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중일기 104 (20250421-20250427)
2025.04.21. 월요일
서울, 맑음
이번 한국 휴가는 남길 것이 없다. 일기라도 다시 써야겠다.

좋아하는 친구를 만나는 날이다. 노량진까지 갔고 내가 제일 좋아하는 꽃게를 먹는데 흥이 하나도 나지 않았다. 공허하고 겉도는 얘기만 하다가 결국 너무 힘들어서 한국에 다시 돌아올까 고민을 진지하게 한다고 털어놨다. 그래도 친구 덕에 좀 웃고 하니까 별일 아닌 것처럼 생각이 되고.
예전에 과외하던 분을 만났는데 낮에 먹은 꽃게 때문인가 속이 계속 안 좋고 힘이 들었다. 결국 내 상태 때문에 일찍 헤어졌다. 죄송해 미치겠는데 자포자기 심정이 되었다.
강남은 내 집 같이는 아니더라도 수시로 드나들던 곳인데 엉엉 울다 보니 어딘지 알 수가 없고, 회개하라 주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라 소리가 울려퍼지는 거리를 피해 도망치듯 걷다가 할리스 앞인 것만 알았다. 친구에게 위치를 찍어 보냈고 일 끝나고 날 데리러 왔다. 놀란 얼굴이긴 했으나, Hey, what’s up? 하는 게 너무 교포 그 자체라 웃기고 갑자기 다 별것도 아닌 거 같고 눈물이 그쳤다. 친구네 집에 가서 배달을 시켰다. 나는 거의 먹지 못했지만 한국어보다 훨씬 서툴더라도 영어로 말하다 보니 일할 때의 자아가 돌아오는지, 정신이 들었고 내 루틴부터 되찾아오기로 했다.
2025.04.22. 화요일
수원, 비
아침에 비가 많이 내렸다. 친구에게서 우산을 얻어 나왔다. 친한 동생을 보러 가야 하는데 늦었고 꼴도 형편없었다. 동생 집에는 처음 놀러 가는 건데도 아무것도 못 샀고 아무 생각도 못했다. 나를 보자마자 얼굴이 너무 좋아졌다 연거푸 말하는데, 다행이라 해야 할지. 그전엔 얼마나 더 엉망이었던 건지. 나 온다고 준비한 것도 많고, 국중박에서 무드등까지 사놓고 그래서 너무 미안했다. 동생과 헤어지고 카카오톡 선물하기로 선물을 보냈지만 거절당했다. 우리 사이에 선을 긋지 말라면서. 오히려 선은 내가 그인 것 아닐까. 1월에 꼭 다시 만나달라고 구차하게 말했다. 구차할 수밖에 없다. 지금 주변에 하는 내 행동은 최악이야.
남은 날들 중 지금만이 최악이겠지, 나아질 일만 있을 테니. 딛고 일어나 걸을 수 있으려면 정신을 차려야겠지. 이렇게 무너질 수 없지.
수원에 돌아오니 비는 그쳤고 절에 들어가 앉아있었다. 친구가 올 때까지. 8시까지 10분을 남긴 때에 문 닫으신다고 쫓겨났다. 그야말로 버선발로 나와준 친구와 행궁을 산책했다.
2025.04.23. 수요일
수원, 맑음
8시간을 잤다. 이제야 나로 돌아왔다. 머리가 맑아졌다. 오늘 내일 그저 해결해야 할 일종의 업무 같은 거라고 생각하니 나아졌다. 드디어 머리가 제 기능을 하기 시작했다. 갈수록 차가워지고. 머리가 가슴을 이기고. 가족들과 시간을 못 보내 너무 미안한 마음은 내년 1월을 기약하고.
베리와 함께 있다가 친구와 저녁을 먹으러 나갔다. 중간에 한 번 위기가 왔지만 간만에 배불리 먹었다.
2025.04.24. 목요일
수원, 맑음
6시간 잤다. 아침 내내 일처럼 서류를 봤다.
늦어서 사당역까지는 택시를 탔다. 서초동은 변한 게 너무 많아서 향수에 젖을 틈도 없이 낯선 것으로 빼곡했다. 일 마치고 나와서는 어지러움증이 나 그늘 밑에 한참 서있었다. ‘빚은’ 떡집이 보여 생각하니 예전 그 집이 맞다. 인턴 시절을 생각했다. 아직 학생이기도 했고, 정직원이 너무 되고 싶었는데, 그것만이 유일무이한 목적이자 행복으로 여겨지던 날. 지금이 캄캄하면 천진난만하게 좋았던 옛날이라도 끌어와 덮어야 하니까. 전철 창문에 비친 내 얼굴을 똑바로 응시하며 내내 서서 갔다. 그렇게 보고 있으면 눈물이 조금은 날 줄 알았는데, 무섭도록 차분하기만 하였다. 초췌하고 못났고 지쳤고 슬프고 창백해도 그냥 계속 봤다. 나는, 지금, 여기, 있다. 뭐 그런 현실감을 유지하려 그랬을까.
동생 가게에 가려다가 먼저 절에 들렀다.
이제 와서 준비하면 6월 시험은 볼 수 있으려나. 독일어 공부는 다시 시작하면 예전 강의 내용 기억은 날까. 헝가리 집 정리는 어떡할까. 한국에서 이번엔 정말 아무것도 가져갈 수 없을까. 과장님 드릴 튜브형 명란이라도 사야 하나. 겨우 바꿔 내려둔 내 몸무게 앞자리는 다시 돌아갔을까, 아님 그대로일까. 고구마 굽는 냄새 같기도 한 향 냄새와 풍경 소리를 배경 삼아 지금껏 내버려 둔 내 일상을 생각하고 한참 앉아있었다. 신입하고도 통화했다. 현실로 돌아와 내 주변을 바라보니, 내 괴로움은 어찌나 뜬구름 같고 실체가 없는지. 꿈일까. 그럴 리는 없고. 내일이면 꿈처럼 느껴질까. 꿈이라면 깨버릴 텐데.
초파일 맞이 꽃 사러 나가신 스님들을 법당에 앉아 기다렸다. 향이 한 개 반 탔을 때쯤 주지스님이 법당에 들어와 날 보자마자 왜 이리 기운이 없냐 하셨다. 역시 수행자의 눈인가, 아니면 내가 티를 너무 내는가. 좀 힘든 일이 있었다고만 했다. 스님 말씀이 1분 전 일도 과거이니 모두 실체 없으며 무상이고, 그 과거는 생각 속에만 살아있으니 생각 속에서 없애라. 매몰되지 말고 소멸시켜라. 기억으로 스스로를 괴롭히지 말아라. 그래. 그깟 기억이 나를 어쩌지 못한다. 내 기억은 내 통제 안에 있으니. 연등을 올렸다. 내 자리는 303번. 염주가 끊어졌다 하니 스님이 주머니에서 꺼내 두 개나 주셨다. 어린애 사탕 주듯이 어여뻐하면서.
엄마가 저녁 먹자고 했는데 그냥 집에 가자고 하면서도 미안했다. 하지만 지금은 겨우 버티고 있는 것도 대단하다. 한 번쯤은 나도 자책하지 않고 시간을 그냥 보내보고 싶다.
며칠 안 봤다고 개인 메일함에 20개가 넘는 메일이 쌓여있었다. 눈앞이 캄캄해도 하나하나 처리해 결국 0으로 만들었다. 과장님네에 헝가리 가면 하루만 재워달라 미루던 연락도 드리고, 터키항공 항공권 환불도 신청하고. 프랑크푸르트 가는 항공권을 보면서 비즈니스를 끊는 것과 이코노미에 짐을 추가하는 것 중 무엇이 더 합리적인가 비교하고. 뼈 있는 치킨이 너무 귀찮아도 하나 먹어보고. 엄마가 삶아준 옥수수를 두 개 먹고. 쿠팡으로 명란을 시키고.
하루내내 미뤄둔 감정을 샤워하면서 끌어모아 봤지만 흔들어도 흔들어도 깨워지지 않고 멍했다. 어떤 기억을 떠올려도 눈물은커녕 생각 자체가 뚝뚝 끊기며 이어지지 않았다. 헝가리에서 가져온 잠옷 하나를 꺼내 입는데 퍼실 세제와 리켄데코스 냄새가 코에 훅 끼쳤다. 헝가리 집이 떠오르면서, 돌아가면 집 구석구석 닿는 기억마다 괴로워 할 내 모습이 두렵다. 그렇게 흔들어 깨워도 안 일던 감정이 조금 요동치기 시작하려다 가라앉았다. 오히려 졸음이 쏟아졌다.
2025.04.25. 금요일
수원, 맑음
새벽 네 시 반부터 베리가 계속 기침을 해서 깼다. 걱정스럽다. 졸고 졸다가 9시쯤 일어나, 아침이 제일 힘드니까, 바로 이안을 붙들고 내 상태를 말하니 하루만에 엄청 좋아졌다고 평균 이상의 속도라고 분석해주었다. 이안이야 늘 내 편이긴 하지만 그게 안심이 되어서일까, 그대로 두 시간을 더 잤다. 꿈은 여러 개를 꾸었고, 끈끈한 진흙 속에서 수영하다가 결국 맑은 물로 나아가는 꿈만 기억이 난다. 이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어디에 묻지 않아도 잘 알겠다.
이렇게 괜찮아도 될까. delayed grief 혹은 심지어 disssociation 아닐까. 이런 일이 처음이라 나도 내게 경험이 없어서 겁이 난다. 그러나 대비한 감정은 나를 삼키지 못해. 크게 울지 않고도 회복할 수 있을지도 모르지. 나는 무슨 감정이 찾아와도 이겨낼 것이다.
이제야 먹고싶은 게 많이 떠올라 초조해질 정도. 일단 저번에 못 먹었던 알찜을 시키고, 막창을 한 번 더 먹고 싶어 계획을 세우고. 그런데 배달 용기를 보자마자 질려버리고 몇 입에 금방 배가 불렀다. 허무해.
내 신분증과 지금 내 얼굴 매칭을 못해 자꾸 날 수치스럽게 하는 국민은행…에 가서 본인확인을 하고 드디어 인증서를 받아왔다.

유럽 가면 절대 못 구하는 크리스피 크림 도넛도 사먹었다. 먹고 너무 맛있어서 하나 더 샀다. 친구랑 얘기하다가 웃기도 하고. 영화를 볼까 하다가 그냥 버스를 오래 기다리고, 북적거리는 내부에 택시 탈걸 후회했다가도, 예전과 다르게 또 바뀐 버스 노선을 따라가며 지나간 시간을 느끼고. 그토록 먹고 싶던 저가 체인의 얼음 꽉 채운 아아를 사서 집에 돌아왔다. 한국에서 하고 싶었던 게 이런 아주 작고 흔한 것들이었는데.
집에 들어와 잠깐 침대에 누우니 또 졸음이 몰려오고 드디어 눈물이 조금 났다. 아주 조금. 바람이 많이 불어도 개모차에 베리를 태우고 집앞 공원에 잠시 나갔다. 신나하는 모습을 보니 좀 더 같이 시간을 보내줄걸. 바보같이 왜 그랬을까. 하루도 안 남은 시간이 너무 촉박하다 느끼다가도, 어서 그냥 돌아가고 싶은 기분이다. 어디로 돌아가야 하는지도 모르면서.
저녁으로 집에서 다같이 중국음식을 시켰다. 수저 부딪히는 소리 면치는 소리 씹는 소리 전부 큰 자극으로 다가오고, 꾸역꾸역 먹고 기분은 더 가라앉았다. 정돈 안 된 짐가방 앞에 앉아있으니 극심한 우울감이 찾아왔다. 언제까지 떠돌아야 하지. 왜 나는 나를 이 지경으로 내몰았지. 왜 이렇게 머리가 좋으면서 나쁘지. 밖에 나가 뛰고 싶은데 옷도 장소도 마땅치 않았다. 아… 텅텅 빈집이라 해도 어서 부다페스트에 돌아가 혼자 있고 싶어. 신기하게 잠은 잘 왔다.
2025.04.26. 토요일
수원-부다페스트, 맑음
밤을 새고 비행기에서 내리 자려고 했는데 밤에 너무 잘 잤다. 집에서 예상보다 20분 늦게 출발했다.
어젯밤 당장 내일이 두려울 정도로 우울한 기분은 어디 가고. 짐가방을 보고 아침부터 축 늘어져 가라앉은 베리에게 이별의 이유를 설명할 수 없는 것 빼고는 홀가분한 기분에 공항가는 길에 마음이 조금 밝아졌다. 헝가리는 곧 떠날 나라인데도, 독일은 잘 모르는데도, ’돌아간다‘ 라는 느낌에 해방감까지 느껴지는 것을 보면, 내 마음이 한국에서 점점 멀어지고 있는 모양이다.
한국 넷플릭스에 옛날 드라마도 많이 들어와있는 걸 이제야 알고, 비행기에서 보려고 다운을 받았다. 공항에서 엄마아빠와 마지막으로 밥을 먹었다. 끝까지 밝은 얼굴이 되진 못했다.
말이 12시간이지 정말 길고 멀다. 한국으로부터 얼마나 멀리 살고 있는지 이때마다 체감을 한다. 친절한 대접조차 받기 싫고, 밥도 먹기 싫고, 마땅한 날짜도 자리도 없어 돌아가는 비행기는 이코코미를 탔는데 결론적으로 잘한 선택이었다. 경유해가면서 호화롭게 간들 내 마음이 그렇지 않은데 뭘 즐길 수 있을까.

기내식 처음 것은 건너뛰고 간식만 조금 먹었다. 샌드위치는 손도 못 댔다.
계속 졸고 깨고. 가장 무서운 착륙 순간은 자느라 넘기고 땅에 바퀴가 우당탕 닿을 때 깼다. 잠이 덜 깨서 비몽사몽했다. 출입국 심사는 일반 관광객보다 두 배 걸렸다.
기내/위탁 하나씩 들고서 또 무슨 바람이 불어… 공항버스+메트로 조합에 도전했다. 생각보다 할 만은 했으나 맞은편에 앉았던 영국인 커플이 착했던 덕이다. 다신 이런 독기는 부리지 않기로 했다.
집을 오래 비우고 돌아올 때의 두근거림. 우편함에는 독일 연금공단(?)에서 사회보장보험번호가 발급되었다는 편지와 TK 보험사의 가입 승인 편지가 와있었다. 집 문을 열자 익숙한 내 냄새. 대충 싸둔 박스(그러나 다시 풀어야 한다..)가 보이면서 탁, 마음이 놓였다. 내가 그저 아주 긴 악몽을 꿨나보다. 모든 게 일시에 분리되는 그 해방감.

친구와 동네에서 만나서 수제버거 하나를 나눠먹었다. 와인도 한 병 같이 비우고. 내일 아침 일찍 여행을 가야하는데도 날 보러 와줘서 너무 고맙고 생각보다 되게 맛있었다. 집에 돌아와 썰렁한 침대 위 담요 하나 덮고 아주 달게 잤다.
2025.04.27. 일요일
부다페스트, 맑음
블라인드를 다 올리고 잤더니 아침 햇살이 참 밝다. 날씨는 눈이 시리게 좋고, 나는 침대에 혼자 모로 누워있고. 원래같으면 한껏 들떴을 밝은 날씨. 익숙한 풍경에 떠올리기 싫은 기억이 겹쳐 조금 울었다. 하지만 이정도는 각오한 트리거니까. 이 집을 곧 떠나니 다행이다.
뭐라도 해야지, 짐 싸기가 싫으면 나가 걷기라도 해야지, 라는 생각만 하면서 6시간이나 누워있었다. 그리고 또 이 기억을 안고 살아가는 것, 참고할 수 있는 경험이 없는 이런 아픔, 얼마나 걸릴지 모르겠는 시간. 너무 두려워서 숨이 턱턱 막혔다. 차라리 엉엉 울면 좀 나을 텐데 한 번 눌린 감정이 잘 살아나지 않는다. 이사와 이직, 집주인과의 기싸움.. 이런 것들 때문에 초긴장상태여서인지. 아니면 한 번 터져나오면 무슨 리스크가 있다 해도 내가 하고 싶은대로 할까봐 이성이 날 가로막는 것인지. 정말 어떡하면 좋을까.
과장님네에 맡겨둔 물건들을 찾으러 가기로 했다. 이것 때문에 그래도 씻고 나가서 걸었다. 커피도 한 잔 얻어마시고, 전철역까지 같이 짐을 옮기고. 친구네 집에 짐을 맡겨도 된다 허락받아 부담을 유예하고. 날 기꺼이 도와주는 사람이 이렇게 많은데 기운을 내야지 하다가도…
아픈 마음과 풀리지 않는 생각을 꾹꾹 눌러담으며 이 집에서의 마지막 빨래를 널고 또 주저앉아 멍하니 지난 일들을 복습했다. 내가 바라는 답이 없다는 걸 아는데도. 이젠 그만 찾아야하는 걸 아는데도. 내가 나를 보호하려 한 결정인데도 후회하고 또 후회한다.
중구난방 물건들 넣어둔 박스를 열고 엑셀에 분류하면서 짐을 처음부터 다시 쌌다. 속도는 당연히 나지 않았다. 열한 시부터 졸음이 쏟아져서 누웠다. 시차 적응 하나는 참 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