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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0월 한국 휴가 (1) 대한항공, 농라 가리비 새우, 유진순대, 신알쌈쭈꾸미가, 진구곱창, 꼬시꼬시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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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0월 한국 휴가 (1) 대한항공, 농라 가리비 새우, 유진순대, 신알쌈쭈꾸미가, 진구곱창, 꼬시꼬시

여해® 2024. 10. 31. 1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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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타는 장거리 이코노미 비행기. 대한항공은 어쩌다보니 처음 타보게 되었다. 출발부터 살짝 지연이 되었다.

기내 상영 영화 중에 노량이 있길래 한 편을 다 봤다. 나도 이순신 장군님이 계신 우리나라로 돌진한다! 역사가 스포인지라 돌아가실 거 알고 봤지만 마지막에 울었다.

기내식 안 먹고 잘 거라던 다짐이 무색하게 앞에서 비빔밥이 다 팔릴까봐 조마조마하며 기다리게 되었다. 밥은 굉장히 맛있었고 와인도 괜찮았다. 아침만은 굶으리라 했다가 죽이길래 받아본 흰쌀죽은 놀랍도록 맛있었다.

영화는 더 보고싶은 게 없었고 대신 이북으로 다운받아둔 나의 아름다운 정원을 10년만에 다시 읽었다. 다
알고 읽는 거니까 괜찮겠지 했는데 너무 슬퍼서 거의 대성통곡을 하고 싶었다.

가운데로 자리를 잡으니 움직이기는 편했어도 한국 도착하며 만나는 영종도 풍경이 안 보여 뭔가 빠진 듯했다. 옆자리 분들은 “이제 일상으로 돌아왔다” 라고 하는데 그 말에서 익숙한 생활과 터전으로 돌아온 사람 특유의 안도감과 아쉬움이 동시에 느껴졌다. 나는 이제 여행 시작이다.

한국에 와서 가장 한국다움을 느낄 때는 거리감 없이 붙어대는 사람들에 치일 때다. 너무 사랑하니까 미운 점부터 보이는 것이다(?). 그리고 깔끔히 청소된 실내에서 맞이하는 쾌적함. 뭘해도 좋다고 웃을 기분이었지만 내 또래 여자가 내 발을 밟고는 “어머 어이쿠 아 아임 쏘리!” 하는데 발이 밟힌 것보다도 아무리 공항이고 비행기에서 머리가 많이 쩔어버렸대도(?) 나한테 영어를 쓰는 게 서운해서 괜히 대답도 못했다. 사람들이 다 빠릿빠릿하고 나만 느림보가 된 것 같아 심지어 버스 매표 기계도 날 안 기다려줄까봐 허둥지둥했다.



여기가 사는 내내 똥물이라고 무시했던 그 서해가 맞는가. 모든 것이 크고 새 것같고 본새나 보인다. 지나가는 차 번호판이나 광고가 한국어인 것에 조금씩 놀라고 또 그런 내가 참 꼴값이지 싶다. 살면 얼마나 살았다고요..

한 시간을 달려 서수원터미널에 도착했다. 엄마만 이마트 장볼겸 나와주었고 강아지는 같이 안 나왔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택배로 시켜뒀던 가리비, 새우를 쩌서 애피타이저로 먹고 중국집에 가서 간짜장 반그릇, 탕수육 반그릇씩 엄마와 나눠먹었다.

근처 시장에 갔는데 게가 제법 크기에 세마리를 샀다. 저번엔 못 가본 스타필드를 가서 구경하고 집에 돌아와 아빠하고 게를 쪄서 나눠 먹었다. 걸어다니고 서있으면 멀쩡하다가 앉거나 누우면 피곤이 몰려왔다.


이튿날.

자고 일오나니 엄마아빠는 연주회를 보러 갔고 나는 친구와 점심에 안양에서 보기로 했다. 10분만 더, 10분만 더 하다가 겨우 몸을 일으켜 부엌으로 나오니 전날 쪄먹은 꽃게 냄새가 집에 은은히 배어있었다. 이맛이 아무리 그리워도 비린내는 늘 달갑지가 않다. 서둘러 샤워를 하고 나섰다.

스타필드 때문에 전철역까지 가는 게 예전보다 훨씬 오래 걸렸다. 어딜 가도 30분 컷인 생활에 익숙해져 고작 수원에서 안양 가는 게 1시간이 걸린다는 사실을 가는 길 위에서도 믿을 수가 없었다.


간만에 먹는 백순대. 생각보다 간이 세지 않아서 막걸리랑 먹으니 무슨 맛인지도 모르고 술술 넘어갔다. 친구랑 대학 시절에 신림에 헌책 사러 간 얘기를 하면서 세월을 통감했다.

제부만 있을 동생네 가게에 불쑥 처들어가 아메리카노를 먹었다. 친구가 오만원짜리 지폐를 제부에게 밥사먹으라고 줘서 너무 미안했다. 동생네 가게는 의외로 초등학교 저학년생들이 단골이자 큰손 계층이다. 키가 카운터좀 넘는 수준밖에 안 된 어린 애가 레모네이드, 아이스초코, 쿠키에 토스트까지 순식간에 2만원을 긁는 것을 보고 신기해 말을 걸어봤다. 야 너 부자구나. 하니까 엄카찬스라는 자랑부터 시작해서 옆에 친구랑은 벌써 5년 단짝이라기에, 나는 친구랑 17년 친구고 넌 17년 살아도 못 봤지? 하니 우와 하고 입을 다물었다. 내가 이김(?)

제부 눈치가 보여 과연 카페 알바를 할 수 있을까 싶지만 보건증 검사를 하러 갔다. 식음료 종사자들이 1년에 한 번 해야하는 검사치곤 가혹하다. 면봉 나눠주는 젠지 세대 직원이 몹시 차가워서 괜히 더 상처받는 기분이었다.


동네에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맛집. 알쌈이 무제한이다. 헝가리에서는 돈을 줘도 못 구하는 깻잎과 날치알이니 안 갈 수가 없다. 저녁 약속이 따로 있었지만 가서 사장님께 오랜만에 인사 드리고 혼자 먹었다.


건강보험공단에 전화해서 보험 재개시를 신청하고 바로 적용이 되어 (놀라운 우리나라의 속도) 집앞 한의원에 가서 침, 추나치료를 받았다.

저녁에는 제부까지 여섯식구가 다 모여 동생 지인이 얼마전 개업한 가게에 가서 삼겹살 막창 등을 먹었다. 의외로 껍데기가 맛있었다. 김치말이국수를 시켰는데 다들 안 먹는다 해놓고 내 것을 한입씩 뺏어먹어서 싫었다. 밥먹고 나와서 동생네 부부랑 슬렁슬렁 걸어 파리바게트까지 갔다가 문닫은 것을 보고 나만 제부 카드와 동생 해피포인트를 털어 베라 요거트31 싱글콘을 사먹었다. 집에 오니 허리가 안 펴질 정도로 배가 불러서 후회되었다.

새벽 세시까지 회사일을 하다가 늦게 잤다.

이튿날.

12시가 다 되어서야 이모랑 할머니가 온다는 소리를 듣고 겨우 일어났다. 집에서는 혼자 아무렇게나 입던 라이언킹 잠옷이 남앞에서는 너무 헐벗은 느낌이 든다. 예전에 자주 가던 행궁동 즉석떡볶이 가게 배달을 시켜 집에서 끓여먹었다. 직접 가서 먹는 것이 아니라 그런지 예전 맛이 하나도 안 났다.

오랜만에 7770 버스를 타고 사당역까지 갔다. 강남역에서 약속이 있어 가는 길이었다. 회사에서 다급한 연락이 왔고 사당역에서 내리자마자 통화를 했다. 영어로 그 사람 많은 길거리에서 어쩌고 하려니 너무 창피해서 밥맛이 다 떨어졌다.


오늘 만난 사람들은 전회사 사람들이긴 하나 구성이 다소 특이하다. 언니 한 명은 내 자리에서 일하시다가 퇴사하고 한달 뒤에야 내가 입사하여, 서로 일한 기간이 겹친 적도 없는 사람인데 이렇게 몇 년째 친하다. 키보드 회사로 이직한 과장님(이젠 차장님)도 마침 근처 팝업스토어에 있다가 40분쯤 놀다 갔다. 회사 사람들과 때론 시트콤같이 때로는 학생들같이 우당탕탕 한 마음으로 일하곤 했던 예전같은 시절은 다신 안 온다.


2차로 간 횟집. 강남역에서는 웨이팅이 기본 100분이 넘는다기에.. 교대까지 갔다. 세꼬시였으나 뼈 없이 막썰어서 주셔서 편하게 먹었다. 광어가 먹고싶었으나 듣던대로 광어가 귀해진 건가, 대신 우럭을 먹었다. 애엄마인 언니가 오늘은 아이를 동생네 맡기고 와서 3차까지 갔다. 위스키바였는데 혹시 이상한 곳인지 망설이는 모습이 참.. 또 오랜만이라 은근히 재미있기도 한 것이다. 다행히 그냥 위스키가 너무 좋아서 하시는 듯한 나이 지긋한 남자 사장님이 있는 바였다. 내가 칵테일을 쏟고 말아서 역정을 조금 내셨다. 너무 죄송하다고 쩔쩔 매니까 언니들이 oo아, 여기 한국이야, 했는데 나는 우리나라니까 그래도 다정한 짜증이라도 내신 거라 생각한다.

집에는 친구와 택시를 나눠타고 갔고 공동현관 비밀번호가 바뀐 것을 깜빡해 서성거렸다. 어떤 아저씨가 나를 수상하게 보시며 비번을 눌러 들어가시길래, 저기 제가 이상한 사람이 아니구요, 해외 살다 부모님 집에 지내고 있는데 비번을 몰라서요.. 하고 구차한 변명을 하는데 아무 대답도 안 하고 그냥 앞만 보셔서 더 구차해졌다. 차갑고도 다정한 우리나라. 냉탕 온탕을 오가게 하는 나라. 한여름엔 푹푹 찌고 겨울에는 쌩쌩 얼려 사람들을 찐만두 냉동만두 만드는 우리나라.

이렇게 사흘만에 완벽히 재적응하고 제주도 갈 생각에 잠을 못이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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