도 없고. 우리나라 정말 없는 게 없는 너무 좋은 나라..


민속촌에 가서 진짜 변소 옆에 살았다는 흑돼지도 보았다. 이게 이날 마지막 일정이었고, 숙소에 가기 전 고기를 구워먹고 함덕 해수욕장을 산책했다.

이제 벌써 마지막 날.

다음날 갔던 카페 서귀피안 베이커리. 고르곤졸라 바게트와 소세지빵을 먹었는데 바게트가 진짜 너무 맛있어서 놀랐다. 커피로 정신을 좀 차린 뒤에 바로 우도로 가는 배를 타러 성산항에 갔다.

친구랑 왔을 때 타본 기억이 있는 전기 바이크. 노후된 것은 언덕에서 밀린다는 공포의 후기를 본 후에 좋은 차만 갖춰놓고 있다는 업체를 예약했다. 전기차 렌탈 업체는 대부분 천진항 앞에 몰려있는데 여기는 하우목동항에 위치해 있었다. 매표소에서 분명히 오늘은 바다가 잠잠하지 못하여 하우목동항으로 가는 배만 있다고 했는데..... 내려보니 천진항이었다. 다행히 업체가 아는 분께 부탁하여 픽업을 나와 주셨다.

진지하게 세상에서 제일 예쁜 바다라고 생각한다.


어찌나 더웠는지.


우도 왔으니까 땅콩 아이스크림은 먹어봐야했다. 나는 땅콩 아이스크림이 느끼하면 입가심하려고 한라봉을 시켰다. 궁합이 잘 맞았다.


우도에는 식당이 많은데 칼국수를 맵게 잘한다는 집을 찾아갔다. 칼국수가 진짜 진짜 진짜 맛있었다. 소라 비빔국수도 뿔소라가 넉넉히 들고 매콤달콤해서 먹기에 좋았다. 평범하다고 느낄 수 있는 흔한 양념이지만 나에게 이젠 뭐든 흔하지 않다.

 

신혼여행지를 제주도로 왔었다던 엄마가 계속 천지연 폭포 이야기를 하기에 일정이 조금 애매했지만 다시 남쪽으로 향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서귀포 유람선 타고 바로 구경하고 갈걸 잘못했다. 평일 늦은 오후 서귀포에는 현지 사람들이 많은 듯 했다. 태권도 학원이 이제 막 끝난 아이들, 퇴근 후 외식을 하러 가는 듯한 어른들.

 

천지연 폭포 입구 앞에서 십원빵을 팔고 있었다. 한때 열심히 챙겨 보던 경상도 호소인 시리즈에서 보고 어찌나 먹고 싶었는지. 충분히 예상이 되는 맛이고 예상에서 벗어나지 않았으나, 허겁지겁 먹었다. 십원빵을 굽는 동안 수학여행 온 여학생들이 왁자지껄 지나갔다. 

 

 

인파에 밀려 구경 못하면 어쩌지 했으나 밀물 썰물처럼 금방 빠져나갔다. 저 폭포를 배경으로 고개를 젖히면 마치 폭포를 마시는 것 같은 착시효과로 재밌는 사진을 찍을 수 있다. 학생이 각도와 위치를 잘 알려주고 갔다.

 

서귀포 폭포 주차장에서 공항을 찍어보니 1시간 30분, 퇴근길 정체가 합해지면 2시간으로 늘어날지도 몰랐다. 서둘러 올라가는 길, 아니나 다를까 공항을 10km 남겨놓고 주차장같이 줄이 늘어서 있었다. 일찍 출발하길 다행이라고 하며 공항에 도착했다.

 

김포공항에서 수원으로 가는 10시 30분 버스를 예약해 두었는데, 비행기 지연 소식에 한발짝 늦게 확인해 보니 11시 막차는 이미 다 매진 상태였다. 그러게 가는 날 비행기를 왜 이렇게 늦게 잡냐는 잔소리가 다시 시작... 될 조짐이 보여 조마조마하게 계속 새로고침을 하여, 결국 비행기 타러 줄 선 동안에 겨우 막차를 잡을 수 있었다.

 

4일 동안 서로 취향도 안 맞고 하고 싶은 것도 다른 엄마와 내가 서로 힘든 일도 있었겠지만, 헝가리 돌아가서 아이폰이 자동으로 '추억을 떠올려 보세요' 하며 선별해주는 사진을 보면 또 이때가 그리울 것을 이미 안다.

 

두 사람 니즈를 다 충족해준 제주투어패스에 무한한 감사 인사를 올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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