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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중일기 147 (20260302-20260308) 본문

일상, 삶/매일 비장하게 나라 구하는, 난중일기

난중일기 147 (20260302-20260308)

여해® 2026. 3. 27. 0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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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3.02. 월요일 
에쉬본, 맑음
 
일주일만에 나간 회사는 평소와 다름이 없다. 아프리카에서 공주 대접 잘 받고 왔냐고 다들 농담을 건넸다. 주말에 그렇게 많이 잤는데도 피곤한지 입안에 혓바늘이 났다. 
 
점심에 칸틴이 도무지 가기 싫어서 와이마트에 차를 얻어타고 가서 김밥과 컵라면을 사다 먹었다. 하나같이 맛이 없었다. 아프리카가 밥은 여기보다 낫다고 하니 다들 놀라면서도 웃었다.
 
거슬리게 하는 인간들은 왜 항상 패턴이 똑같을까. 이젠 내가 왜 참아주어야 하는지, 왜 시간을 써주어야 하는지, 화를 내고 싶은 마음조차 없다. 이렇게 그냥 해탈하게 되는 건가. 전회사 동료들과 비교해보면 여긴 빌런 비율이 현저히 낮은 편인데 감사하며 살아야 할까.
 
어제 시험삼아 조회해본 대출 브로커에게서 연락이 왔다. 블루카드로도 모기지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모아둔 돈도 그렇고 아마 내년이나 되어야 집 살 생각을 해볼 것 같지만, 그래도 가능한데 기다리는 거랑 완전 불가능한 거랑은 다르니까. 다음주에 테어민을 잡아두었다.
 
무아지경으로 일하다 보니 어느새 밤 9시. 돌아와서 독독독 인강을 들었다. 이상하게 듀오링고는 게임처럼 잘 하게 되는데 인강은 눈에도 귀에도 안 들어오고 자꾸 집중이 흐려진다. 진짜 adhd 검사를 받아보고 싶을 만큼.
 
 
2026.03.03. 화요일
에쉬본, 맑음
 
간만에 해가 계속 나니 사람들이 모두 날씨 얘기를 한다. 
 
아침에 바쁘게 일하고 있는데 그룹장님이 말을 걸어 쳐다보았는데, "말걸지 마세요" 라고 눈으로 말하는 게 느껴진다고 해서... 신경이 쓰였다. 어릴 때부터 종종 눈빛으로 오해를 받곤 한다. 별 생각 없는 건데.
 


점심에 모꼬에서 밥을 먹고, 저녁에는 모모롤에서 과장님을 만나 재밌게 놀았다. 집을 사고 싶다 하니 여러가지 팁을 알려주었다. 집에 돌아와 독일어 공부를 또 꾸역꾸역 했다. 강의료가 아깝고 매번 끈기없이 그만두는 자신이 싫어서 어떻게든 해보지만 정말 재미가 없다. 너무 재미없다고 생각했는데 마침, 내 강의가 재미없다고 느껴지나요? 라는 문장을 선생님이 말해서 조금 찔렸다.
 
 
 
2026.03.04. 수요일
에쉬본, 맑음
 
마감일이었다. 사실 요며칠 야근하든, 주말에 나오든 하면 미리 대비할 수 있는 일들도 있었지만, 하루에 다 몰아서 고생하더라도 이제 정말 며칠씩 야근하기는 싫다. 나 혼자 감당하고 싶지도 않고, 감당할 수도 없고. 그래도 이런저런 일들이 걱정되어서 결국 밤 10시 넘어서 퇴근했다. 혼자는 아니라 외롭지는 않았다.
 
돌아오자마자 인강을 조금만 들었다. 너무너무 졸리고 피곤하다.
 
 
 
2026.03.05. 목요일
에쉬본, 맑음
 
회사에서 기분이 좀 좋지 않았다. 나중에 한 한두달만 지나서 이 일기를 읽어봐도 뭔지 기억은 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사소한 일이겠지.
 


저녁에 멕시칸 레스토랑에 갔다. 데낄라를 네 샷이나 마시고 칵테일 두 잔, 맥주 한 병을 마셨다. 중간에 좀 취하는 듯하다가 집에 올 때쯤 멀쩡했다. 집에 와서 독일어 공부를 했다. 어제 야근 여파인지 너무 피곤하고 어깨가 아프다. 내일은 연차니까 좀 편히 쉬어야겠다.
 
 
2026.03.06. 금요일
에쉬본->스트라스부르, 맑음
 
오늘은 일을 쉬었다. 출장 때문에 일요일에 비행기를 타서 얻은 연차다. 예전부터 미루고 미루던 물리치료를 받아보려고 처방전을 받으러 한국인 의사가 있는 의원에 갔다. TK카드를 빼먹고 갔다가 애를 먹었다. 물리치료 처방전은 5회를 받았고, 의사가 상의를 벗어보라 하더니 내 몸에서 이상한 점 두 개를 발견했다. 뭐가 걱정되는 거냐고 물으니, 지금은 별거 아니라고 하면서도 피부과에 가보라며, 최악의 경우는 암일 수 있다고 했다. 들을 때는 별 생각 없었는데 집에 가면서 생각이 났다. 무방비하게 해변에서 선크림 대충 바르고 논 것도 생각이 나고.
 
아침 시간이 애매하게 남았는데 스트라스부르까지 가보기로 하고 도이치란트티켓을 써서 갈 수 있는 국경 끝까지 갔다. 가면서 흑색종에 대해 찾아보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덥지도 않고 사람도 별로 없어서 지난 번처럼 레기오날반 여행이 끔찍하지는 않았다. 친구에게도 연락해서 피부과 예약하는 방법을 찾아보고, 여기저기 메일을 남겨놓고, Doctolib 앱으로 예약을 잡아보려 했으나 피부과 진료는 보험 적용되는 진료가 거의 없었다. 게다가 받조덴에 있는 큰 피부과 병원에서는 신규환자를 아예 받지 않는다고 자동회신처럼 답장이 왔다.
 


암울한 기분으로 스트라스부르는 보는둥 마는둥 했다.


숙소는 아주 저렴하게 60유로를 줬고 딱 그 가격 할만한 곳이었다. 위치가 좋고 위험하지는 않아보여서 대충 잘 수 있었다. 중간에 마트에 들러 와인 산 것을, 리셉션은 닫혀있고 와인따개를 구할 수 없어 그대로 들고 다니게 생긴 것만 아쉬웠다.
 
저녁에 블로그에서 보고 예약한 식당을 갔는데 텅텅 빈 3층 구석자리에 앉은 것이나, 메뉴에 그 흔한 스테이크 하나 없는 것이나 여러모로 마음에 안 들어서 에스까르고와 와인 한 잔을 마시고 일어났다. 길거리에서 츄러스도 사먹었고 정말 너무너무 맛없었다.
 


끝까지 이렇게 실패하려나 했는데 밤늦게 간 식당은 대성공. 스테이크에 곁들여진 매쉬드포테이토까지 얼마나 맛있던지. 그제야 비로소 흑색종 걱정을 좀 내려놓을 수 있었다.
 
 
 
2026.03.07. 토요일
에쉬본, 맑음
 
일찍 일어나 스트라스부르->낭시로 가는 버스를 타러 나섰다. 버스정류장에 카페가 있어서 줄을 섰다가, 커피 기계가 자동인 것을 보고 그냥 줄에서 빠져나왔다. 낭시까지 가면서 또 흑색종 검색. 어떻게든 빨리 병원에 가서 무슨 얘기라도 들어야 차라리 마음이 놓일 것 같다.
 


낭시는 생각보다 정말 화려하고 광장이 예뻤다. 낭시에 있는 마카롱 가게를 가려고 이 여행을 마음 먹은 거나 다름 없어서 네 더즌이나 샀다. 원화로 무려 7만원어치 마카롱이다. 여기 마카롱은 최초의 형태로, 일반적인 마카롱과는 좀 다르다. 이걸 친구네 집에서 처음 먹어보고 홀랑 반했다. 하나만 먹어봐도 비싼 과자인 게 느껴져서 차마 염치없이 더 달라고 조르질 못하고 어디서 파는지만 알아냈었다.
 
광장에 위치한 카페에서 에스프레소를 마시다가 홍합찜을 잘한다는 곳이 있어서 갔다. 벨기에에서 먹은 홍합찜 생각이 나서였는데 좀 실망이었다. 게다가 프랑스 식당에서는 전채를 꼭 곁들여야 하는 건지 타다키까지 시키게 되어서 예상보다 지출을 더했다.
 
메스로 이동해서는 다른 데를 못 가고 미술관에 짐을 맡긴 후 감상했다. 생각보다 지피티에게 작품 설명을 해달라 하고 보니 정말 재밌었다.

바나나를 벽에 덕테이프로 붙인 유명한 작품도 보았고. 두 시간이 모자를 줄은 몰랐다. 저녁은 따로 먹지 않고 7시에 프랑크푸르트로 가는 버스를 탔다. 버스를 탈 때 'Ausweis'라는 단어를 알아들으니 새삼 듀오링고에 쏟은 시간이 헛되지 않게 느껴져 기뻤다.
 
중간에 헷갈려 에스반을 미리 내려버리는 바람에 집에는 예상보다 좀 늦게 도착했다. 씻고 바로 잠들었다.
 
 
 
2026.03.08. 일요일
에쉬본, 맑음
 
집에서 청소도 하고 그러려고 했는데 일단 12시까지 잠을 잤고 일어나니 게을러서 아무것도 하기가 싫었다. 채소, 육류, 계란조차 없어서 그냥 라면으로 밥을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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