옆집
난중일기 105 (20250428-20250503) 본문
2025.04.28. 월요일
부다페스트, 맑음
시차는 정말 완벽 적응이다. 7시면 눈이 떠지고, 회사 다니던 것처럼. 담요 하나 덮고 자는데 이게 더 마음이 편하다. 애착이불마냥 독일까지 들고갈까 싶다.
어디서 났는지도 모르는 인스턴트 가루 커피를 냄비에 물 끓여 타먹고, 엉망진창이 된 집 한가운데 대충 서서 밥을 먹었다. 아몬드를 먼저 먹고 햇반, 오렌지치킨 (무슨 조합?..)을 먹었다. 일단 기운을 내고 싶었다.
그래도 자고 났더니 머리가 맑아져서 짐 정리에 속도가 붙었다. 빨래 건조대 등 팔기도 뭐 어쩌기도 귀찮은 것들 다 나눔하기로 예약해두고. 마사지 회원권 끊어둔 것도 점심에 가서 털었고, 마사지를 받으면서 지난 기억이 떠올라 힘들어 하고. 스타벅스에서 마차 라떼 그란데 사이즈를 주문해 먹고. 빅맥을 사먹었다. 집주인이 세입자 후보들을 데리고 저녁에 온다기에 또 부랴부랴 청소하고… 집주인이 오는 게 귀찮기는 해도 시간의 압박 덕에 또 한 단계 나아간 셈이다.

욕조에 어차피 못 가져갈 조말론 바디워시를 잔뜩 풀고 아주 호화롭게 목욕했다. 중간중간 괴로움이 몰려와도, 지금 당장은 당연히 힘들고 당연히 극복하기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했다. 사무치게 슬프다가, 후회하다가, 원망스럽다가, 천사라도 된 듯 모든 걸 이해했다가. 반복 속에 언젠간 이 천불이 사그라들까.
더 누워있고 싶어도 저 많은 짐을… 어찌하나… 꾸역꾸역 일어났다. 정말 고되고 힘들다. 차라리 몸이 힘들어서 다행이다.
2025.04.29. 화요일
부다페스트, 맑음
제주도에서 못했던 수영을 꿈에서 했다. 물이 차가워 깼다. 여전히 눈물은 안 난다.
눈을 뜨니 6시 30분. 청소팀이 7시 30분에 오기로 했으니 졸다 깨다 하면서 버텼다. 청소하시는 분들께 문 열어 드리고 바로 회사에 모니터와 열쇠를 주려고 걸어가는데 현지인이 놀라며 너 지금 이 무거운 걸 들고 어디까지 가는 거니? 라고 말을 걸었다. 별로 안 무거운데. 친절하기도 해라.
아무리 생각해도 과장님한테 너무 민폐를 끼치는 것 같다. 그냥 호텔에서 잘걸 그랬나. 하지만 내일 아니면 언제 또 만날지 모르고 저녁 시간을 함께 보내고 싶다.

청소는 잘 끝났다. 집주인이 까다롭게 굴고 있어 덩달아 나까지 깐깐해져 열심히 검수를 했다. 한국인 사장님이 마지막에 오셔서 최종 점검을 해주셨고 든든했다. 독일 간다는 말엔 모두 입을 모아 칭찬한다.
정말? 내가 정말 잘 된 건가. 다들 내가 잘 사는 줄만 알겠지. 겉보기엔 그렇겠지. 독일도 회사도 내가 그렇게나 바라던 삶인데 내 마음은 왜. 큰 구멍이 뚫린 것 같다. 다신 채워질 수도 없을 만큼 아주 크게.
후배네 주소로 택배를 보내기로 하고 뒤늦게 dpd를 예약했다. 하루만 더 일찍 할걸. 이렇게 마지막 순간까지 쫓기는 버릇은 왜 고쳐지지도 않을까. 완벽주의? 그냥 게으른 거다. 대기시간 17분을 보내고 겨우 고객센터와 통화했다. 회사가 대주니 전화며 기름값이며 모든 게 무제한인 것 같던 삶이 끝났다. 이젠 통화 몇 분에 선불요금 날리는 것 가지고 가슴이 쫄린다.

Dpd 부치러 가서 온갖 곳을 헤맸다. 저렇게 조그맣게 붙어있으면 내가 어떻게 찾냐구..



마지막인데 그래도 삐앙 한 번 가야지. 맥주에 곱창국수를 먹었다. 3만원이 나왔다. 언제 먹어도 놀라운 가격. 한국에서는 소주 5천원 보고 너무하다 해놓고 여기서는 맥주 330ml에 6천원씩 잘만 쓴다. 면+맥주 혈당스파이크 때문에 잠이 쏟아져서 우선 동네로 후퇴했다. 너무 일찍 일어나기도 했고. 청소는 내가 하지도 않았는데 왜 이렇게 피곤한지 모르겠다.

3-4월 한국 다녀오면 열려있고 또 9-10월 다녀오면 닫혀있던 젤라또 가게. 매번 망고맛을 먹다가 오늘은 커피맛을 고르는 변덕을 부렸다. 역시 변덕은 부려서 좋은 일이 별로 없다.
회사에 안 그래도 나 잘 살아있고 곧 간다고 연락을 해보려 했는데 메일이 먼저 왔다. 상세히 쓰여진 건물 출입 방법을 보니 조금씩 실감이 나서. 회사원 다시 할 것이 착잡해서(?) 동네를 계속 걷다가 브런치 카페에 갔다. 평일 이 시간은 한산해서 운 좋게 창가 자리에 앉았다. 원래는 커피 한 잔만 하려고 했는데 좋은 자리 차지한 것이 부담스러워 음식도 시켰다.


백수 생활 사흘 남았으니까 평일 낮술도 오늘까지다. 샤도네이를 시켰다. 꽃향과 쓴맛이 심하긴 해도 잘 마셨다.

아마 딱 여기. 집 구하러 다닌 게 10월인가 그랬으니까… 지금보다는 덜 푸르렀을 텐데. 바람에 부딪히는 나뭇잎 소리와 사이사이 쏟아지는 햇빛, 어린 날 피아노 연주하며 상상만 해보던 도나우강까지 모든 게 다 마음에 들었고. 집세 비싸기로 악명높은 마리나 파트는 생각도 안 하고 있다가 충분히 그 이상의 가치를 한다고 믿게 해준 이 산책로. 3년간 내 정신건강을 지켜주고 든든한 쉼터가 되어준 곳. 장소에 새기는 기억과 애착은 너무나 큰데, 동네와 사는 집 만큼은 헝가리 생활 중 거의 유일하게 운이 좋았다. 고마운 일이다.
우편함에 다행히 TK에서 보낸 보험 카드가 도착해있었다. 오늘까지 안 왔으면 꼼짝없이 분실 신고하고 다시 발급 받아야 했을 텐데 뭔가 독일 관련된 행정처리는 일사천리로 이뤄지니 신기하다. HR팀에 보험 번호 발급된 내용을 보내면서 뭐가 더 필요하냐고 했더니, 다음주에 하자 우리 아직 시간 많잖아~ ;) 라고 답장이 왔다. 내가 또 너무… 질리게 빨랐나. 외국인인데다 비자도 없는 날 기다려준 회사에 폐끼치고 싶지 않을뿐이다.
목욕을 하다가 오늘이 야경 볼 수 있는 마지막 날이라 나왔다. 메트로 타고 데악페렌츠로 가는 길에 갑자기 금요일 첫 출근이 걱정 되어서 처음으로 입사할 회사 건물의 로드뷰를 봤다. 허허벌판 건물 위 당당한 로고를 보니 숨이 턱 막힌다. 내가 저기서 정상인 코스프레를 몇 개월이나 할 수 있을 것인가… 내가 일은 잘할 수 있을까. 난다 긴다 하는 사람 중에 바보 질량 보존의 법칙에 따라 바보 자리를 내가 채우게 된다면..? 그치만 나는 잘하겠지 뭐(?).
잘 신고 다니던 신발이 갑자기 뒤꿈치를 아프게 해서 당황스럽지만 꾹 참고 걸었다.


내 소원을 두 번이나 들어준 나만의 소원 명당이다. 무엇을 빌어야 할지, 내가 원하는 게 뭔지 모르고 1유로를 던졌다. 그냥, 독일 가면 그냥 좀 살게 해줘.

많이 본 야경보다는 저물녘이 더 예쁘고 귀했다. 부다페스트가 이렇게 예뻤구나.

부다성 뒷길에는 제 시간을 다 누리고 간 벚꽃 대신 산사나무 꽃이 피었다. 공기중에 꽃냄새가 사방팔방 진동을 하였다.


어부의 요새까지 걸어가 스타벅스에서 커피를 마셨다. 자리가 웬일로 텅텅 비어있고, 기괴한 도깨비같은 마스크를 보며 이사님, 신입과 놀라고 웃었던 예전 생각이 났다. 다시는 그렇게 대화할 수 없고 내 퇴사는 그렇게 회사와 나에게 끝까지 고통이었고. 누군가의 한 번 다친 마음은 영영 돌이킬 수 없고.
택시를 타고 강식당에 가서 갈비탕이나 먹으려 했는데 메뉴에 갈비탕이 아무리 봐도 없길래, 여쭤보니 이제 안 한다고. 이게 뭐라고 한 시즌이 끝나는 기분. 정말 떠날 때가 됐구나. 나를 잘 대해주시던 사장님으로부터 또 한 번 나의 독일행에 대해 온갖 축하를 받았다. 이젠 그럴만한 일인가보다 한다.
나와서 강가를 따라 걷는데 너무나 얇은 선이 그인 것처럼 달이 줄어들어 있었다. 한국에 갈 때만 해도 꽉 찬 보름달을 하늘 위에서 한참이나 바라봤는데. 바짝 자른 손톱처럼 작게 사라졌다. 벌써 그만한 시간이 지난 것이다.
차고, 지고, 차고, 지고 반복하다보면 나도 더는 밤에 하늘을 올려다보지 않고, 어쩌다 봐도 아무렇지 않고, 눈코뜰새 없이 바쁘거나 즐거운 와중에 ‘아 그랬었지’ 무던히 회상할 수 있을까. 저렇게 영구적인 것에 엮어 의미를 부여하면 안 됐는데 나는 어쩌자고 겁도 없이 나를 다 열고 받아들였을까.
0번 선착장을 지나 계속 걸었다. 정리되지 않을 생각이면 그냥 허공에 흩어버리려고.

가던 길에 그네를 발견하고 30분 정도 탔다. 달이 질 때까지. 독일에서 밤에 혼자 이러는 건 상상도 못할 짓이겠지. 여기서의 하루하루가 얼마나 자유롭고 소중했는지 이제야 깨닫는다. 버스를 타고 집에 돌아왔다.
마음이 힘드니까 말이 많다. 뭐 어때, 이렇게라도 살아야지. 내 일기는 내가 살고자 쓰는 처방이고 치열한 기록이다.
2025.04.30. 수요일
부다페스트, 맑음
애플워치가 6시 30분부터 울려서 깼다. 꿈에 오랜만에 대학 동창들이 다 나왔다. 집주인은 아침부터 왔고 집 상태를 보더니 만족한 듯 함박웃음이다. 청소 안 된 부분이 하나 있어 그것 빼고는 잘 마쳤다. 저녁까지 있게 해준다고 해서 다행이다.
중간중간 생각나고 괴롭다. 대화했던 것과 마지막 마무리까지 전부 다. 당장은 내일 독일 넘어갈 일이 더 큰 걱정이라 금방 뒤덮이고, 다시 생각나고 반복이다. 스트레스로 식탐만 도졌다. 컵누들을 두 개나 먹고.. 스타벅스에서 말차라떼를 사다 먹었다.
한인업체에 연락해 공항 픽업을 신청해두었다. 플스는 친구한테 맡기고 가기로 했다. 이렇게 부다페스트 올 빌미를 남겨두는 것도 좋겠지.

친구 공유오피스 계약 과정을 기다려주고 근처에서 나는 와인, 친구는 맥주를 마셨다. 여자 둘이 오로지 술만으로 15,000포린트를 썼다.

눈이 번쩍 뜨이게 맛있었던 젤라또. 친구네 와서 플스 찾아갈 때 또 먹어야지, 벨지안 초코.
강식당에서 과장님네 부부에게 삼겹살, 소고기를 사주었다. 호텔비가 이것보다 싸지 않아요? 하시는데 웃겼다. 한 것도 없는데(?) 피곤해서 일찍 씻고 누웠다. 카톡을 보다가 무너져내렸다. 앞으론 절대 취하지 않겠다.
마지막 밤이다.
2025.05.01. 목요일
부다페스트->에쉬본, 맑음
새벽에 모르는 사람이, 그러나 익숙한 시간대, 익숙한 이니셜이 보이스톡을 걸어와 심장이 떨어지는 줄 알았다. 그러나 공항 픽업 한인업체였다. 에쉬본에서 자전거 대회(하……..)같은 걸 하느라 도로가 통제되어, 공항 픽업은 다섯 시 이후에 하겠다는 얘기였다. 멀쩡한 척 통화했으나 비몽사몽이라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침에 일어나서 제가 기억하는 게 맞냐고 되물었다. 새벽에 오는 전화, 그로 인한 순간의 기대감과 집착. 이상하게 눈물은 한 번도 안 난다.
아침에 씻으면서 남은 샴푸와 가글액을 탈탈 털어 쓰고, 왜인지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과장님 와이프표 커피를 마지막으로 얻어마시고, 급 떠나는 프라하 여행 계획을 같이 고민해주고, 우버를 불렀다.

그래도 3년 살림이 이정도로 정리가 된 건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여러 도움을 받았고 돈도 많이 썼지만 그래도 처음으로 이렇게 정해진 시간 안에 모든 짐을 빼야 하는 이사를 해봤다. 한국에서 독립할 땐 세월아 네월아 옮겼었는데. 날씨가 정말 구름 한 점 없이 맑고 바람까지 좋아서 자전거 대회… 아주 좋겠네.

택시에서 내리는 순간 저 짐 다 끌고 갈 생각에 제발 느리게 가라… 느리게… 빌었다. 그러나 시간은 늘 사람 갖고 장난하는 것 같이, 느리게 가라 빌면 빨리 가고 빨리 가라 싶으면 늘어지는 법이다. 공항은 거의 늘 매번 내 차 끌고 누구 내려주거나 태우거나 혹은 주차장에 세워놓고 여행 갈 때만 왔지, 이렇게 떠나는 날이 올 줄 몰랐다.
위탁 수하물은 각각 29kg, 26kg가 나왔다. 원래 규정이 몇 키로까지였는지 몰라도 Heavy 택만 붙이고 추가 요금 얘기는 없었다. 보안 검색대도 아무 걸림없이 통과하고나자 긴장이 풀려서 라운지에서는 코코넛 케이크에 와인만 두 잔 마셨다.

가는 길에 마리나파트 한 번 더 볼 수 있을까 했지만 방향이 다른 듯 했고.

기내식은 거의 매번 돌려보내는데, 이날따라 왜 이게 엄청 맛있었는지 모르겠다. 화이트와인에 후식으로 커피까지 챙거먹고.

독일 풍경은 정말 다르다. 뭘 저렇게 노란 걸 잔뜩 심어놨나 했더니 카놀라유 원료로 쓰기 위한 유채꽃이란다. 제주도에서 한줌 본 아쉬움을 이렇게 달랜다.

한인업체가 픽업을 다행히 금방 오셔서 카트에 바리바리 싣고 겨우 게이트까지 나갔다. 좀 헤매고 엇갈리기도 했지만 뭐라도 타고 갈 수 있는 게 어디냐 싶었다.

임시숙소는 깔끔하고 단순하다. 체크인 할 때 핀코드가 안 먹히고, 리셉션은 평일 12시~14시 운영이래고. 무인이 판을 치는 시대에 젊은 나도 이런데 어른들은 어떻게 살아가나 싶다. 겨우 겨우 긴급전화가 연결되어서 잘 들어왔다.
퀸 쓰다가 싱글 침대 누워보니 떠돌이 생활이 확 실감났다. 외롭고 막막하고 앞으로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고. 내일 출근이라는 게 너무 가혹하게 느껴지고.


후배가 여행 간 동안 키워달라고 깻잎을 맡기러 왔다. 밤식빵에 커피를 마시며 얘기했다. 생수, 냉동 볶음밥도 갖다주어 요긴하게 챙겼다.
2025.05.02. 금요일
에쉬본, 맑음
첫 출근했다. 첫날이니까 좀 널널하겠지 싶었는데 무슨.
큰 회사의 작은 지사는 다녀봤지만 정말 이렇게 큰 회사는 처음이라서 기가 죽는다. 그동안 회사 헛다녔단 생각까지 든다.
모모롤에 가서 참치김밥이랑 떡볶이를 사왔다. 그러나 거의 먹지 못했다. 오이…. 오이. 빼달라고 해도 왜 매번 넌 거기 들었니.
울지 못했던 마음이 터져 새벽까지 전화를 붙들고 울다가 웃다가 했다.
2025.05.03. 토요일
에쉬본, 맑다가 천둥번개
차 있을 땐 지척처럼 느껴지던 곳에 패기있게 걸어갔다가, 인터넷도 안 되는 핸드폰으로 고생을 했다. 인도가 끊어지질 않나. 차 없이는 도무지 못 살겠다.
회사 유심을 아이폰에 꽂겠다는 생각은 어제 하루 출근해서 보안의 보안을 겪어보니 정말 터무니 없었고.. 알디에 가서 알디톡 유심을 사와서 개통했다.
2025.05.04. 일요일
에쉬본, 맑음
얘기해볼수록, 살아갈수록 나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 모르겠다.

예전 회사 동료와 브런치를 먹었다. 모로코식이랜다. 건강한 맛이 아주 좋았다. 내가 아는 사람 중에 가장 합리적이고 다정하고 행복한 사람 중 하나인데 같이 있으면 나도 밝아진다. 힘든 티를 내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이런 데에서 와인도 마시고. 이렇게 조금 조금씩 행복할 것도 같다.
겨우 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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